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심 문화유산 답사기행 열려....유홍준  “인간적 채취 남아있는 묵은성 꼭 살려야”

 

▲ 22일 열린 제주 구도심 문화유산 답사기행 ‘봄날, 탐라의 향기를 만나다’에 게스트로 참여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제주의소리

스테디셀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봄 날 제주 구도심에서 마주친 것은 서울 인사동이나 북촌과 같은 문화명소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22일 유 전 청장이 제주를 찾은 것은 제주도의회 의원연구모임인 제주문화관광포럼(대표 이선화)이 기획한 제주 구도심 문화유산 답사기행 ‘봄날, 탐라의 향기를 만나다’ 때문.

선착순 등록자 60명은 조기에 매진됐고, 소식을 듣고 온 이들까지 추가로 합세하면서 구도심 길은 백여명의 인파로 북적거렸다. 

김태일 제주대 교수를 길잡이로 목관아와 관덕정에서 시작해 구 제주시청사 터, 원도심 골목길, 서문터, 조일구락부, 칠성대, 향사당을 향해 차례로 발걸음을 옮겼다.

강문규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 소장은 1990년대 목관아가 주차장이 될 뻔하다 극적으로 복원된 사연을 전했고, 김태일 교수는 목관아 내부에 보관된 공신정 주춧돌 앞에서 이 누정 복원이 최근 무산될 뻔 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 22일 열린 제주 구도심 문화유산 답사기행 ‘봄날, 탐라의 향기를 만나다’. 김태일 제주대 교수가 칠성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작년 철거된 박진후 건축가의 작품 구 제주시청사 터도 거쳐갔다. 순식간에 허물어진 뒤 결국 주차장으로만 사용되는 이 공간의 역사적 가치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자 인파 사이에서는 ‘아~’ 하는 탄식이 섞여 나왔다.

김 교수는 “좋은 도시는 전통과 근대 건축물이 공존하는 도시인데 그런 문화의식 없이 부동산적 가치로만 분석하는게 문제”라며 “제주는 보존 가치가 많은 곳인데 지키지 못하는 곳이 많아서 아쉽다”고 전하기도 했다.

과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한짓골과 제주성의 서문이 있었던 터, 제주 기독교 포교가 시작된 역사적 현장인 성내교회, 해방직후 정치적 조직들의 아지트였던 조일구락부 등을 차례대로 둘러보며 역사적 배경에 대한 해설과 이 공간들이 갖는 의미에 대한 분석이 이어졌다.

아주 가까이 있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공간의 가치를 새로운 시선으로 접하게 된 도민들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고순태(80)씨는 구도심에 대한 새로운 접근에 “이런 답사는 처음”이라며 “옛날 어른들의 살아있는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젊은 세대들에게도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반가움을 나타냈다. 

또 “최근에 우리 고유의 것을 보존해야 한다는 것을 서서히 알게됐다”며 “이번 답사를 계기로 앞으로 구도심을 보존할 수 있는 방안이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22일 열린 제주 구도심 문화유산 답사기행 ‘봄날, 탐라의 향기를 만나다’. ⓒ제주의소리

유홍준 “몇 십억짜리 일회성 이벤트 안타까워”

관덕정 앞에서 인사말을 건넨 유 전 청장은 제주의 문화행정을 질타했다. 재작년 펴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주 편에서 관덕정을 비롯한 구도심을 다루기도 했던 그다.

유 전 청장은 “무근성 동네를 제대로 살리려면 서울 인사동, 혜화, 북촌처럼 사람들이 와서 한 바퀴 돌아보는 코스를 만드는 방법이 있다”며 “거기에 중간중간 찻집이 생기고 제주 전통 오메기떡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그게 활성화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 전제조건으로 관덕정이 옛 광장 역할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제주에서 광장 역할을 제일 잘한 게 관덕정 앞이었다. 관덕정 앞에 광장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주 문화행정은 하드웨어만 생각하지 소프트웨어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며 “이젠 소프트웨어로 하드웨어를 어떻게 채워가야 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선시대 마을 어르신들의 모임 장소였던 청사 ‘향사당’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제주에 대한 그의 애정어린 충고는 계속됐다. ‘제주문화’를 배제한 현재의 관광패턴은 제주로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

유 전 청장은 “만약 베네치아에 여행을 간다고 생각하면 거기 산마르코 광장을 갔다 오지 않은 사람은 여행을 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그 곳을 가야지 주변에 있는 베네치아의 문화유산을 볼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사람들의 삶의 문화가 어떤가 볼 수 가 있다.”며 “그런데 제주에 오는 사람은 리조트나 호텔에 묵고, 나중에 노래방이나 술집에 가버리는 데 이건 (양 쪽 모두에게) 엄청난 손실”이라고 했다.

 

▲ 22일 열린 제주 구도심 문화유산 답사기행 ‘봄날, 탐라의 향기를 만나다’에 게스트로 참여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제주의소리

유 전 청장은 문화관광을 통해 구도심 활성화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무슨 일회성 이벤트 한다고 해서 남는 것 없이 몇 억 몇 십억 날리는 걸 보면 아깝다”고 지적하며 구도심을 문화관광 명소로 만드는 데 “그 이벤트 비용과 비교하면 얼마 들지도 않는다”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골목길 중간중간에 빈 터에 음식점들, 제주만의 특색이 있는 쉼터 등 골목 곳곳에 관광객들의 눈을 즐겁고 편하게 해주는 공간들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어 유 전 청장은 “누가 됐던 관덕정과 묵은성의 인간적인 채취가 남아있는 길은 살려야 한다”며 “제주인의 삶이 더 윤택하지고, 또 방문객들이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갈 수 있는 계기. 이 두 가지가 만나서 제주가 발전한다고 생각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제주문화관광포럼 대표인 이선화 의원은 “옛 것들이 지금 당장 이익이 될 거 같지 않다고 말하지만 사실 21세기는 문화유산의 가치를 조명하고 있다”이라며 “앞으로도 이런 답사를 계속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 22일 열린 제주 구도심 문화유산 답사기행 ‘봄날, 탐라의 향기를 만나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왼쪽)과 이선화 제주문화관광포럼 대표가 인사말을 건네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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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준영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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