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한 노르웨이 마을에서 느끼는 불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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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혁이 떠난 러시아 여행] (8) 키르케네스 上

 

▲ 키르케네스 마을의 집 입구의 공터에 소꿉장난하듯이 예쁘게 꾸며놓은 모습. ⓒ양기혁

국경을 넘어서자 안도감과 함께 사뭇 다른 분위기가 느껴져 왔다. 버스가 지나가는 도로 주변의 자연풍광이야 그다지 다를 게 없었지만 무언가 평온하고, 안락하다는 느낌 같은 것. 조금씩 드러나 보이기 시작하는 마을의 목가적인 풍경들. 몇 시간 후에 다시 돌아가기보다 하루쯤 머물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수였는지 작은 만(灣)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시원스럽게 물이 솟아오르는 분수와 주변의 잘 가꿔진 잔디밭을 지나서 키르케네스 마을에 버스가 도착했을 때는 낮 12시였다.

버스기사는 오후 4시에 출발한다고 다시 한 번 상기시키고, 이 곳 노르웨이 시간이 아니라 모스크바 시간임을 잊지말 것을 강조했다. 노르웨이 시간은 모스크바 시간보다 2시간이 늦었다. 그러니까 버스가 이곳에 도착한 시간은 노르웨이 시간으로는 아침 10시인 것이다.

그다지 크지 않은 마을의 중앙광장 주변으로 상가와 호텔들이 들어서 있고 그 뒤편으로 주택가가 형성되어 있다. 조금 멀리에는 바다가 보이고, 해변으로 고급 호텔들이 몇 개 늘어서 있었다. 광장 주변을 한 바퀴 돌고나서 점심식사를 할 수 있는 카페를 찾아들어갔다. 어쩌면 아침식사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앉아있는 카페에서 커피와 햄버거 하나로 점심을 때웠다. 노르웨이 돈이 준비되지 않아서 비자카드로 계산을 했는데, 노르웨이 화폐단위인 크로네의 환율을 몰라 내가 얼마큼 돈을 쓰는지 알 수 없었다. 

노르웨이는 스위스와 함께 EU에 가입하지 않은 서유럽 국가로서 EU통화인 ‘유로’대신  ‘크로네’라는 자국통화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 이 크로네의 통화가치가 어느정도인지 알 수 없었다. 카드로 결제한 금액은 얼마 안 있어서, 다시 달러로 환산하여 내 핸드폰에 메시지로 전해졌는데, 금액이 뭔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으나 정확히 세세하게 따져보지를 않았다. 며칠뒤 노르웨이를 떠날 때쯤 돼서야 1크로네가 약 200원 정도의 가치로 계산되며, 노르웨이의 물가가 한국에서보다 3-4배는 더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몇 시간 뒤에 버스를 타고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멀리 갈 수도 없었다. 잔디가 잘 관리된 축구장과 체육관을 지나 다시 주택가로 들어가서 산책 겸 마을을 둘러보고 사진 찍는 것이 고작이다. 집들은 대부분 이층으로 지어진 단독 주택이고 잔디가 깔린 마당을 갖추고 있었다. 마당 안 쪽엔 창고 같은 것이 있고, 야외 캠핑용 트레일러를 하나쯤은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을은 조용하고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으면서 집집마다 특색있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가령 마당의 화분이나, 작은 분수들, 마치 가정의 필수품처럼 보이는 창문밖으로 내건 꽃 장식들. 아기자기하고 개성 있게 꾸며진 집들이 러시아의 낡고 무미건조한 아파트와 비교되었다.

 

▲ 집 입구의 공터에 소꿉장난하듯이 예쁘게 꾸며놓은 모습. ⓒ양기혁

 

▲ 키르케네스 시내 광장 근처의 언덕에 세워진 병사의 동상. 아래 놓여진 화환엔 러시아 국기가 그려져있다. 제2차 세계대전시 노르웨이를 점령한 독일군과 싸운 쏘련의 적군을 기념하는 동상으로 보인다. ⓒ양기혁

걸어서 멀리 나갈 수도 없고, 다시 돌아와 카페에서 맥주 한잔 마시면서 모스크바 시간에 맞추어 타고온 미니버스에 다시 올라탔고, 키르케네스를 떠났다.

그러나 나는 다시 무르만스크로 돌아갈 수 없었다. 노르웨이 세관을 쉽게 통과하고, 러시아 무르만스크 세관에 들어서서 내 여권을 살피던 세관 직원은 내 비자가 이미 무르만스크에서 노르웨이로 나가면서 효력은 끝났고, 러시아로 입국하기 위해서는 비자를 다시 발급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의 말을 알아들었다.  앳돼 보이는 청년인 그 세관 직원은 키르케네스엔 러시아 대사관 사무실이 있고 거기서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며, 상심한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잠시 조사를 해야 한다며 나를 세관 안쪽 사무실로 데리고 들어갔고, 다른 제복을 입은 직원들도 부산하게 왔다가곤 했다. 보로딘버스 기사는 처음에 잠깐 얼굴을 비치더니 나를 세관에 남겨둔 채 이미 버스를 타고 떠난 것으로 보였다. 아침에 왕복요금을 이미 지불했는데, 그 버스기사는 내가 러시아로 돌아가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을까?

세관 직원은 서류를 앞에 놓고, 나에 대해서 하나하나 심문하기 시작했다. 이름과 주소, 출생년 월일, 학력과 전공과목, 대학을 언제 입학해서 졸업했는지, 직업, 가족관계 등등.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뭔가 우스운지 피식피식 웃음을 흘리며, 그러나 정해진 양식에 따라 서류의 빈칸을 채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태도로 꼼꼼하게 적어내려갔고, 여권도 한국에서 정상적으로 발급받은 것인지 살펴보기도했다. 

부족한 내 러시아어 실력과 엉망진창인 그의 영어발음으로 인해서 조사과정은 한없이 느렸고, 러시아어-영어 번역기를 동원하여 두어시간이 걸려서 대여섯 페이지씩 되는 두가지 종류의 서류를 2부씩 만들어왔다. 그리고 각 페이지마다 내 서명을 요구했다. 벌금 3천루블(약11만원)을 납부해야하는데, 노르웨이에서 비자를 받아서 러시아에 들어온 후 러시아 은행에 납부해야했다.

어쨌든 나는 다시 러시아로 돌아가서 러시아 은행에 벌금을 납부하고, 무르만스크에서 상트뻬쩨르부르그로 가는 열차를 타고 내려가서 여행을 계속하고 싶었다. 쌍트뻬쩨르부르그의 넵스키대로를 걸어보고 싶었고, 크론쉬타트 섬과 비보르크를 가보고 싶었고, 도스토예프스키가 말년을 보낸 스따라야 루사도 가보야했다. 무슨 내용인지 알지는 못했지만 시키는 대로 페이지마다 서명을 하고 한부를 넘겨받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들이 보관하는 서류의 끝에 스마트폰의 번역기로 찾아낸 문장을 영어로 쓰라고 내밀었다.

‘Claims will not have'

차후에라도 이일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지 말라는 뜻인 것같았다.

그는 밖으로 나를 데리고 나가 마침 혼자 승용차를 타고 국경을 통과하는 노르웨이인의 차를 세우고는 나를 키르케네스까지 데려다주라고 요청했다. 마치 당연히 그럴 권리라도 있는 것처럼 세관 직원은 다소 고압적으로 말했고, 중년의 대머리 신사는 무언가 께름칙한 표정이면서 마지못해 승낙하는 것 같았다. 캔맥주와 음료등이 박스채 쌓여있는 뒷좌석에 배낭을 내려놓고, 운적석 옆자리에 앉았다. 노르웨이 세관은 비자문제라는 게 없는 모양이다. 세관 직원에게 러시아 입국을 거절 당한 사정을 설명하자 그들은 흔쾌히 통과시켜준다. 

한참을 가는 동안 말이 없었다. 라디오에서는 귀에 익숙한 팝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깰 겸 말을 걸었다.
 
   ‘이런 음악을 좋아하는가?’
   ‘단지 라디오를 틀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클래식 록을 좋아한다.’

나이가 얼마나 됐는지 감을 잡을 수 없는 이 대머리 중년의 남자는 어쩌면 나와 동년배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노래를 오래전에 들은 적이 있다. 누구 노래인지 아는가?’
   ‘생각이 잘 안나는데....’

그는 잠시 사이를 두고 말했다.

   ‘이 노래는 그룹 퀸의 노래고, 프레디 매쿼리가 불렀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그 익숙한 노래는 이미 고전이 된 팝송 ‘보헤미안 랩소디’였다. 키르케네스 방향을 알리는 표지판이 서있는 갈림길이 나오자 시내 방향으로 차를 몰면서 그가 말을 건네왔다. 

‘사실 나는 키르케네스에 살지 않고, 반대쪽으로 가야한다. 그렇지만 키르케네스까지 데려다줄테니 걱정하지 말라.’ 

창밖으로는 맑게 갠 하늘과 낮은 구릉에 키작은 푸른 초목들이 아름다운 경치를 자아내고 있었다. 시간은 이미 꽤 늦은 저녁이었지만 아직도 해는 서쪽에서 한낮처럼 밝게 비치고, 평화로운 전원의 풍경이 그대로 전해져왔다. 한참동안 창밖을 내다보다 푸념처럼 마치 한숨을 내쉬듯이 탄성을 내뱉었다.

    ‘It's a beautiful country!’

그가 나를 돌아보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아침에 보로딘 미니버스를 타고 갈 때 만났던 마을 입구의 분수를 지나쳐서 중앙 광장 근처의 호텔앞에 차를 세웠다. 오늘은 러시아 대사관 업무가 다 끝났을 테니 내일 아침에 가는게 좋을 것 같다고 조언까지 해주고 그는 차를 돌렸다.

차에서 내린 바로 옆의 고급 호텔로 가는 대신 조금 떨어진 낮에 봐뒀던 호텔로 걸음을 옮겼다. 오늘 낮에 조금은 허름해 보이는 이 호텔 앞을 지나치면서 여기서 하룻밤을 머물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었는데, 여기로 다시 오게 된 것이 그 바램 때문이었을까? 이층으로 지어진 건물의 이마에 ‘BARRENTS FROKOST HOTEL’이라고 큼직하게 쓰여있다. (노르웨이어 frokost는 영어의 breakfast(아침식사)라고 한다.)

내가 다가가자 건물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키가 큰 중년의 남자는 서둘러 담배를 끄고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맞았다. 호텔 안으로 들어서면서 그는 뭔가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어보였는데 그는 일한지 얼마 안되어서 잘 모르고, 보스가 곧 올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한참을 기다려도 그의 보스는 오지를 않고, 그는 서류를 뒤적이더니 방 하나를 배정해주고 하루 방값은 900크로네인데 카드체크기를 들어보이며 고장났다고 현금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방은 2인실인데 내가 혼자라서 좀 싸게 해 주는 거라고 덧붙였다. 근처 은행의 현금지급기에서 비자카드로 노르웨이 크로네 현금서비스를 받아 방값을 지불했다.

남자는 자기 이름을 ‘스타이날(Steinar)’이라고 소개했고, 뒤늦게 들어온 ‘루바(Luba)’라는 이름의 보스를 소개했는데 그의 아내였다. 스타이날은 아내에게 내가 러시아 무르만스크를 통해서 이 곳에 왔고, 러시아말을 할 줄 안다고 말하자 루바는 나에게 러시아말을 퍼부어댔고, 나는 영어로 말해달라고 요청해야했다.

그녀는 방으로 나를 안내하면서 열쇠 두 개를 주었는데, 하나는 방 열쇠이고, 다른 하나는 호텔출입문 열쇠였다. 부부는 곧 퇴근을 했는데 아침에야 다시 돌아온다고 했다. 호텔문은 자동으로 닫히게 되어있었다. 호텔엔 손님들만 있고, 호텔밖으로 나갈 때에는 반드시 열쇠를 가지고 나가야 했다.

 

▲ 방의 침대 머리맡 벽에는 벌거벗은 남녀가 마주 바라다보고있는 그림이 한점 걸려 있었다. 그림 아래쪽에 ‘Amour & Psyche’(1907)라는 제목과 에드바르트 뭉크의 이름이 써있었다. 사진의 하얀점은 원래 그림에는 없는 내 사진기의 플래시 빛이다. ⓒ양기혁

어제 퇴근한 부부는 아침 8시가 넘었는데도 오질 않았다. 아침8시면 사람들이 활발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인 데도 밖은 인적없이 조용하고, 투숙객이 몇사람있는 호텔안도 사람의 기척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8시 30분쯤 돼서 밖의 문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닫아놓았던 데스크의 셔터문이 올라가는 소리도 들려왔다. 조금 사이를 두고 방문을 열고 로비로 나왔다. 스타이날이 반갑게 아침 인사를 했고, 루바는 데스크 안쪽의 조리대에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모양이었다. 루바는 호텔 보스이면서 조리사이기도 했고, 세탁부이면서 청소원이기도 했다.

루바가 아침을 준비하는 사이 로비의 소파에 앉아 스타이날과 잠깐 담소를 나눴다. 그는 이곳에서 좀 떨어진 광산의 기술자인데 휴일이면 아내와 같이 오기도 한다고 한다. 그에게 불만섞인 투로 출근 시간이 좀 늦지 않았느냐고 물었는데, 그는 곧바로 아직 7시도 되지 않았고, 오늘은 일찍 나온 편이라고 대답했다. 그제서야 내 휴대폰의 시간이 아직도 모스크바 시간으로 맞춰있는 것을 알았다. 

루바는 곧 로비의 탁자에 아침 식사를 차렸는데 흰빵과 흑빵 두종류의 식빵, 버터, 치즈, 햄, 베이컨, 채소종류로 오이와 토마토, 수박같은 과일 몇조각을 늘어 놓았고, 우유, 커피, 쥬스등의 음료수가 전부다. 나는 식빵 사이에 치즈와 햄 ,베이컨 한 조각씩과 오이를 넣은 샌드위치를 만들고, 큼직한 머그 잔 가득 커피를 따라 먹으니 아침 식사로 충분했다. 부담이 없고 내 입맛에도 잘 맛는 편이다.

노르웨이 시간으로 9시가 넘어서 배낭을 다시 챙기고 호텔 로비 한구석에 놓아둔 채 호텔에서 멀지않은 러시아 대사관으로 향했다. 

무르만스크 세관에서와 마찬가지로 이곳 대사관 직원의 영어발음도 알아듣기 힘들다. 더구나 생소한 이곳 지명을 섞어서 말하는 데는 대화를 포기할 수 밖에 없다. 수첩을 내밀어 비자를 받기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대사관의 젊은 직원은 시내에 있는 여행사를 찾아가서 도움을 받으라, 그리고 비자쎈터를 찾아가라면서 거리명으로 보이는 주소를 쓰고 ‘REMA 1000’이라고 덧붙였다.  

밖으로 나와서 광장을 중심으로 한 그다지 넓지않은 시 중심가를 한바퀴 둘러보았으나 내 수첩에 써준 주소를 찾을 수 없었고, 지나는 사람들에게 수첩을 내밀며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택시를 타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내가 묵었던 호텔 옆의 택시 기사를 찾아갔다. 그는 택시를 탈 필요 없고, 항구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갈 수 있다고 내가 가지고 있는 시내지도에서 항구로 가는 길을 가르켜 주었다. 택시기사의 말대로 길은 바다로 이어져 곧 항구가 나왔고, 대사관 직원이 써준 ‘REMA 1000’이라는 커다란 간판이 멀리에서도 눈에 띄였다. 그러나 ‘REMA 1000’은 대형마트였고, 비자쎈타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조금씩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아침에 호텔을 나설 땐 러시아 대사관에 가서 사정을 설명하고 금방 비자를 발급받아 저녁에 무르만스크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뭔가 어긋나기 시작하면서 어쩌면 여기에서 며칠을 묵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기도 했다. / 양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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