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제주와 연애하다] (2) 김주대 시인

   

강정!
보고 싶습니다. 미안합니다.
먹고 살기 위해 힘들고 바빴다는 핑계로 크지도 않은 마음만 덜렁 보내놓고 당신의 눈물을 애써 외면한 날들이었습니다. 강정, 당신이 보내온 영상을 보고서야 당신의 주름진 얼굴에서 흐르는 눈물을 따라 울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당신!
영상 속 당신은 처절했습니다. 당신의 아픈 기록들을 본 후로부터 나도 정상적이지 못했습니다. 굴삭기가 짓밟고 지나간 자리, 당신 팔이 부러졌다는 소식을 들은 날엔 나도 한쪽 팔을 쓰지 못했습니다. 당신 얼굴이 몽둥이에 맞아 퉁퉁 부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날엔 종일 얼굴에 경련이 일었습니다. 당신 등때기에 구멍을 파고 폭약을 넣는 걸 보고는 내가 먼저 다이너마이트처럼 미쳐 날뛰었습니다. 내 몸이 왜 이렇게 아픈지 조금 알 것도 같았습니다. 당신 몸은 당신 혼자가 아닙니다. 당신 몸은 천리 먼 곳에 있는 나의 몸이고 우리 모두의 몸입니다.

그리운 당신!
남한테 싫은 소리 한번 못하던 당신이 투쟁구호를 외치고, 시가 뭐냐며 슬쩍 외면하던 당신이 구럼비를 누이에 빗대어 고통의 시를 읊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으면 시를 모르던 당신이 신음처럼 시를 토해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그래서 또 미안합니다. 당신을 그리워하고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 목이 날마다 길어지고 있습니다. 당신을 향한 미안한 마음들을 모아 당신에게 가겠습니다. 가서 당신의 거칠어진 손을 잡고 당신의 시를 읊겠습니다. 당신의 뜨거운 노래를 따라 부르고 당신의 구호를 외치겠습니다.

강정! 그 어떤 말로도 다 드러낼 수 없이 깊고 아름다운 당신.
천 장의 편지, 만 장의 문장들이 당신에게 무슨 위로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당신 아픈 소식을 들을 때마다 이

이렇게 몸이 먼저 울고, 생각지도 않았는데 살이 먼저 떨리는 걸 보면 내가 당신을 무척 좋아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다 하지 못한 말들, 식은땀처럼 흐르는 몸의 말들을 얇은 편지지에 적어 보내며 나도 이곳에서 강물처럼 울고 있다고 그 말만 우선 전합니다.

강정!
당신의 소식을 듣고 나보다 먼저 일어서 걸어가는 발을 따라 당신에게 갈게요. /김주대

 

▲ 김주대 시인. ⓒ제주의소리

 김주대 시인은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89년 『민중시』, 1991년『창작과 비평』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도화동 사십계단』(청사출판사 1991), 『꽃이 너를 지운다』(천년의시작 2007), 『나쁜, 사랑을 하다』(답게 2009), 『그리움의 넓이』(창작과비평 2012)가 있다.

나는 제주 강정에 가보지 않았다

나는 제주 강정에 가보지 않았다
제주 강정 구럼비 해안의 바위를 모른다
구럼비 바위에서 솟는다는 맑디맑은 물로
대대로 제를 지내며 살아온 제주 사람들의
생사를 나는 모른다
정화수에 비치는 제주의 새벽하늘과
높은 정성을 모른다
나는 구럼비 해안의 파도 소리를 듣지 못했다
파도 소리에 귀가 울고
귀 울음으로 생활의 먼 길을 갔을
제주 사람들의 목마름을 모른다
구럼비 해안의 붉은발 말똥게의 낮은 길을 모른다
거기 산다는 맹꽁이들의 울음소리를
모른다 

나는 다만
내가, 우리가 모르는 사이, 우리가 없었던 시간에도
제주에서 제주의 땅과 바다를 안고 제주의 하늘을 이고
누대 살아온 이들이 있어서
그들만이 제주의 소유와 제주의 일초 일초와 꿈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다만
미제국의 피 묻은 군함이 코를 킁킁거리며
지금도 끊임없이 제주의 모든 해안을 노려보고 있다는 사실
노쇠한 자본 대국이 마지막 숨을 몰아쉴 때
제주의 파도와 제주 사람들의 생가슴에
더러운 죽음의 피를 토할 것이라는 사실을
비교적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러니 나는 입 없는 가슴 사람의 심장으로만 말한다 
4.3의 다른 이름 4.3의 오늘로
제주 강정 구럼비만이 아니라 모든 제주의 시간과 역사와
한반도의 현대로부터 미국은 물러나야 한다고
뼛속까지 친미인 매국첩자들과 더불어 사라져야 한다고

제주민들이여
우리 가난한 연대의 가슴이 함께 운다면
이제 나는, 우리는 모두 제주 강정이다
제주 강정의 구럼비 해안이고 바위이고 파도소리이다
구럼비 바위의 정화수로 생의 먼 길을 함께 가는
상처받은 얼굴들이다
생가슴 깊이 박힌 다이너마이트를 뽑으며
피고름을 흘리는 구럼비 바위이다
우리는 구럼비 바위의 울음이고 웃음이다
머지않아 정화수 하늘에서 평화의 빛이 쏟아질 것이라는
상투적인 노래라도 부르고 싶다
우리 모두여 그 때까지 몸도 맘도 다치지 말고 건강하시자
평범한 평화가 올 때까지 
평화가 유치해질 때까지 살아서 또 살아서
부디

나는 제주 강정에 가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제주 강정과 구럼비 바위를 안다

*한국작가회의 소속 작가들이 자발적으로 꾸린 모임 '작가, 제주와 연애하다'가 제주 해군기지와 관련해 제주도민에게 띄우는 편지를 <제주의소리>에 보내와 매주 수요일마다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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