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우리 곁으로 온다. 매주 한편씩. 시보다 사람이 큰 시인 김수열. 제주 섬에서 나고 자란 그가 30여년 정들었던 교단을 떠나며 시를 담은 도시락(島詩樂)을 들고 매주 월요일 아침, 독자들과 산책에 나서기로 했다. 살다가 시가 된 제주 시인과 그들의 시를 김수열 시인이 배달한다. 섬(島) 시인들이 토해 낸 시(詩)가 주는 소박한 즐거움(樂)이 쏠쏠할 테다. 시 낭송은 시를 쓴 시인이 직접 맡고, 김수열 시인은 시 속에 살아 숨 쉬는 소리를 끄집어내 우리에게 들려주기로 했다. 우리의 일상과 너무나 가까운, 우리의 생각과 너무나 닮은 시인의 목소리로.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가슴을 든든히 채워줄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 산책’에 <제주의소리> 독자들도 함께 동행하길 기대한다. [편집자]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島詩樂) 산책](26) 배낭을 바꾸며 / 안상근


새 배낭으로 바꾸기 위해
지금까지 짊어졌던 배낭 속을 털었다
코펠도 있고 장갑도 나오고
라이터, 칼, 비닐 우의, 숟가락
화장지, 신문지, 비닐 끈, 볼펜
유통기간 지난 의약품 몇 종류
용도 모를 쇠붙이 몇 개

갈수록 내 배낭의 무거움에 일조를 했던 것들이다
이제는 비워야겠다, 툴툴 털고
내 새 배낭에는
모자, 선글라스 그리고 물병 하나면 된다
이 정도만 들어갈 작은 배낭이면 족하다
여기저기 눈물 같은 들꽃들이 아무도 모르게 피고 지듯이
외로우면 어떠리, 그로부터 출발하자
살아있는 한, 살아 있는 몸짓을 멈출 수 없을 때까지


안상근 :『현대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바람 사이로 흘러내리는 시간』, 『그날, 오늘 같은 날』등이 있음. 현대시문학상 수상.

입추가 가을의 초입이라면 처서는 본격적인 가을이 시작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 처서마저 지났으니 이제 가을입니다.
지난 여름은 참 힘이 들었습니다. 힘든 여름을 견뎌낸 당신 앞에 가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결실의 계절이면서 성숙의 시간입니다.
곤한 마음을 털어내고 새로운 마음을 다잡아야 할 때입니다.

다시 길을 나설 시간입니다.
버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버리고
버려야겠다는 마음마저 버리고 눈물 같은 들꽃들이 아무도 모르게 피고 지는 곳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처서가 지났으니 흰 이슬 내린다는 백로가 저만치서 마중하겠지요. / 김수열

김수열: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어디에 선들 어떠랴』, 『생각을 훔치다』, 『빙의』 등이 있음. 제4회 오장환문학상 수상.

* 시·시낭송 / 안상근 시인
* 도시락(島詩樂) 배달 / 김수열 시인
* 영상 제작 / <제주의소리> 박재홍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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