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낳은 세계적 건축가 이타미 준 타계 1주년

핀크스, 방주교회, 영어교육도시 등 제주 곳곳이 그의 유작

▲ 늘 가슴에 ‘한국’을 품고 살았던 세계적인 건축가 이타미 준(伊丹潤.한국명 유동룡). 평생을 재일동포가 아닌 ‘한국인’으로, 이타미 준이 아닌 ‘유동룡’으로 살기를 원했다. <사진제공=ITM건축사사무소>

2011년 6월 26일. 늘 가슴에 ‘한국’을 품고 살았던 세계적인 건축가 이타미 준(伊丹潤.한국명 유동룡, 1937~2011) 세상을 뜬지 꼭 1년이다. 제주의 풍경에 반해 유난한 애정을 가졌던 그는 끝내 마음의 고향 ‘제주’ 품에 안겼다.   

고인의 유해는 지난해 7월 고국으로 돌아왔다. 7월 19일 ITM건축사사무소에서 추모식을 치르고 난 뒤 2박3일간 제주도를 찾아 그의 작품들을 둘러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화장을 한 뒤 아버지 고향인 경남 거창의 선산에 묻힐 계획이었으나 반은 거창에, 반은 마음의 고향인 제주에 뿌려졌다.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자란 이타미 준은 각각 공항 이름과 친구의 예명에서 각각 따온 필명이다. 그는 평생을 재일동포가 아닌 ‘한국인’으로, 이타미 준이 아닌 ‘유동룡’으로 살기를 원했다.

일본 무사시 공대 건축학과를 나온 그는 1968년 처음 한국 땅을 밟은 뒤 한국 고건축, 정확히 말하면 ‘조선 건축’에 매료됐다. 40년 이상 일본과 한국 등을 무대로 한국의 전통미와 자연미를 살린 건축물들을 지어왔다.

▲ 이타미 준의 대표작 '포도호텔'. 여러 채 모여 있는 모양이 꼭 포도송이 같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사진제공=ITM건축사사무소>

 

▲ 핀크스 클럽하우스 인근에 위치한 방주교회. 물 위의 교회라는 별칭을 붙여졌다. <사진제공=ITM건축사사무소, 사진=Sato Shinichi>

그는 자연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흙, 돌, 나무 같은 소재로 온기가 느껴지는 건축 지향해왔다. 시대와 전통의 틀을 넘어 그 지역의 문맥(Context)을 재해석해 건축물에 녹여내곤 했다. 예술과 건축의 경계를 오가며 현대미술과 건축을 아우르는 세계적 예술가로 평가 받고 있다. 

그가 제주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98년, 재일교포 사업가 김흥수 회장의 의뢰로 제주도 핀크스(PINX)클럽하우스를 설계하면서다. 제주 섬의 독특한 풍경과 바람,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하늘의 흐름, 신선한 공기가 그의 마음을 붙잡았다.

핀크스 클럽하우스 포도호텔(2001)과 물·바람·돌 미술관(2004), 두손 미술관(2005), 비오토피아 타운 하우스(2008) 등 이타미 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것들이 모두 ‘제주’에서 빚어졌다. 근방에 있는 방주교회 묶어 ‘이타미 준 건축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이타미 준이 총괄한 제주 영어교육도시. NLCS제주 한 가운데 놓인 'JDC 상징탑'. <사진제공=ITM건축사사무소, 사진=석정민 작가>

2009년부터는 제주영어교육도시 개발사업 관련 건축총괄 책임자(Master Architect)를 맡았다. 그가 세상을 뜨고 그의 맏딸 유이화 ITM한국지사장이 뒤를 이어 한 달만에 마무리를 지었다. 대지에서 얻은 돌, 흙, 나무, 철 등 토착적인 소재와 색과 빛을 기초로 해 이타미 준 특유의 건축미를 한껏 뽐냈다. 

핀크스 클럽하우스 내에 위치한 ‘포도호텔’ 여러 채 모여있는 모양이 꼭 포도송이 같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제주도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오름과 제주 전통 초가의 지붕선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 물 박물관. 물과 하늘과 땅이 조화를 이루는 건물 자체가 '작품'이다. <사진제공=ITM건축사사무소, 사진=Sato Shinichi>

 

▲ 돌 박물관(왼쪽)은 붉은 코르텐강으로 지어 차분한 인상을 준다. 바람 박물관(오른쪽)은 나무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 덕에 커다란 악기 같다. <사진제공=ITM건축사사무소, 사진=Sato Shinichi>

 

▲ 제주 서귀포시 핀크스 클럽하우스 내에 있는 두손 박물관. 바다와 산방산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이다. <사진제공=ITM건축사사무소, 사진=Sato Shinichi>

맞닿아 있는 ‘석(石)·수(水)·풍(風) 미술관’은 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이 아닌 자연을 수집한다는 개념이 담겼다. 자연 그 자체를 보여주기 위해 물과 바람, 소리와 빛을 한데 어우러 냈다. 건물 자체가 ‘작품’인 이곳은 2006년 김수근 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바다와 산방산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의 두손미술관까지 네 개의 미술관 통채가 작품처럼 전시됐다.

그는 건축 외에 ‘골동품’ 수집에도 집념을 보였다. 고국의 예술품에 반해 기회 있을 때마다 전국을 돌며 고건축을 답사하고 민화를 정신없이 모으기 시작했다. 고가구와 벼루, 백자, 달항아리에 꽂혀 무조건 사들였다. 일본으로 건너온 조선 달항아리 진품은 다 모았다고 할 정도다. 결국엔 생전에 일본에서 작은 박물관 하나를 차릴 정도의 골동품을 모았다. 국보급에 이르는 것들도 꽤 된다. 

유이화 소장은 <제주의소리>와 전화인터뷰에서 “아버지는 평생 일본에서 골동품을 모았다. 민화와 도자기 불상 등이 특히 많은데 건축가의 눈으로 고른 것이라 특색이 있다. 제주도에 작게나마 박물관을 짓고 싶어 지금은 부지 선정 중에 있다”고 말했다. <제주의소리>

<김태연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