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공식 발효를 앞두고 서울과 지방을 생각한다. 대한민국이란 한 나라에서, 서울은 내지이고, 지방은 식민지가 되었다. 내지 사람들의 눈에 식민지 백성은 이등 국민으로 보일 뿐이다. '만물이 정(正)과 반(反)으로 상생한다'는 말이 있지만 한-미 FTA로 당장 벼랑에 몰릴 농업분야에서 상생은 꿈같은 이야기에 불과하다. 경제전문 연구기관들은 FTA로 무역흑자 증가 등 국내총생산이 획기적으로 증가한다고 거시경제효과를 부풀려 떠들고 있지만, 서민 대중의 삶과는 전혀 무관한 이야기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미국에 이어 중국과의 FTA는 한국의 농수산업을 더욱 파괴시킬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농수산업에서 미래를 기약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것은 서서히 진행되는 제노사이드(집단학살)에 버금가는 사태다. 서울 중심의 집중 지향적인 프레임을 깨고, 지방분권적인 균형발전을 다시 살펴보아야 할 중차대한 시점이다. 서울과 재벌 중심의 성장을 통해 ‘파이’를 키워야 한다는 낙수효과(트리클다운 효과)의 허상을 깨야 한다.

  프랑스 철학자 장자크 루소는 <사회계약론>(1761)에서 이렇게 말한다. “국토의 인구분포를 고르게 하고 각 지방에 동등한 권리를 부여해 어디서나 골고루 부유하게 살도록 해라. 그럼으로써 국가는 최대로 강해지며 동시에 가장 잘 다스려진다. 도시의 성벽은 농가를 헐어 부순 잔해에 의해 쌓아진 것임을 알아야 한다. 나는 지방이 철저히 폐허화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수백년 전 프랑스 상황이 꼭 지금의 우리사회 같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올 2월초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농가인구는 296만5천명으로 3백만명선 아래로 떨어졌다. 이제 농촌 마을에는 노인들만 눈에 띌 뿐 젊은이나 아이들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산업사회로 진입하면서 시작된 농가인구의 감소추세는 정부가 동시다발적으로 추진 중인 FTA가 농업을 최대 희생양으로 삼으면서 가속화되고 있다. 농촌이 급격한 해체과정을 밟고 있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농촌을 기피하는 이유는 다자간 FTA가 체결되면 희망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지난달 소값 파동에서 송아지 한마리가 겨우 1만원 선에 거래된 것은 FTA로 인한 불안한 미래도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또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올해 축산물 가격 하락과 FTA 영향으로 가구당 농업소득이 2008년 이후 4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 설 것으로 보았다. 가구당 농업소득이 1103만원으로 지난해의 1184만원보다 6.3%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농업소득 감소가 불가피한 이유로, 공급 과잉인 한우와 공급 증가가 예상되는 돼지 등 축산물 가격의 하락을 들었다. 또 금년부터 미국 및 EU와의 FTA로 인한 본격적인 관세 인하 효과가 가시화되는 것도 소득 감소 요인으로 꼽았다. 농촌에서의 곤궁한 삶과 모진 외로움은 삶의 질을 나락으로 떨어뜨려 자살률 증가 등 예기치 못한 심각한 부작용을 낳지 않을까 우려된다.

  한편 아주 미미하지만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하방화 조짐도 보이고 있다. 40여년 만에 수도권에 유입되는 인구보다 유출 인구가 많은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 통계청이 지난 1월말 내놓은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에 들어온 사람은 48만명이었고, 수도권에서 빠져나간 사람은 48만9천명이었다. 1970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 처음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전문가들은 “미약하나마 탈(脫)수도권 현상이 시작됐고, 당분간 지속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수도권을 떠난 이들은 주로 대전·강원·충북·충남 등 중부권으로 유입되었다. 통계청은 중부권으로 인구가 몰리는 것은 국가균형발전의 영향 때문으로 보고 있다. 삶의 질 측면에서 지방이 낫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수도권 규제와 공공기관 이전 등 국가균형발전과 지방분권계획만 제대로 추진된다면 탈수도권 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또한 베이비붐 세대의 대거 은퇴도 수도권 탈출의 기폭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농림수산식품부의 자료에 의하면 2011년 귀농·귀촌 가구가 1만503가구(2만3415명)로, 2010년의 4067가구보다 15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지방에는 위기이자 기회다.

  그동안 수도권은 한정 없는 비만아였고 지방은 허약아로 자라왔다. 수도권의 인구 과밀화, 기능의 집중화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블랙홀 수준이었다. 100대 기업중 90개 이상, 법인세의 90%이상이 수도권이고, 서울 아파트 1채로 지방 아파트 2~3채를 살 수 있다. 주요대학의 60%, 의료기관의 과반수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국세와 지방세, 언론시장은 8대2구조이고 지자체의 재정 자립도도 50%가 되지 않는다. 지자체의 기준 재정수요액 대비 재정수입액인 재정력 지수는 금년도에 0.379로 나타났다. 1 미만은 자체 수입으로 인건비, 복지 등 행정수요의 충당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서울과 수도권 주요도시는 1을 넘고 있다. 수도권 여론이 국민여론이고, 수도의 경쟁력이 국가의 경쟁력으로 규정되는 등 지방은 중앙의 종속적 부속물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공룡처럼 커진 수도권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집중의 저주’라는 말이 있다. 낙수효과를 노리고 추진한 재벌 규제완화는 오히려 1 대 99로 양극화를 가속화시켰다. 재벌이 골목상권에까지 진입하여 서민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등 탐욕을 넘어서 자기 파괴적인 극단적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모든 정당들이 너도나도 재벌개혁을 공약으로 제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 선거를 수도권 집중을 완화시키는 획기적인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 실정에 맞는 지방분권 모델의 창출이 요구된다.

▲ 권영후  전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장
  마침 2000년대 초에 시작된 국가균형발전의 결과물로 금년 말부터 행정중심복합도시와 혁신도시가 입주하기 시작한다. 수도권 일극형 집중구조가 서서히 국토 전반의 다핵구조로 가시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또한 에너지ㆍ식량ㆍ환경 위기속에서 과잉생산과 과잉소비, 대량폐기의 난폭한 산업구조를 바꿔야한다는 전지구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이제 인류의 장기적인 생존 전략의 핵심은 저탄소, 탈성장, 선순환적 소비행위, 규율적인 공정경쟁에 있다. 이와 더불어 지방에서 농업 중심의 자급적·협동적 공동체를 재건해야 한다. 중앙과 지방이 공존하고 상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는 셈이다. /권영후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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