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에 이어 이마트까지...중소상인 '공멸의식'
지역법인화, 소비자ㆍ자치단체ㆍNGOㆍ상인 상설협의체 모색해야

서귀포 지역 상권이 요동치고 있다.
'찻잔 속 태풍'에 머물던 서귀 지역에 대형할인점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유통시장 선점을 둘러싼 경쟁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농촌지역 골목에도 '홈플러스 개점' 현수막이 내걸리는가 하면 일부 중형매장은 문을 닫을 채비를 하고 있다. 설 연휴를 앞둬 대형 할인점 진출에 따른 유통시장의 변화와 지역상인들의 체감경기를 3회에 걸쳐 보도한다.

▲ 홈플러스 정면 맞은편에 위치한 제주킹마트의 주차장. 텅비어있는 주차장이 할인점의 위력을 실감케 했다 ⓒ제주의 소리
서귀포 상권은 지난 5일  삼성 홈플러스 개점 이후 한차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듯 했다.

개점 첫날 하루 매출이 8억원대를 거뜬히 넘었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서귀포시.남제주군 경제에 상당한 타격을 가했다. 물론 그 돈은 고스란히 고객들의 호주머니를 털어낸 것이다.

"서귀 지역 주민들의 씀씀이가 의외로 적지 않더라"는 홈플러스 관계자의 말은 달갑게 들리지 않았다.

오픈한지 20일이 지난 지금 삼성 홈플러스의 파고는 잦아들고 있다. 하루 매출은 1억원대로 급감했다.

서귀포시 중소형 할인점과 재래시장은 잠시 한숨을 돌리는 듯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매출액 역시 삼성 홈플러스 개점 초기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가 요즘들어 60~80% 가까이 회복될 정도로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안심하기에 이르다는게 유통 관계자들의 말이다.

문제는 오는 5~6월이다. 국내 대형할인점 가운데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마트 '후폭풍'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엎친데 덥친 격'이다.

상인들은 "홈플러스 하나도 벅찬 실정인데 이마트까지 들어선다면 중소 지역상인들은 어디로 가야하느냐"며 볼멘소리다.

중소상인ㆍ재래시장, '공멸 의식' 팽배

"홈플러스에 이마트까지 들어서면 우린 끝장…"

서귀포시내에서 만난 중소 영세업자들은 대부분 '공멸 의식'이 팽배해 있다. 이후의 상황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만은 아니다.

중소 영세상인들이 걱정하는 것은 정해진 작은 '파이'를 놓고 막강한 자본력과 마케팅 노하우를 갖고 있는 대형할인점(삼성 홈플러스와 이마트)이 서로 경쟁할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동종업계에 돌아올 것이라는 점이다.

유통업계에선 대형 할인매장 한 곳이 들어서려면 인구가 12~15만 정도는 돼야한다는 것은 상식으로 통한다.

인구가 54만명의 서울 강남구 경우 대형 할인점은 불과 1개점에 그치고, 4개의 할인점이 들어선 순천시(27만)의 경우도  인구대비로 가장 많다고 해도 6만7500명 당 1개점에 불과하다.

그런데 서귀포시의 인구는 8만3000여명(2005년 12월 기준),. 실제 경제인구는 4만여명 밖에 되지 않는다. 

조만간 E-마트까지 들어선다면 4만명당 1개로 그야말로 전국 최고 수준이 되는 셈이다.  서귀포월드컵경기장 옆에서 준비 중인 E-마트는 5~6월쯤 개점이 예정돼 있다.

실제 창원지역에서는 삼성홈플러스가 갖가지 행사와 더불어 24시간 영업을 통해 인근 중소상인들에게 큰 위협을 주고 있다.

서귀포시의 대표적인 중형마트인 코리아마트 영업담당은 "지금은 버틸 수 있지만 대형할인점들이 앞선 자본력을 갖고 공세를 펼치기 시작하면 앞날을 장담할 수 없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 현대식 아케이드상가로 거듭난 서귀포 매일시장. 하지만 대형할인점의 진출에 예전같지 못하다 ⓒ제주의 소리

중소 자영업자 살릴 묘책은 없나…"뾰족한 방법은 없다"

시장논리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형업체들이 법적 절차를 거처 투자를 통해 대형할인점을 개점하는 것을 막을 명분은 없다.

유통 전문가들은 대형할인점 진출이 지방 영세 상인들의 몰락을 가속화시킨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유통산업의 현대화.대형화는 대세라고 보고 있다.

지난 1996년 지방 최초로 E-마트가 제주시에 첫 선을 보인 이후 도내 할인점은 점차 대형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대형할인점의 찾는 주소비자들은 30~40대. 한꺼번에 싼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장점과 원스톱 쇼핑의 편리함이 갖춰 있어 토종기업이 아니더라도 쉽게 유혹을 떨치기가 힘들다.

이와 반대로 제주시내 중소상인들의 매출액은 꾸준히 감소해 왔다. 한바탕 유통전쟁을 치른 제주시의 사례를 보더라도 뽀족한 대책은 없다.

제주시는 재래시장 활성화와 공동화 현상을 보이는 중앙로.칠성로 상가를 살리기 위해 수많은 캠페인과 수십억원을 투자했지만 효과는 거의 없었다.

서귀포시가 중소상인들을 살리기 위한 대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일단 서귀포시는 '재래시장 활성화 방안 연구용역'을 한국경제관계연구원에 의뢰한 상태다. 용역결과에 따라 중소 상인을 위해 다양한 행정.재정적 뒷받침을 할 계획이다.

또 54억원을 투자해 서귀포시 중심상권인 중정로 일대에 주차장을 조성하고, 위생점포 리모델링, 전자상거래 점포 확충 등 경영 현대화 사업에도 주력한다.

▲ 서귀포시민연대 김혁남 사무국장
이와함께 지역경제활성화를 위해 '재래시장.동네슈퍼 등 지역상권 이용하기' 같은 범시민운동도 벌인다 계획이다.

하지만 이런 대책에 대해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이미 재래시장을 중심으로 200억원을 투입해 아케이드시설, 간판 및 좌판 정비사업을 벌였지만 여전히 지역경제는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김혁남 서귀포시민연대 사무국장은 "지속적인 인구감소로 소비자층이 없어지는 형국에 시설투자만 한다고 해서 지역경제가 살아날 가능성이 있겠느냐"고 되묻곤, "깜짝 캠페인과 범시민운동 등 보여주기식 행정을 통해서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대형할인점 수백억원 매출액 모두 서울로

역외유출…'지역법인화' 고민할 때

이미 들어선 대형할인점에 마냥 문을 닫으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지역에 들어선 대형할인점을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은 당초 자치단체의 행정차원의 규제가 있었지만 이미 때가 늦어 이마저도 쉽지 않은 형편이다.

서귀포시는 지난해 말에야 허둥지둥 대형할인점 입점 규모를 규제하는 조례를 만들었지만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이 돼 버렸다.

중요한 다른 방안은 '지역법인화'다. 현재 제주도내에 있는 대기업 대형할인점은 매출액 대부분을 서울 지역 거래은행으로 직송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서귀포시 경우 지역경제가 침체돼 있는 현실에서 삼성 홈플러스에서 거둔 대부분 매출액이 서울로 역외유출돼 결국 지역경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우려가 나올만도 하다.

하루 매출액을 최소 1억원으로 잡는다면 삼성 홈플러스가 벌어들인 연간 365억원이라는 거액이 도외로 빠져나가는 셈이다. 자연히 서귀포시 자금줄은 말라버릴 것이라는 우려 또한 엄살이 아니다.

세수 문제도 크다. 현재 이마트의 경우 연간 10억원 안팎의 세금 밖에는 내는 돈이 없다. 비교적 잘나가는 중형할인점이 세금을 5~6억원 내는 것을 감안한다면 대기업 할인점의 매출대비 세금 납부는 지나치게 적은 편이다.

따라서 지역법인화가 이뤄질 경우 점포 매출액의 역외유출을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수까지 확충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광주 신세계에서 배워라"

아울러 지역법인화는 소비자와 지역사회의 기대 속에서 적정 이윤을 실현하고 지역 밀착경영을 통해 상호번영의 길을 모색하는 출발점이라는데 의의가 있다.

대형할인점의 지역법인화는 우리나라에서 아직 선례는 없다. 하지만 광주 신세계백화점의 경우에는 지역법인화를 통해 지역사회와 공존하고 있다.

광주 신세계는 지난 1995년 개점하면서 지역법인으로 설립, 광주은행을 주거래은행으로 이용하면서 자금을 관리하는 등 지역 내에 자금이 회전되도록 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와함께 장학회 결성, 우수협력업체 대금결제 개선, 지역상품 우선 판매 등으로 다양한 지역사회 환원 사업도 이뤄지고 있다.

제주시는 지난 2003년 E-마트에 지역법인화를 요청했었지만 무산된 사례가 있다. 대형할인점이 도내 중소상인의 침몰을 가속화시키는 상황에서 지역법인화를 위한 광범위한 논의와 도민사회의 합의가 절실한 시점이다.

중소 영세 자영업자ㆍ대형할인점 서로 상생 찿자!
 소비자.상인.NGO.자치단체 머리 맞대야

대형할인점이 서귀포시에 들어선 이후 중소상인과 지역경제는 마치 바람앞에 등불처럼 벼랑 끝 위기에 놓였다.

홈플러스 매장 바로 앞에서 킹마트를 운영하는 조동수 점장은 "자체 구조조정으로 앞으로 버틸 수 있지만 이마트 개점 이후가 걱정"이라며 "지역 상인들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자구노력도 필요하지만 자치단체와 소비자들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 김학준 이어도정보문화센터 이사장
김학준 이어도정보문화센터 이사장은 "이미 들어선 대형할인점을 없애지 못할 바에는 중소상인들과 상생을 위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를 위해 김 이사장은 '소비자.상인.NGO.자치단체'가 머리를 맞대 묘안을 마련하기 위한 단초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이사장은 "대형할인점으로 이미 중소상인들이 큰 피해를 보고 있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다"며 "조금 늦은 감이 없지는 않지만 소비자.상인.NGO.자치단체가 함께 참여하는 상설 협의체와 같은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연대 김혁남 사무국장은 "지역법인화를 통해 대형할인점의 지역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방안을 먼저 찾아야 한다"며 "아울러 지역사회가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는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국장은 "외국 사례를 보면 지방정부나 지방의회가 입점 단계에서 부터 개장시간까지 대형할인점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며 "자치단체나 의회가 이벤트성 제스처에서 벗어나 다양한 의견을 수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종매장과 영세상인, 그리고 대형할인점간에 치열한 유통시장 경쟁의 회오리 속에 있는 서귀포시. 더 늦기 전에 모두가 고루 잘사는 상생 방안을 찾아야 할 때다 .
[취재= 양김진웅 / 이승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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