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심에서 옛 것의 가치를 캐내는 연구자 이행철씨 

운명은 우연을 가장해 찾아온다. 그가 그랬다. 그는 구도심이라 불리는 중앙로~칠성로~무근성 일대 돌아다니며 낡아 뵈는 건물엔 주저 없이 줄자와 카메라를 들이민다. 좀 됐다 싶은 건축물을 마주할 때면 호기심에 눈이 반짝인다.

주인공은 한라대 건축디자인과 겸임교수인 이행철(39) 씨.구도심을 훑고 다니는 사연을 물었다.  ‘구도심 활성화를 위한 근대건축유산 보존 활용’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쓰고 있다고 했다. ‘어쩌다 보니…’라고 답했지만 이 모든 우연은 그의 운명이었다.

▲ 이행철(39) 한라대 건축디자인과 겸임교수.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운명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고등학교 땐 내가 수학을 좋아하기도 하고 다른 과목에 비해 잘하기도 해서 자연계 체질인 줄 알았다. 재미있을 것 같아 막연하게 건축학과에 원서를 넣었다. 기독교 학교에서 채플을 가르치듯 우리학교는 유교사상에 대한 과목을 필히 들어야 했다. 들어보니 내가 자연계 보다는 인문학에 더 맞는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가 말을 이어갔다. “군대 다녀오고 복학하고서 지금은 내 지도교수인 윤인석 교수를 만났다. 그분은 아버지부터 2대에 걸쳐 근대건축사를 연구 해 오신 분이다. 교수님께서 매주 토요일마다 학생들을 데리고 서울 도심 답사를 다니셨다. 제주 촌놈이 서울 구경이나 해보자고 교수님을 따라다녔다.”

그는 ‘근대 건축’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교수를 잘 따랐고, 교수님 역시 호기심 많은 제자를 예뻐하셨다. ‘근대 건축’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건 선택 아닌 필연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내친김에 석사 과정까지 밟았다.

그러다 덜컥 회사에 입사했다. 그야말로 ‘야전’을 방불케 하는 업무였다. 밤새며 일하는 날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더 많았다. 몇 년을 정신 없이 일하다 ‘이정도면 할 만큼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2005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귀향을 결심했다. 제주에 내려오는 길에 차 한 대를 사가지고 여행 겸 답사로 전국의 각 도시를 훑었다. 학창시절 수학여행 단골 코스였던 ‘경주’, 따분해보이던 옛 도시가 다시 보였다. 예전엔 미처 보이지 않았던 가치들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가치의 재발견은 고향 ‘제주’였다. 마냥 지루하고 답답해보였던 제주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집이 서귀포시 안덕면에 있다. 밤에 불 끄고 나면 집 주변이 온통 새카맣고 벌레 소리만 들리는 아주 조용한 곳이다. 대학 때는 제주에 내려오면 며칠밖에 안 돼도 답답했는데 몇 년 만에 돌아온 고향이 다르게 보였다. 전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띄었다”

그렇게 카메라 하나 매고서 제주 섬을 돌아 다녔다. 곳곳을 누비며 보물이라도 찾은 것처럼 가슴이 뛰었다. 아무도 가치를 알아주지 않아 숨이 꺼져가는 건축물들을 볼 땐 마음이 아려왔다. 지금은 올레 사무국으로 쓰이는 서귀포시 소정방폭포 인근 ‘소라의 성’ 이 그랬다. 2004년에는 재해위험지구로 지정돼 철거되기로 했지만 한국 현대건축의 선구자인 故 김중업씨가 설계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대로 보존하기로 했다는 소식에 마음을 쓸어내렸다. 

안타까운 것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제주의 ‘구도심’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귀포로 이사 가기 전만 해도 초등학생 시절 새학기만 되면 인천문화당에 줄서가며 공책을 샀던 기억 동양극장에 영화를 보러 가던 기억 그 모든 기억이 스민 곳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추억만 담긴 곳이 아니라 역사적 의미까지 담고 있었다.

그때부터 구도심 곳곳을 살폈다. ‘구도심 활성화를 위한 근대건축물의 활용’을 주제로 박사 과정을 밟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주변 지인들에게 알음알음 근대건축물 도면을 얻으러 다니기도 했고, 눈에 띄는 낡은 건물은 꼭 눈으로 확인해봐야 했다. 그렇다고 아무데나 불쑥 들어갈 수 없는 노릇이어서 쉽지만은 않았지만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을 다시 들여다본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그를 설레게 했다.

“관덕정처럼 조선시대 문화재는 ‘가치 있다’ 여기는데 반해 일제시대 건물들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해방 후 50~70년대 건물들도 그냥 ‘낡은 것’으로 치부해버린다. 재개발. ‘역사 경관’ 구색 갖추기용. 그 지역 문화재 주변으로 새로운 것들을 들여놓는다”고 아쉬움을 털어놨다.

그는 특히 “특히 50~60년대 건물들은 눈여겨 봐야한다. 해방 후 우리나라 1세대 건축가들의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초창기 현대 건축물이고, 우리나라의 자본으로 우리나라 건축가들이 지어올린 건물들이다. 우리는 대게 가까운 역사는 의미를 두지 않는다. 내 생각은 다르다. 한 세대가 지나면 역사 건축물로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본다”며 강조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근대건축물 활용방안은 무엇일까. “이미 없애버렸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것들이 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데 꿸 구슬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최근 자발적인 구도심 살리기 운동이 조금씩 벌어지고 있는데 되살릴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을 발굴하고 목록으로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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