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일 주교, 4.3추모미사서 “정·관계 고위인사가 앞자리 차지” 국가 주관행사 비판

천주교 제주교구가 3일 오후 7시30분 제주중앙성당에서 제66주년 제주4.3국가추념일을 맞아 추모미사를 집전했다.

이날 강우일 제주교구장(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은 강론에서 “66년 만에 제주4.3이 국가가 함께 생각하고, 온 국민이 다 같이 희생자를 추모한 첫 번째 기념일이 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강 주교는 “이런 진전이 있기까지 4.3을 알리기 위해 노력한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앞으로 4.3을 통해 우리나라 미래에 참된 거름이 될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우리 모두 4.3의 참뜻을 알아야 한다는 당부도 곁들였다.

강 주교는 “4.3에 대해 여러 가지 시각이 있다. 확실한 것은 4월3일 하루에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6년의 세월 동안 도륙 당했으며, 수십 년 넘게 희생자와 유족들이 숨어 살게 한 국가가 주도한 비극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또 “미군정 시기가 아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 벌어진 일이다. 자국민을 도륙하기 위해 자국 군대를 동원했다는 것은 비상상황이라 하더라도 용서할 수 없는 반인류적인 범죄”라고 말했다.

이어 강 주교는 “국가가 추념식을 주관했다는 사실 자체가 국가의 잘못이라고 인정한 공적인 선언이라고 생각한다”며 “국가추념일이 되기까지 66년이 걸렸다는 것은 희생자들에게 죄송한 맘이다. 하지만 우리 역사가 한 걸음 나아간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추모했다.

강 주교는 “개인적으로 느낀 점이 있다. 위령제가 이뤄지는 제단 맨 앞에는 정·관계 고위 인사들이 검은 정장으로 앉아 있었다. 나도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유족들은 어디에도 끼지 못하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강 주교는 또 “유족들은 그저 고위층 행사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들은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아니”라며 “유족들이 가장자리로 밀려서 쳐다보는 모습에 맘이 언짢았다. 앞자리에 앉아있던 나도 송구스러웠다”고 고백했다.

강 주교는 “위령탑 제단 맨 앞자리에 유족들이 있어야 한다. 그 뒤에는 멍석을 깔고 정·관계 고위 인사들이 머리를 땅에 대고 용서를 청해야 했다”며 “그렇게 했다면 심금을 울리는 추모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정한 4.3추모식이 되려면 4.3에 대한 진실을 모두가 알아야 한다”고도 했다.

강 주교는 “그저 불쌍하게 사람들이 죽었다고 형식적인 추모를 하면 안된다”며 “4.3에 무슨 일이 일어났고, 왜 일어났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었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고인들 영전에 추모할 자격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강론을 마무리하며 강 주교는 “하느님은 이런 비극을 왜 허용했는지, 하느님은 우리가 무엇을 배우길 원했는지, 현실과 어떻게 연결시키려고 했는지 다 같이 고민해야 한다”며 남아 있는 자들에게 숙제를 남겼다.

강 주교는 이날 오전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에서 봉행된 제66주년 4.3희생자 추념식에 제주교구 소속 사제들과 함께 참가했다.<제주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