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덕, 우리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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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가문장아기는 굶주린 사람을 살린 만덕할망에게  (우)만덕할망은 너른 바당물질하는 우리 할머니에게

<김정숙의 제주신화> 15 신화-제주, 제주여성의 원형.

▲ (좌)가문장아기는 굶주린 사람을 살린 만덕할망에게  (우)만덕할망은 너른 바당물질하는 우리 할머니에게

김만덕

5만원권 지폐에 새길 인물을 선정할 때 신사임당, 유관순, 허난설헌 등과 함께 거론되기도 했던 김만덕은 조선 후기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굳센 의지로 경제적 부를 성취하고 그 부를 기꺼이 사회에 환원한 제주의 여성이다.

1790년부터 5년간 제주에 지독한 흉년이 들어 제주사람들이 기아에 허덕이자 김만덕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사별하고 힘든 시절을 이겨내며 일군 자신의 재산을 내놓아 곡물을 사들여 구휼미로 쓰게 했다.
 
아이들을 먹여 살리고 공부시키기 위해 자기를 단장할 시간도, 집을 꾸밀 시간도 없이 오로지 일만 했던 제주의 여성들처럼 김만덕에게도 휴식이란 없었을 것 같다.

김만덕은 남성들보다 더 용감하게 쟁기로 밭을 갈고, 마치 저승과도 같이 까마득한 바다로 자맥질하면서 바당밭을 개척해 내었던 도전적인 제주의 해녀들과 함께, 제주의 여신 가믄장아기를 많이 닮았다.

가믄장아기 신화를 보면 부모님 말씀에 저항하고 집을 나간 가믄장아기가, 나중에 부자가 되고 부모님이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부모님을 위해 잔치를 벌이는 내용이 있다.

이때 가믄장은, 모든 거지를 초대하는 ‘거지 잔치’를 연다. 그냥 자기 부모님만 모실 수도 있었을텐데, 가믄장은 모든 거지들을 초대해 잔치를 벌여 맛난 음식을 대접하고, 말을 걸고, 웃음을 나눈다. 모든 가난한 사람들, 주위의 모든 약자들을 부모님 대하듯 하고 있는 것이다.

김만덕의 아낌없는 규휼정신은 바로 신화 속 가믄장아기가 던져주는 제주사람들의 정서와 삶의 태도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할머니

‘좀년 애기 나ㅤㄷㅝㅇ 사을 이믄 물에 든다’라는 제주속담이 있다. ‘제주도 해녀들은 아이를 낳고 삼일 후면 몸조리할 겨를도 없이 바다로 뛰어 든다’는 뜻이다.

‘메역 짐과 애기 짐은 베어도 안 내분다’라는 속담도 있다. 미역과 애기는 아무리 무거워도 내려놓지 않는다는 뜻이다.

바다로, 밭으로, 집으로 갈중이를 입고 쉴 새 없이 뛰어다니며 부지런히 일하고, 조냥의 항아리를 마련하고, 쉰다리(*옛날 제주식의 야쿠르트)를 만들어내고, 할망 손이 약손이 아이들을 보살피고, 빙떡이란 훌륭한 음식을 후딱 둘둘 말아놓고, 자리에 눕는 순간까지 우영밭에서 송키(채소)라도 길러내었던 삶, ‘할망’이라 불리는 우리 할머니들의 삶이었다.

물질을 한 후 언 몸을 녹이는 불턱에 앉을 때는, 물질을 하는 능력이 가장 뛰어난 상군이 가장 따뜻한 곳에 앉는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가장 자리가 좋은 ‘상군덕’에 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살면서 각박함만 커갔을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다. 젊은 해녀들은 ‘할망바당’이라는 바다를 두고 나이가 들어 노쇠해진 노인해녀를 위한 바다 공간을 따로 마련해 두었다.

어쩌면 이렇게도 일만 했을까, 하는 생각으로 안타깝기도 하다.

동시에… 개인의 인정과 공동체를 위한 배려… 나이가 어려도 개인의 능력을 존중해주고, 나이 들었어도 삶 속에 같이 주체로 서며, 서로서로 공동체와 약자들을 위한 배려를 잃지 않는 이런 각성된, 진보적 프로그램을 곳곳에서 실천했던 제주사람들의 삶에, 나는 언제나 경탄하게 된다. <계속> /김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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