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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가 우리 곁으로 온다. 매주 한편씩. 시보다 사람이 큰 시인 김수열. 제주 섬에서 나고 자란 그가 30여년 정들었던 교단을 떠나며 시를 담은 도시락(島詩樂)을 들고 매주 월요일 아침, 독자들과 산책에 나서기로 했다. 살다가 시가 된 제주 시인과 그들의 시를 김수열 시인이 배달한다. 섬(島) 시인들이 토해 낸 시(詩)가 주는 소박한 즐거움(樂)이 쏠쏠할 테다. 시 낭송은 시를 쓴 시인이 직접 맡고, 김수열 시인은 시 속에 살아 숨 쉬는 소리를 끄집어내 우리에게 들려주기로 했다. 우리의 일상과 너무나 가까운, 우리의 생각과 너무나 닮은 시인의 목소리로.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가슴을 든든히 채워줄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 산책’에 <제주의소리> 독자들도 함께 동행하길 기대한다. [편집자]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 島詩樂 산책](14) 밥상을 차리며 / 김영미

매일 똑같은 밥상을 차리고
매일 똑같은 반찬을 뒤적이고
같은 때에 건네오는 물음에 같은 대꾸를 하고
조금도 변하지 않은 일상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면서
날카로운 식감食鑑이라 자랑하고
살기 위해 목숨 걸고 하는 일은
입 안에 든 세 치의 혀를 감미롭게 자극하는 일
짧은 식도와 긴 내장을 거치는 삶을 위한 시간에도
나는 내 친숙한 삶에게 먹이가 되었다
생과 마주하여 밥을 먹고
죽음과 어깨를 나란히 맞대고 앉아
한 수저의 밥을 나눠 먹는다
하나의 밥상에서 한 개의 수저로
삶과 죽음
그 둘에게 하나의 밥이 된 만만한 몸

삶은 퇴화하는 것이고
죽음은 진화하는 것이다

 / 밥상을 차리며 - 김영미

김영미 = 『제주작가』로 등단. 시집으로 『달과 별이 섞어 놓은 시간』이 있음.

생과 마주하여 밥을 먹는 일이란,
어쩌면 삶에서 죽음으로 한 발 다가서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매일 똑같은 밥상을 차리고
매일 똑같은 반찬을 뒤적이면서
죽음과 어깨를 나란히 맞대고 앉아
삶이 죽음에게, 죽음이 삶에게 한 수저의 밥을 사이좋게 나누어 먹습니다.
어찌 보면 삶이란 내가 차린 밥을 먹는 일이고,
죽음이란 남이 차린 밥을 먹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삶이 조금씩 조금씩 퇴화하는 동안
죽음 또한 그만큼의 속도로 진화하고 있겠지요. / 김수열

김수열 =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어디에 선들 어떠랴』, 『생각을 훔치다』, 『빙의』 등이 있음. 제4회 오장환문학상 수상

* 시·시낭송 / 김영미 시인
* 도시락(島詩樂) 배달 / 김수열 시인
* 영상 제작 / <제주의소리> 박재홍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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