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 해군기지의 가짜안보(4)  

  제가 10월 초순에 낸 책 <강정마을 해군기지의 가짜안보: 유령의 위협과 흔들리는 국익>의 주요 내용을 연재합니다. 프롤로그에서부터 노무현 정부와 제주해군기지, 2012 대선과 제주해군기지, ‘유령’의 위협, 제주해군기지와 이어도, 미중 패권경쟁과 ‘동맹의 덫’, 미군의 이용 문제, 제주해군기지와 미사일방어체제(MD). '유사시‘와 제주해군기지, 그리고 ’평화의 섬‘을 위한 융합형 대안의 순서로 게재됩니다. 본 책의 인세와 수입금은 강정마을을 위한 후원금으로 쓰입니다.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제주해군기지를 추진할 때 내세운 최대 명분은 우리의 해상교통로(SLOC: Sea Lines of Communication) 보호였다. 2005년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본격 추진했을 때, 해군 측은 “제주도 남쪽 해상로는 원유 수입량의 90%이상, 수출 물동량의 60%가 지나가는 수송로”라며 “제주 남쪽에서 인도네시아 말라카 해협으로 이어지는 원유와 수출입 물자 등의 해상 수송로를 보호하는 최남쪽 전초기지로서 화순항 건설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당시 참여정부는 화순항을 해군기지 건설의 1차 후보지로 정했으나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2007년 5월 제주 강정마을을 해군기지 부지로 결정할 때에도 흡사한 논리를 제시했다. “우리나라가 도입하는 원유의 99.8%, 곡물 100%, 원자재의 100%가 운송되지만 수시로 해적의 위협에 노출돼 있는 말라카 해협 등에서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지원 함정을 긴급 투입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특히 “말라카 해협이 15일 이상 봉쇄될 경우 우리 국가 경제가 마비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제주해군기지를 거점으로 한 해군의 안정적인 해상교통로 확보는 국가 생존을 위해서도 필수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노무현 정부의 판단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은 “옳은 판단을 했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이 대통령은 2012년 3월 9일 중앙부처 국장·과장과의 대화에서 “우리가 소말리아에 배가 1년에 500척 드나드는 것을 보호하기 위해 함정이 가 있는 것 아닌가”라며, 이렇게 강조했다.
  

“제주해협에서 약 50만 척이 움직이는데 세계 각국의 배가 움직인다. 중국도, 일본도. 그럼 그걸 무방비 상태로 있느냐. 진해기지, 평택기지에서 가려면 전속도로 가도 8시간이 걸린다. 그동안 해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런 고민을 그 당시 한 거 같다. 그래서 굉장히 (노무현 정부가) 옳은 판단을 했다고 하는 거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다. 해군기지 건설의 최대 명분 중 하나였던 말라카 해협 해적 퇴치가 이미 이뤄졌다는 것이다. 인도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말라카 해협은 세계 해상무역의 중심지로 일컬어진다. 실제로 세계 무역량의 40%와 세계 원유 수송량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7 또한 해협의 최소 폭이 2.7km에 불과하고 주변에 많은 섬들이 있어 해적 근거지로는 최상의 조건을 갖고 있었다. 이를 반영하듯 2004년 해적의 조직적 공격은 38건에 달했고, 2005년 영국의 보험사들은 이 해협을 사실상의 전시 지역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는 이러한 지경학적 중요성과 해적의 위협이 공존하는 말라카 해협에서의 해양 수송로 보호를 제주해군기지 건설의 최대 명분으로 내세웠던 것이다.  

그런데 2007년부터 말라카 해협의 해적 활동은 눈에 띠게 줄어들기 시작했고 2010년 이후에는 사실상 사라졌다. 국토해양부가 2011년 11월 1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말라카 해협에서의 해적 피해는 2007년 4건, 2008년과 2009년 2건, 2010년 1건, 그리고 2011년 9월까지는 1건도 없었던 것으로 나와 있다. 이들 수치는 모든 나라의 피해 발생 상황을 나타낸 것으로, 최근 한국 선박이 말라카 해협에서 공격을 당했다는 보고는 없다.  

이처럼 한때 ‘해적의 소굴’로 악명이 높았던 말라카 해협의 해적이 사실상 사라진 데에는 국제 공조체계가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등 말라카 해협의 연안국들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16개국이 해적정보공유센터를 설립해 정보 공유, 합동 순찰 등 공조 체계를 구축한 것이 주효했다. 이와 관련해 국토해양부의 한 관계자는 “말라카 해협의 경우 역내 국가 간 공조체계가 구축되면서 해적들이 근거지를 상실, 소말리아 해적 같은 조직적 해적들이 모습을 감췄다”고 말했다.

 

이러한 현실은 노무현 정부 때 해군기지 사업을 추진했던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미 해결되었고, 이에 따라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 사유가 또 하나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해군은 ‘미래의 불확실한 위협’을 이유로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하려고 한다. 실체도 불분명하고 불확실한 위협을 확실한 위협으로 만들 위험이 크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일본과 중국 위협론은 타당성이 있는가?

 

말라카 해협에서 해적의 위협이 사라졌더라도, 주변국에 의해 우리의 해양 수송로가 위협받거나 봉쇄당하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제주해군기지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남방 해역이 우리의 생명선에 해당하는 만큼, 일본과 중국의 ‘미래의 불확실한 위협’에 대처해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바다는 우리에게는 생명선에 해당된다. 우선 지리적으로 한국은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半島)국가로서, 북쪽을 제외한 동쪽과 서쪽, 남쪽이 모두 바다와 만나고 있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경제적으로도 바다는 대단히 중요하다. 대외교역의 99.7%가 해상 운송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어족과 해저 자원도 풍부하다. 특히 제주 남방 항로는 석유와 천연가스 같은 에너지 자원 운송의 핵심 교통로이다. 이로 인해 해상교통로(SLOC)가 차단되거나 마비된다면 무역은 물론 식량, 에너지 자원 수급이 중단되어 국가 경제 전체가 파탄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상교통로의 완전 차단 상태가 15일을 넘길 경우 한국은 국가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지적”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다.
 

그런데 바다의 중요성이 곧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정당화해주지는 않는다. 일단 건국 이래로 우리의 남방 해역에서 군사적 분쟁이 발생한 적은 없다. 또한 현재에도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서둘러야 할 만큼 심각한 군사적 위협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해군도 인정하는 바이다. 물론 과거와 현재에 위협이 없다고 해서 미래에도 위협이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미래의 불확실한 위협’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할 경우, 오히려 불확실한 위협을 확실한 위협으로 만들 우려는 없는지 따져봐야 한다. 군비 증강은 상대가 있는 게임이고 이것이 군비경쟁을 야기해 한국의 안보 딜레마를 격화시킬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해군기지 건설 명분으로 말라카 해협의 ‘해적 위협론’이 설 자리를 잃자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은 해군기지 건설 재검토가 아니라 일본과 중국 위협론이다. 두 나라 모두 한국보다 군사력이 강하고 일본은 독도 영유권을, 중국은 이어도 관할권을 주장하고 있는 만큼, 이들 나라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해군기지 건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 역시 검증을 요한다.

우선 이들 나라의 군사력 자체를 위협으로 간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위협은 물리력과 인식의 조합이다. 즉 어떤 세력의 군사력이 막강하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군사력을 위협으로 ‘인식’할 때 비로소 위협으로 간주된다. 한국이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갖춘 미국이나 1만 개 가까운 핵무기를 보유한 러시아로부터 위협을 느끼지 않는 이유는 이들 나라의 군사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이들 나라가 우리를 공격할 이유가 없다는 인식에 기인한다.

이러한 인식은 미국은 동맹국이고 러시아는 구소련 몰락 이후 우호협력관계를 꾸준히 발전시켜왔다는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반면 한국이 북한으로부터 군사적 위협을 느끼고 있는 이유는 북한이 남한이나 한미동맹보다 군사력이 강해서라기보다는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한 한국전쟁과 군사적 적대관계의 지속에 따른 대북 위협 인식에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일본이나 중국이 실제적인 위협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인지, 아니면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비롯한 군비 증강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 위협을 부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군사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흔히 “우리도 국력에 걸맞은 군사력을 갖춰야 한다”는 주장이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한국은 이미 국력을 넘어선 군사비를 지출하고 있다. 한국의 군사비는 절대치로는 일본 군사비의 60~70%, 중국 군사비의 30-40% 수준이다. 그런데 이를 GDP 대비로 비교해보면, 한국은 일본보다는 약 2.8배, 중국보다는 약 1.8배의 군사비를 지출하고 있다. 이미 국력에 비해 일본이나 중국보다 더 많은 군사비를 지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실적으로 일본이 우리 선박에 군사적 위해를 가하거나 우리의 해양 수송로를 봉쇄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헌법 9조에는 “국권의 발동에 의거한 전쟁 및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영구히 이를 포기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비록 이러한 평화헌법의 취지가 많이 퇴색된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이 먼저 한국의 남방 해역에서 군사적 위협을 가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거기에는 평화헌법 이외에도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동해와 달리 제주 남방 해역은 한일 간의 영유권 분쟁 지역이 아니다. 둘째는 역사와 독도 등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한국을 아시아의 핵심적인 우방으로 간주하고 있다. 셋째는 한-미-일 협력을 강조해온 미국이 한국에 대한 일본의 군사적 위협 행위를 좌시할 리 없다.

일각에서는 독도 문제를 거론하지만, 이 문제는 군사 갈등이라기보다는 외교 갈등의 성격이 짙다. 지리·군사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제주해군기지보다 동해 함대 사령부와 부산·진해 기지가 동해 유사시에 훨씬 수월하게 대응할 수 있다. 더구나 정부와 군 당국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울릉도에 해군기지 확장을 추진하는 등 대비책도 세워두고 있다.

울릉도 사동항에 확장되고 있는 해군 부두는 한국 해군의 최대 함정인 독도함과 이지스함 정박이 가능한 규모로 설계되어 있다. 국방부와 국토해양부는 총 사업비 3천1백억 원을 투입해 2015년까지 완공한다는 계획이다. 독도 방어를 위해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은 더욱 설 자리가 좁아진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중국 위협론’을 거론한다. 실제로 제주해군기지는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어도 분쟁 가능성에 대비해야 하고 한국의 해양 수송로가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 걸쳐 있다는 점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이 급속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군사력을 대폭 강화하고 있고 동아시아 해양에서 세력권을 확대하려는 현실 역시 빼놓을 수 없다.

1990년 이후 매년 10% 이상씩 군사비를 늘여온 중국은 2012년 현재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군비 지출 국가로 급성장했다. 또한 최근에는 항공모함 건조 등 해군력 증강에도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군비 증강은 이어도 문제와 연상 작용을 일으키면서 제주해군기지 건설의 최대 명분으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이 한국의 해양 수송로를 포함한 남방 해역에 군사적 위협을 가할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로는 이어도 인근에서의 군사적 충돌 발생, 미국과 중국의 무력 갈등 발생시 한국이 미국을 지원할 경우, 한반도 유사시 등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이 세 가지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제주해군기지 건설의 위험성은 바로 여기에서 연유한다.

해군의 계획대로 제주해군기지를 만들어 이어도에 대한 초계 활동에 나서면, 우리에게 최악의 시나리오, 즉 이어도 인근 수역에서의 한-중 해군 대치와 이에 따른 양국 관계의 파탄은 피하기 어려워진다. 미군이 중국과의 무력 갈등시 제주해군기지를 사용하려고 할 경우에는 더욱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한반도 유사시 중국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해군기지가 필요하다는 논리 역시 한국이 북한 무력 흡수통일론에 집착하지 않는 한 성립하기 어렵다.  

▲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제주의소리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보면 제주해군기지는 미래에 있을 수도 있는 해양 안보 불안을 해소해주는 ‘소화기’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안보와 경제를 위험에 빠뜨리는 ‘인화물질’이 될 위험이 크다. 우리의 해양 안보를 위해 건설한다는 제주해군기지가 거꾸로 우리의 생명선을 옥죄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 이 글은 정욱식 대표 블로그에서 실린 내용입니다.원글주소 : http://blog.ohmynews.com/wooksik/484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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