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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님에서 의원님 도전! 왼쪽부터 제주대학교 강지용(산업응용경제학과), 김경호(언론홍보학과), 오수용(법학전문대학원), 이상이(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제주의소리
제주대 교수 3명 출마, 1명은 당대표…떨어지면 아무 일 없는 듯 복귀? ‘폴리페서’ 논란

상아탑의 교수들이 대거 선거판으로 달려가고 있다. 정치판에 뛰어든 ‘폴리페서(polifessor)’얘기다. 폴리페서는 정치(politics)와 교수(professor)의 합성어다.

연구실을 벗어나 적극적으로 현실 정치에 참여, 자신의 학문적 성취를 정책으로 연결하거나 그런 활동을 통해 정관계 고위직에 진출하려는 교수를 일컫는다. 정권의 필요에 의해 발탁된 관료인 테크노크라트(technocrat)와는 구별된다.

4월13일 실시되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와 관련해 선수가 됐든 킹메이커가 됐든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제주지역 폴리페서는 대략 4명 정도로 꼽힌다.

이번 20대 총선에 출사표를 던진 국립 제주대학교 교수는 지금까지 3명이다. 강지용(산업응용경제학과), 김경호(언론홍보학과), 오수용(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이다. 강지용, 김경호 교수는 지난 19대 총선에 이어 두 번째 도전이다.

이들의 총선 출마가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현행 교육공무원법과 정당법 등은 교수의 정치활동을 허용하고 있다.

또한 공무원의 정치참여를 금지하는 것과 달리, 국·공립대 교수는 예외를 적용하고 있다. 공직자가 총선에 출마하려면 90일 전에 공직에서 사퇴해야 하지만 교수들은 이 규정에서도 예외다.

문제는 총선 출마 자체가 학생들의 수업권을 심각하게 해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이번 4.13총선에 출마한 강지용 교수의 경우 휴직을 하지 않은 채 출마했다. 4년 전 19대 총선까지 출마했던 점을 감안하면 본업에 소홀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19대 총선 낙마 후에는 새누리당 제주도당 위원장, 당원협의회 위원장을 맡는 등 현실정치에 깊숙이 개입하며 ‘금배지’를 달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전라남도 여수(갑)에 출마한 김경호 교수도 19대 총선에 이어 이번이 국회의원 선거 두 번째 도전이다. 김 교수 역시 아직까지 휴직계를 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새 학기 개강에 맞춰 휴직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8일 제주시 을 선거구 출마를 선언한 오수용 교수는 과거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연합 창당 때부터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2014년 6.2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과 ‘당 대 당’ 통합을 하자, 제주도당 공동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사실상 2년 가까이 정당인 생활을 한 셈이다.

직접 출마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이상으로 현실 정치에 발을 들인 경우도 있다. 복지국가당 창당의 주역인 이상이 교수(의학전문대학원)가 대표적이다. 지난 24일 열린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당대표에 선출돼 후보자들 못지않게 4.13총선 기간 전국을 누비며 원내진입을 위해 발품을 팔아야 한다.

원조 폴리페서 격인 강창일 의원(전 배재대 교수)은 17대 총선 때 처음 금배지를 단 후 3선에 성공하기까지 8년간 ‘장기’ 휴직을 했다. 하지만 19대 총선이 끝난 후 대학에 사직서를 냈고, 자신의 연구 성과물과 함께 일제강점기 시절 희귀자료를 제주대학교 재일제주인센터에 기증하며 폴리페서 논란을 스스로 정리했다.

그 동안 폴리페서는 강단을 등지고 정치판을 향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우선 교수직을 유지한 채 자신의 정치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당선되면 장기휴직을 하고, 낙선되면 다시 강단으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수업권이 심각하게 침해당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전직 대학교수 A씨는 “선거에 출마하는 것 자체로 학생들에게는 피해가 간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미리 휴직계를 내서 대체 강사를 찾도록 해야 한다”면서 “이마저도 못한다면 도덕적, 윤리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말했다.

A씨는 특히 “총선 출마는 곧 직업 정치인으로 살겠다고 선언하는 것인 만큼 당당하게 교수직을 사직하는 게 맞다”라고 쓴 소리를 건넸다.

자신의 영역을 새롭게 개척하기 위해 ‘철밥통’인 국립대 교수직을 과감하게 포기한 이들도 있다.

대한민국 정치1번지 종로에 출마한 하승수 변호사는 “시민운동에 주력하겠다”며, 부상일 변호사는 “정치에 올인하겠다”며 2009년 제주대 로스쿨 교수직을 그만 뒀다.

김경택 전 교수도 JDC 이사장에 임명되자 평생 연금까지 포기하며 국립대 교수 명함을 던졌다.

더 큰 문제는 낙선 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슬그머니 강단에 복귀하는 경우다.

익명을 요구한 B교수는 “교수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무조건 매도할 수는 없다”면서도 “수업을 뒷전으로 미루고 출마했다가 당선되면 휴직하고 낙선하면 슬그머니 돌아올 경우 강의와 연구에 전념해야 하는 대학가 분위기를 흐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철수 제주대 교수회장은 “교수들의 정치참여는 법적으로 허용된 것으로, 본인들이 알아서 할 문제”라면서도 “하지만 학생들의 수업권이 침해받는다면 도덕적, 윤리적으로 비난받을 수 있다.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연구·강의에 더 충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20대 국회 때부터는 개정 국회법에 따라 당선되는 즉시 교수직을 사직해야 한다. 이 때문에 앞으로는 폴리페서의 총선 출마 러시가 한풀 꺾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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