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화 '귀향'...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혼백 위로할 자격 있는 영화


을미년(乙未年)과 병신년(丙申年)을 지나며 한국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를 꼽으라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다룬 한국-일본 정부 간 외교 협상이다. 

1965년 박정희 대통령이 일본과 ‘청구권 협정’을 체결한지 50년 만에, 그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12월 28일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합의했다.

아버지는 일본에게 5억 달러를 받아 일본의 식민지배 책임을 덜어줬고, 딸은 10억엔을 받아 최대 20만명에 달한다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덜어줬다. 

최종적이자 불가역적으로.

그러나 피해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이 모인 나눔의집,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비롯해 국민 여론은 크게 부정적이다. ‘합의에 당사자 동의가 전혀 없었다’, ‘일본 정부의 군 위안부 범죄 책임 인정이 빠졌다’는 이유에서다. 

이렇게 ‘뜨거운 감자’가 등장한 형국에 시의적절한 영화 한 편이 등장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극(劇) 영화로 다룬 작품, 영화를 머릿속에서 구상하기 시작해 완성까지 무려 13년이 걸린 작품, <귀향(鬼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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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 <귀향>이 최근 완성돼 5~6일 중앙로 메가박스 제주에서 제주지역 상영회를 가진다. 사진은 <귀향> 포스터.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귀향>의 제주 첫 시사회가 5일 중앙로 메가박스 제주에서 열렸다. 배우, 제작진이 총 출동해 영화 제작을 후원한 도민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영화 제목은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의미의 귀향(歸鄕)이 아니다. 혼이 돌아온다는 귀향(鬼鄕)이다. 영어 제목도 ‘Spirit Homecoming’이다.

영화는 1943년 경남 거창에 살던 14살 정민(강하나)과 1991년 경기도 양평에 사는 노인 영옥(손숙)의 이야기가 함께 진행된다. 

강제로 일본군에게 끌려가 고초를 당하는 정민, 위안부 생활에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뒤 어느새 노인이 된 영옥. 교차되는 두 인물의 이야기가 점차 한 곳으로 향하면서 영화는 정점을 향한다.

<귀향>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실제 이야기라는 명확한 주제를 바탕에 두고, 가상 인물들의 연기를 통해 진행된다.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는 영화는 다큐 방식을 자주 택하곤 한다.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관객에게 보다 직접적으로 빠르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제작비용도 극영화에 비해 훨씬 부담이 적다.

그래서 <귀향>은 위험 부담이 크다. 일본군 위안부라는 메시지를 인물과 줄거리로 어떻게 전달할지 비교적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감독, 배우, 스태프 모두가 부담을 짊어졌다. 영화 제작비용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고, 피해자와 가해자를 연기하는 배우들 모두 극심한 심적·물적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영화 뒷이야기는 포털사이트 다음의 스토리펀딩(클릭)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부담은 온전히 창작자들만의 몫은 아니었다. 무려 5만2525명이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 등의 방식으로 십시일반 정성을 모았다. 국내, 일본, 미국까지 각지에서 후원을 보냈다.

영화 속에 눈물을 자아내는 장면이 여럿 있지만, 가슴을 가장 울리는 장면은 후원자 5만2525명의 이름이 하나하나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이다.

다소 흐름이 늘어지는 구간, 섬세한 부분까지 챙기지 못한 구성, 상업영화도 독립영화도 아닌 것 같은 애매한 포지션 등 아쉬운 점을 꼽으라면 꼽겠지만, 영화는 보는 이의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한 힘을 가졌다. 

뒷덜미가 오싹해질 만큼 섬뜩한 느낌을 선사한 위안소 촬영씬, 잔혹한 일본군 역할을 훌륭히 소화한 재일교포 배우들의 연기, 시도 때도 없는 억지춘향식 눈물 짜내기를 피하고 감성선을 자연스럽게 끌고 가려는 노력은 극영화로서의 완성도를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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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귀향>의 한 장면.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5일 시사회가 열린 메가박스 제주 7관은 객석 대부분이 채워졌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 많은 관객들의 눈은 붉게 부어있었다.

영화를 끝까지 지켜본 기자 역시 순간순간 콧등이 시큰해졌지만, 가슴 속에서는 슬픔 대신 신기하게도 분노에 가까운 감정이 더욱 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엄마부대’라는 단체가 거리에 나서 “아베의 사과를 받았으니 위안부 할머니들은 남은여생 마음 편히 지내시라”, “용서하는 것이 일본을 정신적으로 제압하는 것”이라고 외치는 현실이 스크린 위로 겹쳐보였기 때문이다.

전력을 다해 일본 정부를 상대했어야 할 박근혜 대통령은 도리어 대국민메시지를 통해 “대승적 견지”에서 이번 협상을 이해해달라고 위안부 할머니와 국민들을 상대하고 있다. 나오는 눈물도 말라버릴 만큼 통탄스럽다.

분노는 <귀향>을 연출한 조정래 감독의 한숨을 마주하면서 더욱 커졌다.

정부가 한일 외교회담 결과로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이자 불가역적인 해결을 선언하면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로하고 진실을 기억하기 위해 만든 영화가 졸지에 ‘불편한 존재’가 됐다는 것. 

‘(영화를) 잘 부탁한다’고 기자들에게 신신당부하는 조 감독의 웃음과 “영화를 SNS나 입소문으로 최대한 알려달라”는 배우들의 각별한 무대인사 속에는 그저 지나칠 수 없는 씁쓸함이 배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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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열린 영화 <귀향> 제주시사회 현장에서 제작진과 배우들이 무대인사를 하고 있다. 마이크를 잡은 사람은 <귀향>을 연출한 조정래 감독. ⓒ제주의소리

어렵사리 완성된 <귀향>의 개봉 시기는 미정이다. 다행이 배급사는 찾았지만 앞서 말한 이유로 언제, 얼마나 개봉할지는 장담할 수 없게 됐다. 

감독과 배우, 스태프들은 ‘관객 한 명이 영화를 볼 때마다 이국만리에서 돌아가신 위안부 할머니들이 한 분 씩 돌아오신다는 마음가짐’으로 <귀향>을 만들었다고 한다.

수많은 국민들의 성원과 희생에 가까운 제작진의 노력으로 완성된 이 영화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혼백을 모셔올 자격이 있는 영화다. 그분들의 혼을 하나라도 더 고향에 모실 수 있도록 <귀향>이 제주지역 극장에 정식 상영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기자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다면 극장에 전화를 걸어 "<귀향>을 상영해달라"고라도 말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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