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후 칼럼] 파리 테러와 김영삼 전 대통령을 떠올리다

일상적으로 사람들의 많은 죽음과 마주치면서 죽음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부분의 죽음은 조금 있다가 기억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지난 11월에 만난 죽음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다. 11월 13일에 일어난 프랑스 파리에서 테러공격으로 129명이 사망했다. 이어진 시리아 보복공습으로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22일 87세로 별세했다.

테러로 인한 죽음은 인류역사에서 지속적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으며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나 평범한 개인의 죽음은 인간이 숙명으로 받아 들여야 할 필연적인 현상이다. 지상에 태어난 모든 인간이 똑같이 경험하는 통일성, 전체성, 평등성이 죽음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죽음은 지구라는 행성에서 자연의 일부로 왔다가 돌아가는 과정으로 현세적인 삶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극단적인 상황을 나타낸다.

모든 죽음은 최악과 최고의 사이에 놓여 있다. 모든 사람들은 행복한 죽음을 원하지만 글로벌시대에 이르러서 죽음도 승자와 패자로 갈리고 있다. 응분의 대접을 받는 죽음과 대접을 받지 못하는 죽음은 언제 어떻게 우리 모두에게 운명으로 닥칠지 모른다. 11월에 접한 특별한 죽음은 현 시대 상황을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하며, 역사적 종교적 시야를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파리 테러는 전문가들이 말한 것처럼 가장 걱정하던 형태의 테러이다. 테러는 폭력을 중심으로 공포 확산과 희생양 찾기, 욕망 충족으로 이루어진다. 인간의 욕망에 내재한 폭력성의 구조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이 요구되는 이유다. 매년 세계 도처에서 테러로 인한 수만명의 희생자가 발생하고 있다. 파리 테러는 세계 여론을 장악하고 있는 서구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고 있지만 중동, 아프리카 지역의 보다 큰 희생자들의 참상은 거의 서구 언론에 비추어지지 않는 죽음의 불평등 구조가 고착된 양상이다. 파리 희생자에게는 전세계에서 애도의 목소리가 넘쳐나지만 다른 지역의 희생자는 무관심의 영역에 놓여 있다.

최근 테러는 대규모로 커지고 인명살상의 범위도 무차별적인 다중 대상으로 넓어졌다. 정치적 테러보다는 종교적 테러가 빈번해져 다중을 희생양으로 삼는 경향이 일반화되고 있다. 파리 테러의 원인을 두고 종교 극단주의, 차별과 빈곤, 소수자 소외 등 다양한 분석이 나왔다. 근본적 대책을 놓고 하드파워를 이용한 물리적 제거와 관용, 화합, 불평등 해소 같은 소프트 파워를 활용한 접근 전략이 대치 중이지만 군사력 사용에 대한 지지가 높다. 테러의 역사적 종교적 배경은 뿌리가 깊고 복잡하게 얽혀 있어 강경하게 대응할수록 초국적 테러로 진화하고 있다. 테러를 단기간에 없애기는 점점 어려운 일이 되고 있는 형국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죽음은 우리 공동체에서 작동하고 있는 민주주의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서거 이후, 이전과는 달리 민주화와 과감한 개혁 정책이 긍정적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는 제도화에 있어서 진척이 있었지만 시민들이 체감도는 다양하다. 보수와 진보의 진영논리, 계층간 수혜여부 등에 따라 온도차가 매우 크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권위주의 독재정치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현 정부 들어 법질서 확립이라는 명분으로 반대세력의 과격 행동을 빌미 삼아 공권력을 동원하여 과도하게 제압하는 일들이 일상화 되었다. 질서 대 무질서의 프레임을 부각하고 민주주의의 본령인 갈등과 치열한 논쟁을 ‘예외상태’인 혼란과 무질서로 몰아 붙여 맹목적인 복종을 강요하고 있다. 여기에 보수를 표방한 모든 언론이 총동원되어 여론몰이에 가세하면서 민주 책임론은 사라졌다. 에리히 프롬이 말한 ‘자유로부터의 도피’ 현상이 대세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김 전 대통령의 별세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신념과 자유를 향한 의지다. 자유는 쉽게 뺏길 수 있지만 되찾기는 아주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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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후 소통기획자.
인간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사람마다 시대와 문화, 종교, 경제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죽은 자에 대한 해석과 평가는 죽음을 둘러싼 환경과 정세나 그 사람이 표출하는 신념, 사고, 행동에 따라 추론이 가능하다. 테러에 의한 집단적인 죽음은 전지구차원의 이해를, 한 시대를 이끈 지도자의 죽음은 민주공화국이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11월의 모든 죽음을 애도하면서 명복을 빈다. / 권영후 소통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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