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18, 딸 28, 손자 378명을 혼자서 키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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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의 제주신화 이야기] (57) 백주또 원형

배타적이지 않은 어머니, 땅 가르고 물 가르는 아내

'모성'에 맹목적으로 매몰되지 않는 개체적인 어머니

송당의 당신인 백주또는 자립적이고 개체적인 제주 어머니들의 원형이다. 자립적인 그녀는 부지런하고 다부지다. 남편도 없이 혼자 몸으로 아들 18, 딸 28, 손자 378명을 키울 생각을 하면 까마득하게 여길 법도 한데 그녀는 남편에게 살림을 가르자고 제안한다. 그녀가 그런 제안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부지런함과 그것을 기초로 한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옷 달라, 밥 달라 조르는 열여덟 아들, 스물여덟 딸들을 위해 농경을 시작하고 주도적으로 미래를 대비하며, 그 많은 자녀들을 부지런함이라는 무기하나로 묵묵히 키워낸다.


그녀는 개체적이다. 아이들이 성공하길 바라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자식에게 투영시키면서 자신을 위해 아이들을 희생시키거나 껍데기뿐인 아이로 만들어 버리지는 않는다. ‘아들 간 데 18, 딸 간 데 28, 손자 간 데 378’이라는 신화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혼자 키운 아들과 딸 그리고 손자들이 제각각 제주의 전 지역으로 퍼져나가 마을을 세우고 그 마을의 중심인 당신堂神으로 버젓하게 성장하지만, 자신의 노력과 희생을 하소연하지도, 치장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덕이라며 수선을 떨지도 않는다. 아들, 딸이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삶을 크게 간섭하는 경우도 없다. 어디에 가서 살며 어떤 일을 하며 살 건지, 누구와 짝을 맺을 지를 결정하는 것은 자녀들 자신의 몫으로 남긴다. 주종관계의 논리를 멀리하려는 그녀의 자세는 만족과 결핍을 자신의 힘, 탓으로 두지 않는다. 이런 그녀의 개체성은 자유로운 연대의 공동체를 가능하게 한다. 


신화에서 아들, 딸들에 대한 언급은 아주 간단하다. 남편도 아이들도 있지만 남편과는 이혼하고, 혼자 자녀들을 키우고 독립시킨다. 아들의 이야기는 아들의 신화에, 이혼한 남편의 이야기는 그 쪽에서 나올 것이다.

 

▲ 구술자마다 자식들의 계보가 조금씩 다르다. 그 중 열여덟 아들이 좌정한 마을을 다 열거한 경우가 김오생 구송본이다.

이에 의하면 열여덟 아들 중 첫 번째 아들은 덕천리의 마을 당신이 되었고. 열한 번째 아들은 조천읍 와흘리의 마을 당신이, 열여섯 번째 아들은 구좌읍 김녕리의 당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계보가 있어서 백주또는 1만 8천 신이 있다는 ‘신들의 고향’, 제주도 무속신앙의 원조라 불리워진다. 스물여덟 딸의 계보는 남아 있지 않아서 남성중심의 체제는 신화 속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 좌: 음력 정월 열사흘에 열리는 송당에서의 신과세제. 우: 그 다음날 열리는 송당의 11번째 아들인 조천읍 와흘당의 신과세제(사진/제주전통문화연구소 제공)
▲ 송당당 백주또 당궤.

 

▲ 조천 와흘당. 비석에 백주또의 열한 번째 아들 백주도령이라 새겨져 있다.

공동체를 배반하지 않는 아내

종종 그녀는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빠져 나와 자신을 고립시킨다. ‘관계’라는 것은 본질적이고 궁극적인 인간적 원칙들을 파기하게도 하고, 때에 따라 변형시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권력, 사랑, 업적, 재산과 같은 개인적인 것에 매몰되지 않고 어느 것이 좀 더 인간적인가를 자신에게 물어보면서 행동한다.

신화를 보면 그녀는 자기 집 소뿐만 아니라 남의 집 소까지 잡아 먹어버린 남편 소천국에게 ‘소를 잡아먹는 것은 예사로 있는 일이지만 남의 소를 잡아먹는 것은 소도둑놈, 말도둑놈 아닙니까? 살림분산 합시다.’라 얘기한다.


그녀가 남편인 소천국에게 '땅 가르고 물 갈라'살림분산을 제안하는 것은 농경으로 생산방식을 전면적으로 바꾼 상황에서 소와 같은 중요한 가축을 잡아먹어서이기도 하겠지만 그것보다는 남의 소를 잡아먹은 ’악‘을 행했던 데에 더 원인이 있다고 보인다.


많은 식구가 살아가기 위해서 중요한 소였지만 자기의 소를 잡아먹은 것이라면 그건 예사로 있는 일이겠지만 남의 소를 잡아먹어 버리는 일은 남편이고, 아이들의 아버지이지만 용서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내 가정을 위해서라면 남의 것을 훔쳐오라 내몰기도 하는 세상이지만, 백주또에게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은 오리려 이혼을 결정하게 하는 이유가 된다.


백주또 원형에게는 신뢰로 이루어진 계약, 공동체, 가족, 마을의 통합을 위한 가치들이 자신만을 위한 개인주의의 가치에 앞서 선택된다. 집단의 질서와 조화, 자유와 평등에 대한 관심과 존중을 그녀는 기꺼이 우선한다. /김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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