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한경면 저지리 현대미술관(저지예술인마을)에서 차를 타고 5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갤러리 노리'가 위치해있다.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제주 저지예술인마을에 둥지 튼 '갤러리 노리'의 이명복 작가·김은중 관장 부부

▲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 현대미술관(저지예술인마을)에서 차를 타고 5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갤러리 노리'가 위치해있다.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이름은 중요하다. 외마디에 정체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제주 저지예술인 마을에 위치한 ‘갤러리 노리’. 말 그대로 ‘놀자’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2010년 12월에 개관해 문 연지 2년이 채 안된 이 갤러리는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역 작가들이 한 주제로 꿰어지는가 하면 신인 작가들이 얼굴을 알리기도 했고, 원로 작가들이 작품세계를 되돌아보기도 했다. 뭍에서 전시 나들이를 오기도 했다. 때론 지구 반대편에서도 날아왔다. 이처럼 ‘갤러리 노리’가 품고 있는 스펙트럼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대체 왜, 중산간 외딴 마을에 얼큰하게 ‘놀이판’을 벌인 것일까. “욕심은 다 버리고, 그저 놀기 위해서” 갤러리를 이끄는 이명복 작가·김은중 관장 부부가 답한다. 

이명복 작가는 공중파 방송국에서 보도 그래픽담당으로 근무하다 문화사업파트로 옮겨 전시 기획을 맡으며 겸업 작가로 활동해왔다. 26년 동안의 직장 생활과 32년 동안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쉰둘이던 2009년에 제주 섬에 닿았다. 여느 제주 이주민처럼 섬에 대한 환상을 품었던 적도 없었다. 신의 계시라도 받은 듯, 순식간에 이뤄진 일이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 "바람마저 고맙게, 즐겁게 살고 있어요" 갤러리 노리의 관장이자 공간을 채우는 역할을 맡은 이명복 작가(55)가 제주살이의 즐거움을 털어놨다.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2009년 현대미술관 기획초대전 때문에 제주를 찾게 됐다. 답사를 해야 된대서. 그 즈음이 일을 그만두려고 회사에 통고하고 퇴사일을 기다리던 때였다. 겸업 작가에서 전업 작가로 위치를 달리 선택이 필요했던 시기였다.”

제주에 오면 그저 정해진 관광지나 둘러보다 쫓기듯 올라가느라 제주에 대해선 별 인상도 없었던 그였다. 며칠 묵지도 않았는데 제주의 속살에 확 사로잡혔다. 첫눈에 반하듯 말이다. 해를 넘기지 않아 우연히 제주에서 또 전시를 갖게 됐다. 기회다 싶어 전시 개막에 앞서 무작정 제주에 내려왔다. 목적지도 없이 버스 타고 다니며 제주를 다시 살폈던 그는 마음을 정했다.

“2010년 2월에 꿈에 부풀어 내려왔다. 집 설계도 하고, 건축 준비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남들은 집 하나 짓는 걸 어려워하던데 오히려 나는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머무르던 곳에서 갤러리까지 이어진 길 따라 아침·저녁으로 오가는 그 시간,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영화 속 장면에 있구나. 감탄이 절로 들었다”

최근 2~3년 새 제주에서 새 삶을 일구는 이주자가 부쩍 늘고 있다. 이를 두고 ‘제주 이민’이라는 표현이 유행이다. 살던 집을 옮기는 ‘이주’가 아니라 자신의 몸에 밴 문화를 완전히 내려놔야 하는 ‘이민’이이기 때문이란다.

이 작가의 경우 준비도, 사전 정보도 없이 덜컥 몸만 옮겨왔다. 적응하는데 몸살 깨나 앓았을 것 같지만 사뿐하게 둥지를 틀었다. 누군가 귀띔해준 ‘텃세’도 겪어본 적 없단다. “운이 많이 따라줬죠” 작품 활동에 ‘영감’을 얻거나, ‘휴식’을 위해서 제주에 내려왔더라면 이처럼 짧은 시간에 안착할 순 없었을 거라고 부부는 강조한다.

▲ "이웃과 함께하는 공간이고 싶어요" 김은중 관장과 이명복 작가 부부가 이 작가의 작품을 배경으로 나란하게 포즈를 취했다.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아닌 게 아니라 이들이 가장 마음을 쏟는 부분 바로 지역과의 교류다. 지난해엔 한림초 2학년 아이들과 공동 작업을 했고, 올해는 금악초 전교생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해 갤러리에 내걸었다.

“주변 분위기, 이웃들과 흐름을 같이 해야 한다고 본다. 내가 만약 그림만 그렸다면 그 시간에 얼마나 그렸겠나. 그렇게 그린 그림은 진정성이 담겨있지 않다고 본다. 갤러리가 제주에 적응하는데 큰 작용을 한 것 같다. 심심할만하면 관객이든 손님이든 들어온다. 이렇게 생각이 저마다 다른 사람들이 다녀가면 영감이 솟는다. 어떤 전시를 소개해볼까 기획하다 보면 지루할 틈이 없다”

이 작가가 말을 잇는다. “손자·손녀 그림 보러 주변 사시는 어르신들도 갤러리를 찾아주신다. 지역 주민이 문턱 없이 드나들 수 있는 갤러리가 우리가 꿈꾸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아내인 김 관장이 서울 생활을 정리하느라 그동안은 전시 기획도 도맡았지만 그의 본분은 어디까지나 ‘작가’다. 붓으로 삐뚤어진 세상을 꼬집던 이 작가는 제주에 내려오고 몰라보게 색깔이 달라졌다. 작달막하지만 튼실한, 제주의 ‘말’에 꽂혔다. 최근엔 말 그리는 작가로 모 방송에서 다룰 정도다.

“80년대엔 주로 미국에 대해 날 세운 작품을 많이 그렸다. 권력과 부당·부조리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았다.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90년서부터는 노동자, 농부, 쪽방 거주민들에 초점을 맞췄다. 주로 전적지나 삶의 현장들을 찾아다니며 인물화나 풍경화를 그렸다. 그림도 잘 팔렸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스쳤다. ‘이러다 무너지겠구나…’”

그렇게 다시 한참을 미국에 대한 이야기를 그림에 옮겼다. 전쟁 벌이는 상황이나 상징화로 표현했다. 부시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도 서슴없이 표현했다. 부시가 임기를 마치고선 ‘부시’ 주제한 작품을 꿰어낸 개인전을 가질 정도였다. 그렇게 쏘아대던 미국의 상황도 변하던 차에 회사를 그만 두게 됐고, 제주에 오게 됐다. 모든 것이 운명처럼 딱 맞아떨어졌다.

지난해 말이 돼서야 마저 남은 서울 생활을 접고서 제주에 날아온 김은중 관장이 한마디 거든다. “지하철과 빌딩만 오가며 평생을 날씨와 상관없이 살다가 부는 바람, 내리는 비를 온 몸으로 맞고 사니 얼마나 좋냐”며 싱긋 웃는다.

“뭔가 바라는 게 있고, 목표하는 게 잘 되지 않았을 때를 답답하다고 하지. 욕심 다 내려놓으니 제주 사는 게 답답하지 않고 오히려 홀가분하다”는 그녀는 요즘 ‘제주홀릭’이다.

이 작가도 말을 보탠다. “심심해질 쯤 관객이 들어오고, 뭍에서 손님들도 오고, 각자 다른 생각을 가진 분들이 이곳에 오신다. 전시도 기획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앞으로 이들이 펼쳐나갈 그림도 거창한 포부나 목표를 내두르지 않고 그저 ‘잘 노는 것’이다.

“처음엔 컨템포러리 아트를 생각하고 왔지만 제주에 있는 작가들과, 잘 알려지지 않은 그러나 실력 있는 분들을 보여드리고 싶다. 첨단 예술을 하는 아티스트들을 제주에 데려오기도 하고.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목표다. 잊히는 작가들도 다시 소개할 수 있다면 좋겠다. 이웃과 같이 꾸며가는 공간이고 싶다”는 이 부부는 나이를 잊은 채 제주에서 인생 2막을 새롭게 펼치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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