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우리 곁으로 온다. 매주 한편씩. 시보다 사람이 큰 시인 김수열. 제주 섬에서 나고 자란 그가 30여년 정들었던 교단을 떠나며 시를 담은 도시락(島詩樂)을 들고 매주 월요일 아침, 독자들과 산책에 나서기로 했다. 살다가 시가 된 제주 시인과 그들의 시를 김수열 시인이 배달한다. 섬(島) 시인들이 토해 낸 시(詩)가 주는 소박한 즐거움(樂)이 쏠쏠할 테다. 시 낭송은 시를 쓴 시인이 직접 맡고, 김수열 시인은 시 속에 살아 숨 쉬는 소리를 끄집어내 우리에게 들려주기로 했다. 우리의 일상과 너무나 가까운, 우리의 생각과 너무나 닮은 시인의 목소리로.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가슴을 든든히 채워줄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 산책’에 <제주의소리> 독자들도 함께 동행하길 기대한다. [편집자]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島詩樂) 산책](25) 경의선 / 김진숙

녹이 슨 철새들이 열차를 끌고 간다

장단콩 콕콕 쪼다 임진 장단 봉동 개성, 콩 한 쪽 입에 물고 열차를 끌고 간다 토성 여현 금교 한포 삐걱삐걱 날아올라 철조망에 둥지 틀고 알을 낳던 새들아 평산 서흥 흥수 마동 어서어서 가자가자 사리원 계동 황해황주 역포 너머, 대동강 시린 물에 목축이고 가잔다 평양 서포 석암 만성 녹물 털어 한숨 돌리고, 화통 속에 뿌리 내린 뽕나무도 데불고, 신안주 맹중리 운정 정주 끊긴 길에 침목 하나, 얹고 또 얹고 다시 얹어 선천 남시, 들릴까 육십 여년 그 계절 경적소리, 이번 역은 신의주 서울에서 신의주까지……

어디쯤 가고 있나요
당신이 탄 열차는


김진숙 : 『제주작가』로 등단. 한국시조시인협회 신인작품상 수상. 시집으로 『미스킴라일락』이 있음.

“1945년 8월 25일, 소련군 사령부는 경성에서 신의주를 운행하는 경의선 철도를 차단하였다.”

안도현 시인의 역작 『백석 평전』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한반도의 허리에 38선이 그어진 이래 7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요지부둥입니다.
그 요지부동을 보다 못한 녹이 슨 철새들이 장단콩을 쪼아 먹으며 젖 먹은 힘을 다해 경의선 열차를 끌고 갑니다. 70년 동안 인간이 손을 놓아 버린 일은 철새들이, 녹이 슨 철새들이 힘을 모아 총 연장 486킬로미터의 경의선 철로 위를 끌고 갑니다.

지금 어디쯤 가고 있냐고요?
서울역을 출발하면 도라산역에서 멈춥니다. 
철마는 달리고 싶어도 더는 갈 수 없습니다. 
총 연장은 고작 65.53킬로미터랍니다. / 김수열

김수열 :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어디에 선들 어떠랴』, 『생각을 훔치다』, 『빙의』 등이 있음. 제4회 오장환문학상 수상.

* 시·시낭송 / 김진숙 시인
* 도시락(島詩樂) 배달 / 김수열 시인
* 영상 제작 / <제주의소리> 박재홍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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