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멸 감독의 네 번째 장편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II> 제주 첫 시사회가 21일 열렸다. 상영이 끝난 후 오멸 감독과 고혁진 프로듀서의 GV도 진행됐다.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오멸 감독의 네 번째 장편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II> 제주 첫 시사회가 21일 열렸다. 상영이 끝난 후 오멸 감독과 고혁진 프로듀서의 GV도 진행됐다.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오멸 감독의 네 번째 장편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II> 제주 첫 시사회가 21일 열렸다. 상영이 끝난 후 오멸 감독과 고혁진 프로듀서의 GV도 진행됐다.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제주 첫 시사회 '지슬'..."4.3예술 새 장르 열었다" 평가, 제주 개봉 시스템은 '과제'  

▲ 오멸 감독의 네 번째 장편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II> 제주 첫 시사회가 21일 열렸다. 상영이 끝난 후 오멸 감독과 고혁진 프로듀서의 GV도 진행됐다.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보통 독립 영화가 1만 명 관객을 불러들이면 성공했다고 말한다. 4·3사건으로 희생되신 분들이 공식 집계로 3만 명이다. 제주에서 3만 명 관객에게 보여드리겠다는 각오로 만들었다”

마이크를 잡은 오멸 감독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북받친 감정을 주체 못하고 눈물을 터뜨렸다.

21일 오후7시 제주시 영화예술문화센터에서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II> 시사회가 열렸다. 지난 10월 막을 내린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BIFF) 이후 제주에서 열린 첫 시사회다.

이날 시사회는 텀블벅 프로젝트 후원인, 영화를 완성하는 데 도움을 줬던 도민들을 들을 위해 마련됐다. 도내 문화예술인과 4·3관련 단체 등 200여명의 관객이 참석했다.

<끝나지 않은 세월II-지슬>. 오멸 감독의 네 번째 장편이자 4.3을 처음으로 필름에 옮겼던 故가 김경률 감독의 ‘끝나지 않은 세월’ 두 번째 이야기이다.

故 김 감독의 뜻을 잇기 위해 가진 것 없이 무작정 영화를 찍었다. 10개월에 걸친 제작 기간 번번이 ‘예산’이라는 벽에 부딪혔다. 중단 위기에 처한 것도 여러 번. 끝내 완성시킬 수 있었던 건 도민들의 관심과 소셜펀딩을 통한 후원 덕분이다. 때문에 ‘도민이 만든 영화’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지슬>은 당초 내년 4.3기간 상영을 염두에 두고 만든 작품이다. BIFF 아시아영화펀드(ACF) 장편독립영화 후반작업 지원펀드 부문에 선정되면서 부산에서 첫 선을 보이게 됐다.

BIFF 개막 전 “매 맞으러 간다”고 할 정도로 부담이 상당했지만 관객들은 <지슬>에 아낌 없는 박수를 보냈다. 아시아영화진흥기구(NETPAC·넷팩)상과 시민평론가상, 한국영화감독조합상-감독상, CGV무비꼴라쥬상 등 4관왕이 그 증거다.

<지슬>은 4·3당시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큰넓궤 동굴로 피해있던 마을 주민 수십 명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제목 ‘지슬’은 제주어로 감자를 뜻한다.

먹을 것이 여의치 않았던 당시 지슬은 배를 채우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이어나가게 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뿐만 아니라 섬 땅 사람들의 아팠던 과거와 감춰졌던 진실을 캐내고 오늘과 미래를 연결하는 새로운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

영화는 잔혹하고 처참했던 4.3의 폭력성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다. 마을 주민 개개인 소소한 일상을 통해 당시 상황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심지어 코믹한 대사로 관객들을 웃기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결코 가볍지 않다.

흑백 화면으로 더듬은 당시의 기억은 등골을 타고 가슴께에 꽂힌다. 영화 상영 후 한 관객은 “너무나 먹먹해서 영화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라고 털어놨다.

 

▲ 오멸 감독의 네 번째 장편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II> 제주 첫 시사회가 21일 열렸다. 상영이 끝난 후 오멸 감독과 고혁진 프로듀서의 GV도 진행됐다.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오멸 감독이 “4·3사건 영령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마음으로 영화를 찍었다”고 했던 만큼 영화는 ‘신위’ ‘신묘’ ‘음복’ ‘소지’ 네 개의 제차로 구성됐다. 한 편의 영상시를 보는 듯 영상미와 영화의 몰입을 돕는 음악까지도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다.

영화의 모든 대사가 제주어로 쓰인 만큼 영어는 물론 제주어에 낯선 이들을 위해 한국어 자막까지 제공됐다. 제주 사람들만 알 수 있는 개그코드 덕분에 익살스런 제주어 대사가 나올 때면 관객들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2시간 가까운 러닝타임 끝에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 객석에선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영화 상영 후 곧바로 이어진 GV(Guest Visit)에선 영화 감상평은 물론 제주4·3이 지닌 과제에 대해 격 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펼쳐졌다.

제주출신 번역가 김석희 씨와 제주민예총 박경훈 이사장은 마이크를 잡고 “문학이나 미술에 치우치던 4·3예술에 새로운 차원을 열었다”는 감상평을 털어놨다.

 

▲ 오멸 감독의 네 번째 장편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II> 제주 첫 시사회가 21일 열렸다. 상영이 끝난 후 오멸 감독과 고혁진 프로듀서의 GV도 진행됐다.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오 감독이 “제주도민 모두가 4·3전문가”라고 했던 것처럼 여느 상영회와 달리 관객들은 영화가 미처 담지 못한 세세한 4·3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카피 한 줄’이라도 조심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오 감독은 “영화 한 편으로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다. 못 만든 영화도 역시 나와야 잘 만든 영화도 나올 수 있다. 한 편만 보고 평가하기보다 앞으로 나올 작품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란다. 앞으로 우리가 해결해야 할 숙제이니 지켜봐달라”고 답했다.

영화에는 유독 하나의 사물을 포커싱 아웃하는 장면이 잦다. 한 컷 찍는데 들어가는 제작비도 부담스러워서였다. 초가집 한 칸 태우기 빠듯할 정도로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여건이 지금보다 좋아지면 다시 4·3영화를 찍겠냐는 질문에는 “아직까지는 다시는 찍을 생각이 없다.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주변 사람들을 너무나 혹사시켰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예산의 뒷받침 보다 도민들의 ‘관심’을 당부했다.

오 감독은 “타 지역에 가서 상영회를 한다고 하면 영화가 못 다한 이야기는 엽서 한 장이라도 나눠주며 해야 하는데 현재 영화에 들어가는 비용 모두 연극으로 벌어다 쓰고 있다”고 어려운 현실을 설명했다.

이어 오 감독은 “제작비를 지원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주도민들의 관심”이라며 “애쓰게 영화를 만들어 놓고서 관객을 못 만나는 것이 더 큰일이다. 티켓을 사서 봐주시기만 해도 이슈가 되고 제주도 밖으로 퍼져나갈 수 있다”고 당부의 말을 건넸다.
 
이들은 앞으로의 계획도 밝혔다. 제주 개봉을 이끌 수 있도록 배급서포터즈를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지슬>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앞으로 제주에서 만들어질 영화들을 보여줄 창구를 틔우기 위해서다.

오 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제주영상위원회가 내년 3~4월 영화문화예술센터 대관을 약속했지만 디지털 상영 시스템이 미비한 상황이어서 개봉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오 감독은 “여태 영화를 만드는 데 도와준 분들을 기반으로 ‘지슬 심는 사람들’이라는 서포터즈를 꾸리려고 한다. 다양한 방식으로 지슬이 제주에서 개봉하는 데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제주의소리>

<김태연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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