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대 오른 원도정 협치] (2) 시민사회와의 협치
시장 임명으로 다 끌어안았다? '파트너 인정'이 우선

원희룡 제주지사가 '협치'의 모델을 만든다며 민선시대 이래 최초로 시민사회 출신 이지훈 전 제주참여환경연대 대표를 제주시장으로 임명했다.

이 시장은 제주지역 학생운동 1세대로 시민사회운동의 기틀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나, 시민사회는 속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다.

일부에선 그래도 공무원 출신 보다는 낫지 않겠느냐는 의미있는 반응도 있지만, 모양새를 의식한 원희룡 도정의 사람 빼가기가 아니냐는 반응이 팽배하다.  

원 지사는 7일 이 전 대표를 제주시장으로 임명하면서 "제주 시민사회의 핵심적 인물로 무에서 유를 만들어가는 창조적 아이디어와 업무능력이 탁월한 분"이라며 "시민사회 출신이기에 협치의 실제 모습을 만들고, 운영하는데 큰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행정시장 임명과 관련)공직자와 시민사회 출신, 남성과 여성, 도내 인사와 도외 인사를 조화시켰다"며 "공직사회와 선거정치권 주변이라는 틀을 깨면서도 조화와 연착륙을 이룰 최적의 인물 조합을 고민했다"고 덧붙였다.

원 지사의 이런 발언에도 불구하고 시민사회는 원 지사의 진정성을 못미더워하는 눈치다. 

특히 인수위 시절부터 곶감 빼가듯 시민사회 출신 인사들을 하나 둘 자기 진영에 끌어들이면서 시민사회의 정체성에 흠집이 나고, 도매금으로 권력추구 집단으로 비쳐지는게 아니냐는 우려도 일고 있다.

실제로 원 지사는 당선 이후 만들어진 새도정 준비위에 전체 위원 130여명 중 시민사회 출신만 20명 가까이 영입했다.

'협치'란 명목으로 시민사회 대표급 인사들은 물론 실무진까지 징발하면서 한 때 시민단체에서는 대책회의까지 할 정도로 당혹해 했다는 후문이다. 

환경단체 한 실무자는 원희룡 지사의 '협치'에 대해 배려가 없다고 일갈했다.

익명을 요구한 환경단체 관계자는 "원희룡 지사가 인수위부터 시민사회 인사들을 곶감 빼가듯 데려가더니 시민사회 상징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이지훈 전 대표를 시장으로 앉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본인이 가서 자기 철학을 갖고 시정을 제대로 운영한다면 현재 나오는 비판을 잠재울 수 있다. 시민단체 출신들의 정치참여를 마냥 비판할 일은 아니"라고 긍정적인 면도 얘기했다.

하지만 "제주시장은 처음 야당 몫으로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인사 추천을 거부하니 꿩 대신 닭이라는 생각으로 시민사회 인물을 원 지사가 선택한 것 같다"며 "원 지사가 협치라는 이름으로 물리적 결합을 하려고 하는 데 오히려 시민사회의 정체성을 훼손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모양새와 이미지를 중시하는 사람 빼가는 식의 정치는 협치가 아니"라며 "상대방 입장이나 정체성도 인정해 줄 수 있어야 하고, 협치에도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시민단체 관계자는 "협치라고 하는 데 이번 제주시장 인선과 관련해서 시민사회와 공식적인 논의가 없었다"며 "시민사회 전체가 원희룡 도정에 협치를 약속한 것처럼 비쳐지면 곤란하다"고 선을 그었다.

이 관계자는 이번 제주시장 임명도 개인과 시민사회를 구분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시장이 시민사회를 대표해서 제주시장으로 간게 아니라는 얘기다.

홍기룡 외국인평화공동체 대표는 "도정을 견제하고, 쓴소리를 하는게 시민사회의 본래 역할"이라며 "도정을 비판하던 사람이 돌연 제도권으로 진입하게 되면 시민사회의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노동계 인사는 "관료 중심 사회에서 시민사회 출신이 관료사회로 들어가 도민들의 요구를 제대로 대변할 수 있다면 긍정적일 수 있다"며 "관료의 벽을 얼마나 넘어설 지 지켜봐야 한다"고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그렇지만 이 인사는 "시민사회의 상징적 인물이 덥썩 권력집단에 들어가면서, 자신의 과거 행보가 모조리 부정되고, 시민사회가 마치 권력을 좇는 집단으로 비쳐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은근히 걱정했다.

원 지사는 최근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 협치에 대해 "공무원들이 공문서에 전부 다 협치를 갖다붙인다. 민원인도 무엇을 들어줘야 협치라고 하는데 (사안마다)협치를 갖다붙이면 진짜 협치는 설자리 없다"며 "진짜 협치는 하루아침에 다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모든 분야에 협치가 적용돼서 좋은 결과 나올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 바 있다.

야당과 시민사회를 아우르겠다며 협치를 내세우는 원희룡 지사. 그러나 시장 한명을 임명했다고 해서 시민사회를 끌어안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도정 추진, 혹은 현안 해결 과정에서 시민사회를 파트너로 인정하고, 꾸준히 그들의 의견을 듣는 게 중요하다. 

원 도정 앞에는 시민사회를 향해 손을 내미는게 자신의 주가를 높이기 위한 이미지 정치가 아닌, 헙치의 진정성을 보여줘야 하는 과제가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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