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5월, 우도는 소의 낙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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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욱의 지질기행> 15 우도, 깎여 나간 이중화산체

▲ 우도는 응회구의 분화구 안에 분석구(오름)이 자리 잡은 이중화산체이다.
천지가 온통 푸른빛으로 치장한 5월도 얼마 남지 않았다. 며칠만 지나면 자연은 주체 못할 에너지를 과시하며 서로 격돌할 것이다. 때론 소나기를 쏟아내기도 하고, 때론 여름밤을 뜨겁게 달구기도 하면서.

"넘치는 것이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이젠 그 넘치는 것을 감당하기 버거운 나이가 되고 보니 그 격언이 더욱더 가슴에 닿는다. 여러 가지 민망한 소식들로 인해 뉴스를 듣기가 민망할 지경이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5월의 하늘처럼 푸른 기운이 있었는데, 어쩌다 저리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5월이 지나가는 아쉬워 푸른 바다를 건너기로 했다. 마음이야 멀리 떠나고 싶지만, 삶이 늘 여행과 혁명일 수만은 없는 법이다. 김광석의 노래 가사처럼 "바람이 불어오고 햇살이 웃음 짓는 그곳"이면 된다. 성산포에서 배를 타고 우도로 들어갔다.

제주도는 해안 가까운 곳에 여러 개의 작은 부속 섬들을 거느리고 있는데, 우도는 그 부속 섬들 중에서 가장 크다.

17세기 까지만 해도 우도는 방치된 무인도였다. 그러다가 1697년(숙종 23)에 제주목사 류한명이 우도에 목장을 신설한 것이 개척의 시발점이 된다. 그 후 1842년(헌종 8)에 이원조 목사가 우도와 가파도를 개간하여 주민들이 살도록 하자, 1844년에 김석린이라는 자가 입주한 이래로 마을이 형성되었다.

▲ 우도 전경

▲ 점성이 낮은 현무암질 용암이 분석구에서 흘러나와 완만한 경사를 만들며 흘러내린 후, 풍화의 과정을 거쳐 토양이 형성되었다. 19세기에 우도에 주민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농사가 이뤄졌다.

17세기 말에 처음 개척된 섬

한편, 우도에 사람이 살지 전에도 그 독특한 절경 때문에 많은 이들이 섬을 구경하고 싶어했다. 1577년(선조 10)에 천제시인 백호 임제는 성산을 구경한 후에 배를 타고 우도를 둘러봤다. 다음은 그가 <남명소승>에 우도에 대해 남긴 기록의 일부인데, 훗날까지도 많은 이들이 우도에 대해 기록하면서 이 구절을 인용했다.

'그 형상이 마치 소가 누워있는 것과 같다. 남쪽 벼랑은 무지개처럼 열린 돌문이 있어, 돛을 펼치고도 들어갈 수 있다. 그 안의 굴은 천연의 요새여서 큰 배 20척쯤은 숨겨둘 만 하였다. 노를 저어 들어가니 백로 같은 신기한 새가 있는데 …수백 마리가 무리지어 어지럽게 날아다닌다.'

백호 임제가 거론한 동굴을 훗날 이형상 목사는 '어룡굴(魚龍窟)'이라 기록하면서 '돌집이 천연적으로 만들어져 대통모양으로 뚫어져 있는데, 길이가 8~9자, 넓이가 200자이다. 햇빛이 비쳐 들며, 물이 맑고 차가워 푸른 유리 같다.'고 했다. 임제와 이형상이 거론한 동굴은 우도봉의 동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우도는 1회의 마그마 분출에 의해 만들어진 단성화산이다. 하지만 화산활동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화구 주변의 환경 변화로 말미암아 두 개의 화산체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중화산에 해당한다.

우도의 이중화산체는 응회구(tuff cone)와 분석구(cynder cone, 보통의 오름)로 구성되었다. 응회구는 섬의 동쪽과 남쪽에, 분석구는 응회구의 분화구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응회구와 분석구로 이뤄진 이중화산체

지난 2005년 부산대학교 윤성효 교수 등이 우도 화산에 대한 암석을 연구한 결과, 우도 화산체가 만들어진 것은 지금부터 약 11만 년 전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일대에 처음에 마그마가 분출하는 과정에서 지하수나 바닷물과의 접촉이 일어났다. 그 결과 화산재나 화산탄, 화산암괴 등이 분출해서 지금의 우도 응회구가 형성되었다.

▲ 분화구 안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에 반했다. 저 소는 자신이 소섬에 있는 것을 아는 걸까?
▲ 많은 관광객들이 우도봉에 오르고 있다. 등대가 자리잡은 정상부는 분화구의 테두리 중 높은 곳에 해당한다.

수성화산활동이 진행되다가 지하수 혹은 바닷물이 화구 안으로 유입되는 것이 차단되었다. 응회구의 분화구에서 뜨거운 마그마가 분출되던 중 화구에 차있던 가스가 폭발하면서 주변에 화산쇄설물이 쌓였다. 분화구 중앙에 자리 잡은 분석구(해발 87,5m)는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우도 화산체의 해안은 대부분 현무암질 용암류가 차지하고 있다. 현무암질 용암류는 분석구에서 분출된 용암이 응회구의 분화구를 채워 용암연(lava pond)를 형성한 후에, 북서쪽으로 흐르며 완만한 경사를 만들었다.

응회구 상당부분 파도에 깎여

과거에는 우도 화산체 기저부에는 온평리알칼리현무암이 자라잡고 있고, 그 위에 소머리현무암이 피복하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윤성효 교수 등이 연구한 결과로는 우도 해안을 구성하는 용암류는 단일 용암류인 것으로 밝혀졌다.  

▲ 화산체가 바다와 접하기 때문에, 응회구의 동쪽과 남쪽이 파도에 깎여나갔다. 그 결과 응회구의 사층리가 노출되었고, 해식동굴이 형성되었다.

한편, 우도봉의 동쪽과 남쪽은 바다와 접하고 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파도의 침식에 노출되었다. 그 결과 분화구 테두리를 포함한 응회구 상당부분이 깎이면서 그 내부가 외부에 노출되었다. 화산쇄설물이 흘러내리며 형성된 응회구의 사층리가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또, 파도는 해수면과 접한 곳을 뚫어 해식동굴을 만들었다. 임제와 이형상이 언급한 굴은 해식작용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장태욱

 
   
장태욱 시민기자는 1969년 남원읍 위미리에서 출생했다. 서귀고등학교를 거쳐 한국해양대학교 항해학과에 입학해  ‘사상의 은사’ 리영희 선생의 42년 후배가 됐다.  1992년 졸업 후 항해사 생활을 참 재미나게 했다. 인도네시아 낙후된 섬에서 의사 흉내를 내며 원주민들 치료해준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러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제주대학교 의예과 입학해 수료했다. 의지가 박약한 탓에 의사되기는 포기했다.  그 후 입시학원에서 아이들과 열심히 씨름하다 2005년에 <오마이뉴스>와 <제주의소리>에 시민기자로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2010년에 바람이 부는 망장포로 귀촌해 귤을 재배하며 지내다 갑자기 제주도 지질에 꽂혀 지질기행을 기획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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