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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가 우리 곁으로 온다. 매주 한편씩. 시보다 사람이 큰 시인 김수열. 제주 섬에서 나고 자란 그가 30여년 정들었던 교단을 떠나며 시를 담은 도시락(島詩樂)을 들고 매주 월요일 아침, 독자들과 산책에 나서기로 했다. 살다가 시가 된 제주 시인과 그들의 시를 김수열 시인이 배달한다. 섬(島) 시인들이 토해 낸 시(詩)가 주는 소박한 즐거움(樂)이 쏠쏠할 테다. 시 낭송은 시를 쓴 시인이 직접 맡고, 김수열 시인은 시 속에 살아 숨 쉬는 소리를 끄집어내 우리에게 들려주기로 했다. 우리의 일상과 너무나 가까운, 우리의 생각과 너무나 닮은 시인의 목소리로.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가슴을 든든히 채워줄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 산책’에 <제주의소리> 독자들도 함께 동행하길 기대한다. [편집자]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島詩樂) 산책](20) 멸치 / 이애자


한 폭 가슴에
온기마저 흘러내려
별 하나 담지 못한,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외삼촌 술상머리에
친구처럼 앉아서……

은도금 다 벗겨진
새벽별이 지고 있다
하루 품 팔고 사는
인력시장 끝물쯤
국밥집 비릿한 지폐
바짝바짝
마르고.

힘없어 이름조차
멸시당한 작은 것들
세상사 마른 것은
마른 것끼리
달동네 뼈저린 일들
또 한 소망
우려낸다.


이애자 : 『제주작가』로 등단. 시집으로 『송악산 염소 똥』, 『밀리언 달러』 등이 있음.

벼랑 끝 삶이 간당간당 위태롭게 매달려 있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외삼촌은 새벽별이 질 때까지 인력시장 국밥집에 앉아, 마른 멸치 벗삼아 마주 앉아 있습니다.
온기마저 사라진 마른 것들끼리 마주 앉아 기다려 보지만 오늘도 공친 날입니다.
그런 날은 꼬깃꼬깃한 돈에서도 비릿한 냄새가 납니다.
비릿한 돈이 빠져나간 호주머니가 바짝바짝 말라갑니다.
기다리는 동안 마른 것이 마른 것을 씹었을 뿐 어제와 하나도 다르지 않은 낯익은 하루가 시작됩니다.
마른 멸치 한 마리가 달뜨는 동네를 힘겹게 올라갑니다. / 김수열

김수열 :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어디에 선들 어떠랴』, 『생각을 훔치다』, 『빙의』 등이 있음. 제4회 오장환문학상 수상.

* 시·시낭송 / 이애자 시인
* 도시락(島詩樂) 배달 / 김수열 시인
* 영상 제작 / <제주의소리> 박재홍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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