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이야기
석유 이야기
  • 김수종 전 한국일보 주필 (hik0007@naver.com)
  • 승인 2014.10.21 13: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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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칼럼] 미국의 셰일 혁명

오늘은 석유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뉴스를 보면 석유 값이 계속 내리고 있습니다. 지난 6월 국제유가의 기준이 되는 북해산 브렌트유가 배럴당 115달러까지 상승했다가 요즘 25% 이상 떨어져 85달러 선에 거래됩니다.

어느 정도 등락은 있지만 석유 값은 계속 오르는 게 우리의 뇌리에 굳어졌습니다.
석유는 국제 정세에 매우 민감한 전략 상품입니다. 특히 중동 정세가 불안정해지면 가격은 뜁니다. 중동은 지금 서방의 이슬람국가(IS) 소탕 작전으로 뒤숭숭합니다. 게다가 주요 산유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와의 충돌로 세계가 긴장하고 있습니다. 국제 정치 상황으로만 보면 석유 값이 지속적으로 하락할 수 없는 조건입니다.

그런데 석유 값이 크게 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석유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두 가지 상황 변화를 듭니다. 첫째 유럽과 중국 등의 경기 부진으로 석유 소비가 줄었고, 둘째 미국의 ‘셰일 혁명’으로 공급이 늘었기 때문입니다.

뉴욕타임스는 10월 7일자 에너지 특집 기사에서 ‘미국, 석유 유통의 전환점에 서다’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습니다. 그 첫 구절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싱가포르 선적 유조선 ‘B.W.잠베시’ 호가 7월 30일 원유를 싣고 갤버스턴 항을 출발하여 목적지 한국을 향해 돛을 올렸다. 이 항해는 미국 에너지 산업의 중대한 전환점을 상징한다. 이 유조선에 선적된 원유 40만 배럴은 40년 만에 미국 본토의 원유가 해외로 처음 제한 없이 수출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유조선의 출항은 미국이 석유 수출국으로 20세기 전반기에 세계적으로 행사했던 막강한 영향력을 다시 잡는 무대의 막을 올리는 것이다.”

미국이 셰일 혁명으로 석유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전환하는 상황을 극적으로 묘사하는 기사입니다. 이 글은 국제 석유 정치의 흐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석유 수출국이 됐다는 소식을 들으니, 40년 전의 까마득한 잔상이 기억에 떠오릅니다. 영어 용어가 흔하게 쓰이지 않던 당시 ‘엠바고(embargo)’란 단어를 확실히 암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지만, 1973년 중동 산유국의 석유수출금지 조치로 전 세계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당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은 두꺼운 스웨터를 입고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 나와서 에너지 절약을 선언하고 휘발유 배급제를 발표했습니다. 미국의 주유소 앞엔 휘발유 배급을 받으려는 자동차가 긴 행렬을 이루었고, 아직 자가용 시대가 열리지 않았던 그때 한국 사람들에게는 참 신기한 광경이기도 했습니다. 임신한 여자가 새치기하자 뒤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던 한 남성이 이 여성을 권총으로 쏘아 죽이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막 경제 도약을 하려던 한국은 오일쇼크의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인플레이션이 일상화했던 시대에 석유 값 폭등으로 한국은 살인적인 물가상승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습니다. 지금 50대 후반 이상의 사람들은 그때 참기 힘든 시대를 보내며 석유 값이 국제 정치의 산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40년 동안 석유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것은 사우디아라비아를 종가로 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였고, 냉전체제가 무너지면서 러시아가 가세했습니다.

미국은 1975년 석유금수를 선언하고 알래스카 유전을 개발하는 등 악을 썼지만 국내 유전은 점점 고갈되고 국제 석유 시장은 중동 산유국의 손아귀에서 놀아났습니다. 중국을 비롯한 개도국이 경제발전을 하면서 석유 수요가 늘자 값은 치솟았고, 2008년 한때 배럴당 145달러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유가는 두 자리 수로 돌아오기 힘들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미국의 고통은 컸고, 에너지 문제는 국가안보 의제가 됐습니다.

미국은 절치부심했습니다. 미국 정부가 이를 갈았다고 뾰쪽한 수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석유 값이 오르면서 석유 업자들이 석유 채굴에 대한 혁신적 기술 개발을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 지하 1,000미터 이상 깊이의 셰일(頁岩 혈암)층에 산재한 석유와 천연가스를 퍼내는 '수압파쇄공법'이라는 기술을 발전시켰습니다. 수직으로 갱을 뚫고 들어가다가 혈암층이 있는 지점에서 다시 수평으로 관을 깔아 고압으로 물과 화학약품을 분사하여 암벽을 깨부수고 석유와 가스를 끌어 모으는 공법입니다.

이렇게 해서 포집한 석유를 '셰일 석유' '셰일 가스'라고 합니다. 대량으로 생산되는 셰일 석유가 세계 석유 수급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을 '셰일 혁명'이라 합니다. 셰일 혁명의 진원지가 텍사스 주(州)입니다. 텍사스의 가스 업자 조지 미첼은 가난한 그리스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일생 천연가스 채굴 개발에 매진하다가 막판에 수압파쇄공법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옛 영화 '자이언트'의 무대 텍사스 주(州)는 원래 미국의 최대 유전 지대입니다. 황야의 땅에서 미국의 부(富)를 20세기 내내 퍼 올려온 땅입니다. 석유 돈이 쏟아지면서 휴스턴이라는 거대한 도시가 생겼습니다. 메이저 석유회사와 부호들이 몰려들어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석유와 천연가스의 탐사, 채굴, 자본 및 장비조달 등에 관한 거래가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그래서 휴스턴은 ‘세계 에너지의 수도’로 불립니다.

미첼의 수압파쇄공법 덕분에 텍사스 황야에는 셰일 석유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휴스턴 또한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될 것입니다. 한국으로 첫 석유 수출의 뱃고동을 울린 갤버스턴은 바로 휴스턴을 배후지로 둔 무역항입니다.

미국은 30년 만에 석유 생산이 정점에 이르렀고 계속 늘고 있어 2, 3년 내에 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의 생산량을 추월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셰일 혁명으로 미국은 에너지 시장의 주도권을 다시 쥐게 된 반면, 과거 큰소리치던 석유수출국기구 국가들과 러시아는 석유 값 하락으로 핀치에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이란 베네스엘라 러시아 등은 석유 세수가 줄어 재정 파탄까지 염려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중국도 미국을 석유 수출국으로 대접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입니다. 이제 국제 에너지의 판도는 중동에서 미국의 손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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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종 전 한국일보 주필, 국제녹색섬포럼 이사장.

한국은 석유 값 결정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국가이면서 10대 석유 소비국입니다. 하루 230만 배럴의 석유를 소비해야 돌아가는 나라입니다. 거의 쿠웨이트의 생산량을 소비하는 꼴입니다.

석유 값이 구조적으로 하락할 것이라는 기대에서 미국의 셰일 혁명은 반가운 일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 분위기는 아직은 답답합니다. 21세기 들어 승승장구하던 삼성전자와 현대중공업의 영업 실적이 곤두박질치면서 주식 가격은 한없이 떨어지고 있으며, 대학 졸업생의 일자리는 절망적일 정도로 꽉꽉 막혀 있습니다. 석유 값 하락이 한국 경제에 좀 생기가 돌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 이 기사는 자유칼럼의 동의를 얻어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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