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내 원도심 최대 상권으로 꼽히는 중앙지하상가를 두고 말들이 많다. 제주시는 안전을 이유로 올해 말부터 지하상가의 대대적인 개·보수에 돌입할 예정이고, 상인들은 여기에 숨은 의도가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갈등의 배경으로 지목된 ‘전대’(轉貸) 문제를 놓고도 말이 무성하다. <제주의소리>는 현재 지하상가를 둘러싼 논란을 짚어보고, 다른 지자체의 사례를 통해 합리적인 해결책은 없는지 찾아보려고 인천, 서울, 대전, 창원, 부산 등 전국 주요 지하상가 현지 취재에 나섰다. [편집자 주]

[제주지하상가 논란, 해법은?] ② 인천 부평역지하상가…자율권 보장 ‘쇼핑 메카’ 우뚝

▲ 지난 11일 오후 부평역지하상가의 모습. 주말 오후면 이 곳은 쇼핑을 즐기기 위한 방문객들로 발 디딜틈이 없다. ⓒ 제주의소리

2014년 12월은 인천광역시에게 조금 특별한 달이었다.

인천시 부평역세권 지하상가가 미국 월드레코드아카데미로부터 ‘단일 면적 지하상가 최다 점포 수’ 부문에서 세계기록을 인증 받은 것. 말 그대로 ‘월드레코드 지하상가’가 된 셈이다. 부평역, 신부평, 부평중앙, 부평대아 등 4개의 별도 지하상가 법인이 모여 있는 부평역세권 지하상가는 총 1408개 점포가 입점해있다.

단위면적당 점포수가 가장 많다는 것은 그만큼 상가가 활성화되어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이들 4개 지하상가중 가장 돋보이는 곳은 421개 점포가 입점해있는 부평역지하상가. 인천의 대표적인 쇼핑명소로 주말 하루 약 12만명의 유동인구가 이곳을 찾는다. 명성에 걸맞게 2010년과 2012년 공동마케팅 우수사례 시장경영진흥원상을 받았고, 건설사업설계 경제성 부문에서 인천시장 표창을 받기도 하는 등 전국에서 성공사례로 손에 꼽히는 대표적인 지하상가다.

 지하상가 벤치마킹 성공모델된 부평역지하상가 비결은?

비결이 뭘까?  부평역 지하상가가 전국의 다른 지하상가들과 달리 지자체나 시설관리공단이 운영하는 게 아니라 상인들이 직접 자치적으로 운영한다는 데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인식은 공유재산을 관리하고 있는 인천시나, 부평역 지하상가 상인회 측이 함께 공감한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평역지하상가가 준공된 것은 1986년. 준공당시 조건은 20년 후 기부채납. 그러나 20년이 지난 2006년 이후는 물론 현재까지 공유재산인 부평역지하상가의 관리운영 직접 주체는 상인회다. 상인들이 상가 리모델링 비용을 지자체에 부담주지 않고 스스로 조성하는 대신 행정당국은 상인회가 만든 법인의 운영권을 보장해주기로 한 것.  

실제로 부평역지하상가 상인회는 기부채납 만료 시기인 2005년보다 훨씬 앞선 2001년부터 자체적으로 74억원을 모아 상가 리모델링을 추진했고 지자체로부터 12년간 운영권을 보장받았다. 2014년에도 추가로 105억원의 기금을 조성해 대대적 리모델링을 진행해 다시 15년간 운영권을 보장받았다.

그동안 총 179억원의 리모델링 비용을 상인들이 자체 조성해온 것이다. 장사가 더 잘되는 점포, 상대적으로 잘 안되는 점포를 따지지 않고 상인들은 자발적으로 면적당 공평하게 분할한 리모델링 금액을 모았다. 여기에 상인회는 행정당국에 1년에 약 7억원 정도의 대부료(임대료)도 지급하고 있다.

부평역지하강가는 현재 총면적 9580㎡에 421개 점포가 입점해있다. 총면적 1만87㎡에 382개 점포가 입점해있는 제주중앙지하상가와 비교해 점포수는 부평역지하상가가 39개 점포가 많지만 면적은 507㎡가 작다.

상가 리모델링 자금 조성 당시 상인들은 상가 활성화 차원에서 자발적인 결정을 통해 얘기가 나온 지 단 3개월만에 비용을 조성했고, 인천시도 상인회의 이 같은 자발적 노력을 인정해 갈등을 최소화하고 순탄하게 사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됐다. 행정과 상인회 간의 신뢰가 바탕이 됐다는 설명이다.

현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상인회가 직접 자율적 운영을 하게 되니 상가 관리와 활성화에 주인의식과 책임의식이 생겼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시도하고 시장흐름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하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부평역지하상가는 전국 지자체 공무원들과 상인회에서 벤치마킹을 위해 반드시 거쳐가야 할 견학 코스가 됐다. 당연히 인천시에서도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쇼핑의 메카가 됐다. 주말 1일 방문인원이 약 12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조례로 양도·양수 그리고 전대까지 허용…이유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성공사례가 된 부평역지하상가의 가장 큰 특징은 따로 있었다. 바로 양도·양수는 물론 전대도 허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오랫동안 묵인돼온 ‘전대’ 문제와 ‘양도·양수’로 시끌시끌한 제주시와는 상황이 전혀 달랐다. 가장 큰 차이는  2002년 제정된 ‘인천광역시 지하도상가 관리 운영 조례’가 전대와 양도·양수를 허용하고 있다는 데 있다.

해당 조례 제16조에는 ‘임차권의 양도·양수와 전대를 승인코자 할 때에는 상가법인이사회의 심의를 거쳐 결정하되, 상가전체의 관리운영과 점포의 경제 질서 등 제반 여건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부득이한 경우에만 지장을 초래하지 아니하는 범위 내에서 승인여부를 결정하여야 한다’고 명시돼있다.

상가법인이사회의 심의라는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행정당국이 상가 전체의 여건 등을 고려해 상인회에 자율적으로 전대와 양도·양수를 허용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 상인들로 구성된 (주)부평역지하상가의 조강묵 대표이사가 상인회와 상가가 수상한 각종 상패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제주의소리

조강묵 (주)부평역지하상가 대표이사도 지난 11일 <제주의소리>와 만난 자리에서 상인자치 운영 등 자율권을 보장해주는 게 상가활성화를 위해 필수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조 대표이사는 ‘공유재산에서 어떻게 전대와 양도·양수가 가능하냐?’는 질문에 “부평역지하상가는 분명한 공유재산이다. 그러나 공유재산이지만 상인들이 점포에 투자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주인의식을 부여하는 것이 성패의 관건”이라고 답했다.

그는 이어 “상인들이 상가 시설에 자기 돈을 투자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줘야 주인의식이 생긴다”며 “상가는 본래 특성에 맞게 시장 흐름에 그대로에 맡겨야지, 관이 지나치게 개입하는 순간 본래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2~3년에 한번씩 점포 주인이 바뀔 수 있는 공개입찰 방식의 한계를 지적한 셈이다. 

조 대표이사는 또, “지자체나 시설관리공단이 직영관리를 하는 상가치고 전국에서 활성화된 곳은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며 “관은 지하상가를 하나의 재산이나 시설물로만 바라보는데 반해, 상인들은 상가를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체로 판단해 가꾸고 재투자한다. 이것이 크게 다른 점”이라고 덧붙였다. 

 가장 큰 성공비결은 행정과 상인 간 '믿음' 

개별 상인들의 목소리도 비슷했다. 젊은 시절 이곳에 들어와 30년간 장사해온 이남주(60, 여)씨는 “내 점포라고 생각하니까 30년을 이곳에서 한결같이 장사할 수 있었지, 내 점포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떠나도 벌써 떠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상인회에서 직접 관리하고 지자체에서 운영권을 보장해주니 ‘내 가게’라는 애착이 생기고 열심히 노력하게 된다”며 “만약 시에서 직접 관리를 하거나 몇 년 단위로 입찰 형식을 택했다면 절대 ‘내 가게’라는 애착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부평역지하상가의 성공 비결을 꼽는다면 단연 행정당국과 상인회 간의 ‘신뢰’다. 상인들은 행정당국을 감시·감독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든든한 아버지 같다”는 표현을 쓸만큼 믿을 수 있는 ‘보호자’로 인식했고, 행정당국은 상인회를 믿고 맡길 수 있는 ‘동반자’로 판단했다는 점이다.

인천시는 투명성 확보 등을 조건으로 상인회에게 운영권을 장기간 보장해줬을 뿐 아니라, 리모델링의 정상적인 진행을 위해 전문가 집단을 구성해 뒷받침을 해줬고 컨설팅도 지원했다. 상인들이 “인천시가 아버지 역할을 해줬다”고 말하는 이유다. 특정 사안 때 마다 마라톤회의를 하며 머리를 맞대는 등 두터운 신뢰감을 형성하고 있었다.

조 대표이사는 “상인들이 인천시를 확실히 믿고 있다”며 “상가활성화에 대한 인천시의 의지가 강하고 늘 도움을 주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이젠 전국에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모델이 됐다”고 자부했다.

인천시 건설교통국 관계자도 “부평역지하상가는 전국에서 가장 잘 되는 지하상가로 꼽힌다. 유동인구가 많기도 하지만 상인회의 자치운영이 힘을 발휘한 것 같다. 지금까지 부평역지하상가에 대해 문제가 보고되거나 민원이 접수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상인회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행정은 상인회를 믿고 동반자로서 열심히 지원하고, 상인회는 성실히 상가를 운영해서 지역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하면 행정도 상인회도 그것으로서 충분한 것 아니냐”고 덧붙엿다.

▲ 인천시는 상가활성화 차원에서 양도양수, 전대를 조례에 근거해 허용하고 있다. 부평역지하상가에서는 상가 매매와 임대를 홍보하는 문구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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