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한 이 세상에 내려온 15 성인(聖人)
타락한 이 세상에 내려온 15 성인(聖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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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병의 제주, 신화 2] (10) 천지왕본풀이 6-곱가르기3 제청신도업(祭廳神都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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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타락한 이 세상을 고치는 맑고 청랑한 저승법

굿을 시작하면, 맨 처음에 신을 청하는 청신의례(請神儀禮)로 <초감제>를 하는데, 초감제의 맨 처음에 시작하는 ‘베포도업’의 마지막 순서[祭順]인 제청신도업(祭廳神都業)은 “타락한 세상 굿판에 신들이 내려와 모이게 하는 것이다.” 굿판[祭廳]에 하늘과 땅의 모든 신들, 1만 8천신들이 다 모여와 이제 비로소 굿을 할 수 있는 굿판의 완성을 알리는 것을 ‘제청신도업’이라 한다.

이 대목은 <천지왕 본풀이>의 마지막 이야기, 대별왕·소별왕 도업 이후에, 저승과 이승이 나뉜 뒤에 이 세상은 소별왕의 ‘사람 잡는 악법’ 이승법으로 다스리게 되었지만, 사람은 병들고 이울어 죽음의 곡성만 쌓여가는 세상이 되었다. 가난하지만 착하고 지순한 총명부인이 악독한 부자 수명장자에게 장리쌀을 꾸어다 밥을 짓던 시절보다 더 살 수 없는 지옥 같은 세상이었다.

그리하여 천지왕은 세상을 제도할 성인(聖人) ‘지혜의 현자(賢者)’를 세상에 보내었다. 그들이 15성인이다. 그러므로 <천지왕 본풀이>는 세상을 만든 이야기, ‘창세신화(創世神話)’라 하지만, 구체적으로 말하면, 굿을 통해 세상을 바꾼 이야기다. 병든 사람을 살리는 이야기다.

왜 굿을 해야만 세상을 바꿀 수 있고, 굿을 통해서만 병든 사람을 살릴 수 있었을까? 세상이 타락했기 때문이다. 왜 세상은 살인, 강도, 도적이 많은 혼탁한 세상이 돼 버렸을까? 최고 최초의 사기꾼 소별왕의 잔꾀, ‘최초의 속임수’가 천부지모의 하늘 법을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천지왕 본풀이>에 의하면,

일어나고 보니, 형님 대별왕 앞의 번성꽃(무럭무럭 자라나던 꽃)은 동생 소별왕 앞에 가고, 동생 소별왕 앞에 있던 검뉴울꽃(시들시들 이울어가던 꽃)은 형님 앞에 가 있었구나. 설운 형님이 말하기를, “설운 동생 소별왕아. 너는 이승법[此生法]을 차지해 이승왕으로 들어서기는 하라마는, 네가 다스리는 인간 세상엔 살인, 역적, 도둑, 간통, 유괴 많으리라. 그리고 남자 아이 열다섯 15세가 되면, 이녁 부인 놓아두고 남의 여자 후리는 일 많으리라. 여자 아이도 열다섯 15세만 넘으면 이녁 남편 놓아두고 남의 서방 후리는 일 많으리니, 나는 맑고 청량한 저승법을 마련하여 저승[彼生]을 차지하겠다.”하고는 이 세상의 질서를 마련하기 전에 저승으로 가 버렸다. (현용준의 『제주도무속자료사전』, 45쪽.)

그리하여, 하늘을 속이고 땅을 속이고, 하늘같은 아버지와 땅과 같은 어머니, 천부지모(天父地母)를 속이고, 마음 착한 형, 저승왕 대별왕을 속인 마음씨가 고약한 동생 소별왕이 이승왕이 되어, 이 세상을 차지했기 때문에 이 세상은 악이 들끓는 타락한 세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소별왕이 차지한 이 세상, 이승[此生]의 이야기는 창조신화 <천지왕 본풀이>는 굿법인 저승법으로 타락한 이승을 바로잡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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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5 성인(聖人) 시대의 도래

<천지왕 본풀이>는 옛날 고대의 역사와 함께 열다섯 15 성인(十五聖人) 도업 제(祭)를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 <천지왕 본풀이>의 끝부분 이야기는 굉장한 내용을 닮고 있는 것 같다.

인간 세상의 분쟁을 막는 남정중하정려(南正重火正黎) 도업부터, 천황씨가 다스리던 1만8천세로부터 지황씨, 인황씨 도업, 나무로 집을 짓고, 불을 이용하고, 물을 이용하고 달력과 해 그림자를 이용하여 시간을 알게 해준 성인(聖人) 들의 도업, 그리고 공자, 맹자, 예수, 석가 등이 타락한 세상에 오셔서 인간을 구하는 이야기를 <천지왕 본풀이>는 아주 조금만 이야기해 주지만, 거기에 담고 있는 십오 성인의 이야기는 고대 조선 배달의 역사를 이야기해 준다. <천지왕 본풀이>에 의하면,

대별왕도 도업, 소별왕도 도업하고, 남정중화정려(南正重火正黎) 도업 제(祭)를 이르자. 천황씨(天皇氏)는 나무의 덕[以木德]으로 왕(王)이 되시어, 형제 12인이 무위이화(無爲而化)하여 1만8천 세(一萬八千歲) 도업하시고, 지황씨(地皇氏)는 불을 이용하는 방법[以火德]으로 왕이 되시어 형제 11인이 각각 일만 팔천 세 도업하시고, 인황씨(人皇氏)는 형제 9인이 분장구주(分掌九州)하여 백오십 세(百五十世) 4만 5천 6백년(四萬五千六百年) 도업하시고, 그 뒤에는 유소씨(有巢氏)는 태어나 나무로 집을 짓고, 나무 열매를 따먹으며 살았고(構木爲巢 食木實), 그 뒤에 수인씨(燧人氏)에 이르니 비로소 부싯돌을 뚫어 불을 내어 사람들로 하여금 불에 구워서 먹는 법을 가르치셨고,(至燧人氏 始鑽燧 敎人火食) 이어서 여와씨(女媧氏)는 옷을 지어 입는 법을 마련하던 성인(聖人)님도 도업하시고, 그 뒤에 태호복희씨(太昊伏羲氏는)가 나시니, 성은 풍성(風姓)이라, 사신인수(蛇身人首), 머리는 사람 머리요, 몸은 뱀 몸이 되니, 팔괘를(八卦) 그려 글 쓰는 법 가르치고, 시집가고 장가드는 남녀구별법(男女區別法) 마련하고, 그물을 놓아 고기 잡는 법을 마련하던 성인(聖人)님도 도업하셨네.

그 뒤에,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가 나시니 성은 강성(姜姓)이라, 인신우수(人身牛首), 머리는 소의 머리 몸은 사람 몸이 되니, 쟁기와 보습을 만들어 농사(農事)짓는 법을 가르쳤고, 백 가지 풀을 맛보아, 이약감물법(以藥鑑物法)을 마련하던 성인님도 도업하셨으며, 그 이후 황제 헌원씨(黃帝軒轅氏)는 방패(防牌)를 지어 불량배를 막고, 활을 지어 난리(亂離)를 막고, 수레를 만들어 먼 길을 통행(通行)하고, 배를 지어 저 바다를 넘나들게 하던 성인님도 도업하셨고, 그 이후 전오고양씨(顓頊高陽氏)는 창의(昌義)의 아들이요 황제의 손(孫)이니, 달력[冊曆]을 만들어 밤과 낮을 분간(分揀)하고, 굴메(그림자)를 보아서 시간(時間)을 아는 법을 마련한 성인님도 도업하셨다.

그 후 부안씨가 솟아나고, 그 뒤로 갈천씨 솟아나고, 요안씨 솟아나고, 본도향씨 솟아나고, 혼돈씨 솟아나고, 적화씨 솟아나고, 이후 소호 금천씨(少昊 金天氏)가 솟아나고, 하나라 우왕(夏禹王), 상나라 탕왕(商湯王), 주나라 무왕(周武王)이 권력싸움이 일어나니, 하늘에선 공자(孔子)같은 성인(聖人)님을 내리시어 시경 서경 주역(周易)을 지어서 악(惡)한 사람 선(善)하게 하고, 책(冊)을 내어 글을 배워 선비 됨을 가르치시던 성인님들도 도업하셨으니,  열다섯 십오성인(十五聖人) 도업을 제 이르자. (문무병, 《제주도 무속신화》81쪽)

<천지왕 본풀이>에 아주 조금 남아있는 이야기지만, 굿 초감제 배포도업의 ‘제청신도업’은 결국 15 성인(聖人)이 세상에 내려와 타락한 세상을 제도하였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별왕이 이승법으로 다스리지 못하는 이 세상을 ‘저승의 맑고 공정한 법’으로 다스리는 ‘굿법’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굿을 하여 세상을 바꾸는 저승법, 굿을 하여 ‘신질(신이 가는 길)을 발루는(바로 잡는) 굿법’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결국 <천지왕 본풀이>의 완성은 천지창조의 완성이며,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구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의 세상, 현실 세계가 이루어지기 전의 과거 선천개벽(先天開闢)과 미래에 올 후천개벽(後天開闢)의 미륵 시대를 굿을 통해 현실 세상에 구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15성인의 강림은 계획된 변혁, 타락한 이 세상을 맑고 청량한 저승법으로 정화하는 굿법이 생겨난 이야기였다. 이를 제청신도업(祭廳神都業)이라 한다. 15성인 도업은 1만8천신들을 모시고 굿을 하여 타락한 세상을 정화하는 이야기이다. 천지창조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은 “밥을 먹게 되었고, 사랑을 하게 되었고, 문명을 꽃피우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므로 <천지왕 본풀이>는 창조의 씨앗, 인문학이 시작을 이야기 한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에 실패한 인간들이 대안으로 제시하는 저승법전, 굿을 하여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는 굿법의 시작을 이야기한다. <천지왕 본풀이>는 결국 차례가 바뀌어 대별왕이 저승왕이 되고, 소별왕이 이승왕이 되면서부터 악한 이 세상을, 현실세계를 천국으로 만들지 못한 신들을 모아 굿판에서 맑고 청랑한 ‘굿법’으로 굿을 하여,  ‘신질을 발루고’ 개판 세상을 정화하는 굿의 시작을 이야기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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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무병 제주신화연구소장·민속학자.
굿을 하여 환자의 병을 고쳐주고, 망자의 한을 풀어 저승으로 보내는 일, “병을 고친다(治病)” 또는 “한을 푼다(解寃)”는 직접적인 목적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이승의 무질서를 맑고 공정한 저승법으로 다스리는 것이다. 이 세상은 악이 들끓는 무질서한 세상이 되었지만, 인간은 신을 청하여 굿을 하고, 맑고 공정한 저승법으로 이승의 무질서를 곱 가르는 ‘굿법’으로 인간세계를 새로운 질서의 이상세계로 건설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 문무병 제주신화연구소장·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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