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멸 감독 "'지슬' 3만 관객 불러들인다면 '사회적 사건'으로 남을 것"

3월 1일 개봉이니 앞으로 나흘 남았다. 제주에서 상영관 하나를 통째로 빌려 영화를 개봉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유례없는 기록으로 화제를 모았던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II’다.
 
25일 오후2시 제주시 아라동 간드락소극장에서 오멸 감독과 고혁진 프로듀서가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지난해 10월 BIFF 이후 넉 달 만이다.

BIFF 4관왕을 시작으로 ‘지슬’은 한국독립영화협회 선정 2012 올해의 독립영화, 29회 미국 선댄스영화제 극영화부분 심사위원상. 43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 스펙트럼 부문 상영, 19회 브졸아시아국제영화제 황금수레바퀴상까지 넉 달 동안 유례없는 기록을 이어갔다.

미국, 프랑스, 네덜란드를 오가며 수상을 거듭하는 동안 오 감독은 드러내놓고 좋은 기색을 내비친 적이 없다. ‘지슬’의 몫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오 감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영화를 통한 4.3 재인식’이 지슬이 띤 사명이다. 부담감에 BIFF 당시 응급실에 실려간 적도 있다고 그는 털어놨다.

▲ 오멸 감독(왼쪽)과 고혁진 프로듀서.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오 감독은 “지슬의 성공이 다가 아니라 지슬을 통해 4.3에 대한 재인식의 계기를 얻는 것이 먼저다. 부산에서 상 네 개 받으며 충분히 개인적 영광을 누렸다. 선댄스는 미군정과 관련된 지역이라는 데서 의미가 있었다. 지슬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4.3을 제대로 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오 감독은 몇 차례 인터뷰에서 ‘두 달 상영 기간 동안 3만 명 이상 관객이 목표’라고 말하곤 했다. 영화를 만들던 내내 스스로 다짐했던 바다. 4.3으로 희생된 제주도민은 공식 집계로 3만 명 이상.

그는 “돌아가신 분 만큼 알리는 것도 우리의 숙제 아닌가. 그 숫자만큼 보게끔 만들어야한다”고 말했다.

‘지슬’은 잔혹하고 처참했던 4.3의 폭력성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다. 마을 주민 개개인의 일상을 통해 당시 상황을 담담하게 다뤘다. 이따금 튀어나오는 코믹한 대사로 심지어 웃기기까지 한다.

오 감독은 “‘지슬’은 이념을 다룬 게 아니다. 4·3은 사람의 이야기로 보는 게 중요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어떤 데서는 아직도 4·3을 두고 폭도다 빨갱이다 폄하하는 표현을 한다. 중요한 건 밭 일구고 바다에서 일하던 순박한 사람들이 죄 없이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라고 설명을 보탰다.

‘지슬’은 제주에서 먼저 개봉된 후 3주 후 전국에서 개봉된다. 그 사이 1만 관객을 불러들이는 것이 목표다. 1만 관객은 우리나라 독립영화의 성공을 가늠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오 감독은 “1만 관객이 영화적 사건이라면 3만명 이상은 사회적인 사건이다. 이는 또 다시 정치적 사건을 낳을 수 있다. 개인이, 민중이 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일이다. 도민들은 아직도 4·3을 쉽게 얘기하지 못한다.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사회적 발언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서울 및 전국 지역 배급은 영화사 진진이 맡았다. 계약하면서 ‘제주도 배급은 제주에서 알아서 하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60만 인구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이들을 위한 제작사와 배급사는 있어야하지 않겠나 하는 이유에서다.

오 감독은 “노하우도 없이 미술감독, 배우, 연출자 네댓 명 배급 일까지 맡고 있다. 지역에서 어떻게 활로를 찾을 수 있을 지 고민이지만 기존에 있는 배급방식을 피하려고 한다. 대한민국의 영화판이 아닌 제주도 영화판으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오멸 감독이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II' 개봉을 나흘 앞두고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전주, 부산, 대구, 강릉 등 지역독립영화협회가 활동 중인 곳에서는 이들이 직접 배급을 맡는다. 스스로 ‘창구’를 열고자 하는 시도다.

오 감독은 “그분들 역시 나와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수익을 거둬들이지 않아도 좋으니 좋은 작품이 있을 때 시도해보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부탁을 드렸다”고 설명했다.

내로라하는 영화제에서 예닐곱 개의 상을 받았어도 정작 상금은 BIFF에서 받은 1천만원이 전부다. 그마저도 조연출 급료로 내치느라 영화 만들며 진 빚은 그대로다. 돈보다도 더 어려운 것은 영화인을 바라보는 지역의 시선이다.

오 감독은 “지역에선 실패하면 너무 밟혀버린다. 실패해도 괜찮다는 전제를 많이 줬으면 좋겠다. 내가 우려하는 건 ‘지슬’이 받은 스포트라이트 때문에 뒤이어 나올 지역의 작품들”이라고 털어놨다.

제작을 맡은 고혁진 피디도 말을 얹었다. “지역의 독립영화가 전국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제주는 특히 더하다. 인적이든 물적이든 모두 부족하다. ‘지슬’을 통해 지역 영화가 갖고 있는 쟁점을 충분히 살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가능성이 있으니 이제는 제도적으로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오 감독은 “여기까지 오게 된 게 사람의 힘이 아닌 것 같다. 나만 잘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반응이 아니었다. 요즘은 한라영신이 됐든, 4.3영령이나 경률이형이든 이왕 도운 거라면 끝까지 책임져달라고 기도하곤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도민들에게 당부의 말을 건넸다. “‘지슬’로 문화적으로 4.3을 이야기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왔다. 발언의 기회를 도민들이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제주의소리>

<김태연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