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피해여성 지원쉼터 '불턱' 13일 개소

A양은 집이 싫었다. 그래서 가출했다. 가출 후 2~3개월은 친구집을 전전하다 더 이상 있을 곳이 없어서 '숙식제공'이라는 광고문구만을 보고 무턱대고 찾아간 곳이 티켓다방. 그렇게 10대에 가출한 A양은 10년이 훨씬 지나서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한번 들어선 성매매 업소에서 빠져나오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성매매 업소에서 구사일생으로 탈출했고 지금은 뒤늦게 대학에도 진학했다. 우리는 그녀를 '생존자'라 부른다.

A양이 가족에게로 돌아오고 다시 안정된 생활을 하기까지는 성매매 피해여성 지원 쉼터 등 여러 여성단체의 도움이 있었다.

도내에도 성매매 피해여성이 안전하게 쉴 수 있는 쉼터가 마련된다. 오는 13일 개소식을 갖고 본격 쉼터로 운영될 ㈔제주여민회(공동대표 김영순·김영란) 부설 성매매피해여성지원쉼터 '불턱'이 그것.

'불턱'은 불을 피워놓고 물질을 하고 나온 제주 여성들이 지치고 언 몸을 녹이며 서로의 삶을 함께 나누는 쉼자리를 이르는 제주말이다.

그 '불턱'이 이제는 제주 해녀가 아닌, 도내에 거주하는 성매매 피해여성들을 위해 불을 피워놓고 쉼자리를 마련했다.

▲ 김경희 성매매 피해여성 지원쉼터 불턱 운영위원.
성매매 업소에서 탈출한 여성의 보호를 주사업으로 하게 될 '불턱'의 김경희 운영위원(전 제주여민회 공동대표)을 만났다.

김경희 운영위원은 "2002년 군산 개복동 화재 때 제주 성매매 피해여성이 3명이나 희생됐다. 이때 각 지방별로 성매매 피해여성에 대한 지원사업의 필요성을 느꼈는데 전국적으로 대책위도 구성되면서 도내서도 성매매 피해여성에 대한 지원 사업이 시작된 것 같다"고 말했다.

성매매 피해여성은 많고, 지원기관은 없고…

김씨에 따르면 2003년 10월 현재 제주시에 등록돼 있는 성매매 관련 업소만도 2700여곳에 이른다.

도내에는 전통적 개념의 성매매 '집결지'는 없지만 대부분 상업형, 산업형 성격을 띄는 성매매 업소가 많은데 이런 성매매 업소는 해마다 늘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성매매 피해여성도 해마다 늘어 도내 상담건수가 2002년 40여건에 이르던 것이 2003년에는 90여건으로 갑절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김씨는 "80년대부터 여성운동이 급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성매매 피해여성에 대한 문제는 근래에 와서야 대책이 마련되고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며 "성매매 피해여성에 대한 제도적인 뒷받침도 필요하지만 그들을 피해자로 보지 않는 사회적인 인식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성매매 업소로부터 탈출한 여성을 보호하고 피해여성이 업주에 대해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도울 '불턱'은 현재 12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쉼자리를 준비했다.

"한 사람의 여성이라도 안전하지 않다면 우리 모두 안전하지 않은 것!"

'불턱'은 성매매 피해여성의 보호와 2년 전부터 계속해온 성매매 피해 상담을 주사업으로, 캠페인을 통해 사회적으로 방치된 성매매 피해여성에 대한 인식을 전환시키고 리플렛을 제작·배포해 성매매 피해여성들에게 지원쉼터의 존재를 알리는 사업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지난 2일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 및 방지에 관한 법률안' 등의 국회 통과에 힘입어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동조자로 처벌받아야 했던 성매매 피해여성의 구조사업과 지원시설 확충, 피해여성의 사회 복귀 프로그램 개발 등 실질적인 시행령 제정에도 힘쓸 방침이다.

   
김경희 쉼터 운영위원은 "법 제정도 환영할만하고 중요하지만 현장에서의 실효성이 문제"라며 "경찰의 수사의지도 많이 부족한 상태이고 피해여성 지원 시설에 대한 정부차원의 인적·재정적 지원도 확충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도는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성매매 피해여성들이 고립될 수 있는 상황이라 피해여성들에게는 더 큰 어려움이 있다. 현재 도내에 성매매 피해여성들의 사회 복귀를 지원하는 전문기관이 전무한 상태인 것도 큰 문제다.

'불턱'은 쉼자리가 안정화되면 성매매 피해여성의 사회복귀를 지원하는 프로그램 개발 등에도 힘쓸 계획이다.

김씨는 "많은 성매매 피해여성을 도울 수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단 한 명의 피해여성이라도 도울 수 있다면 이 일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이 사업에 대한 의욕을 내비쳤다.

'불턱'은 3월 13일 오후 2시 참사랑문화의집 3층에서 개소식을 갖고 본격 활동에 들어간다. 문의=711-9119.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