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인들 시국선언 콘서트 ‘설러불라’ 개최, 김경훈 시인 날카로운 작품 선봬

우산이나 우비 없이 짧은 시간만 서있어도 흠뻑 젖을 만큼 많은 비가 내렸지만 제주시청 일대를 밝힌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시민들의 촛불 속에서 제주예술인들은 시와 노래로 자신들만의 시국선언으로 ‘비정상의 정상화’를 요구했다.

제주음악인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제주음악인 시국선언콘서트-설러불라>가 26일 제주시청 종합민원실 앞 도로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서 도내·외 음악인 18명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엉망이 된 나라에 ‘시국선언’하는 마음으로 노래를 불렀다. 사우스카니발, 묘한, 남기다밴드, 러피월드, 조성일밴드, 조성진, 뚜럼브라더스, 나무꽃, 밴드 홍조, 조약골, 김신익, 권순익, 오버플로우, 태히언, 비니모터, 방승철 등 제주에서 활동하는 음악인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여기에 제주에 터전을 잡은 장필순과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넌 할 수 있어>의 주인공인 강산에도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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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내·외 음악인 18명이 만든 '제주음악인 시국선언콘서트-설러불라'가 26일 열렸다. 콘서트 시작을 연 오버 플로우.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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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 2인조 밴드 홍초.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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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포먼스와 실험적인 음악을 선보인 나무꽃.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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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효하는 조약골 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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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피 월드의 무대.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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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션들의 공연에 반응하는 시민들. ⓒ제주의소리

출연진 수가 많아 오후 5시부터 6시까지는 다섯 팀, 촛불집회가 끝나는 저녁 8시부터 나머지 팀이 공연을 했다. 행사는 시국선언 낭독과 출연자 전원의 '임을 위한 행진곡' 합창으로 마무리됐다.

포크송, R&B, 퍼포먼스, 강력한 메탈까지 장르를 망라한 뮤지션들은 자신들의 노래뿐만 아니라 현 시국을 비판하는 자작곡도 선보이며 악기와 목소리로 촛불을 들었다. 비를 피하기 위해 대형 트럭 위 좁은 무대에서 노래를 불러야 했지만, 참가자들의 열띤 호응 속에 어느 때보다 굳센 의지를 담아 목소리를 뽑아냈다.

강산에 씨는 노래에 앞서 “이 추운 날에 우리가 대체 무슨 고생이냐. 국가의 최고 공직자분이 책임을 회피하시니 어쩔 수 없이 우리가 귀한 시간을 쪼개서 거리로 나와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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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창하는 조성진.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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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를 부르는 강산에 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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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산과 우비를 쓰고 공연을 즐기는 참가자들. ⓒ제주의소리

이번 5차 촛불집회에서는 문제적 현실을 날카롭게 해부하는 시 작품도 등장했다.

4.3, 제주해군기지 같은 제주의 아픔을 누구보다 직설적인 감성으로 알려온 김경훈 시인은 자작시 <그 더러운 이름 뒤의 계급장을 떼어라!>를 낭독해 참가자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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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낭독 중인 김경훈 시인. ⓒ제주의소리
우리는 이 나라 1% 잡것들의 징그러운 민낯을 보았다.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그들의 천박한 뇌를 보았다.
우리가 생각지도 못할 정도의 추잡하고 난잡한 허리 아래를 보았다.

이제 대통령이라는 호칭은 떼어버리자
그렇다고 누구누구 년이라고는 하지 말자. 우리 입도 더러워지니까.
그냥 감옥에 집어넣고 수인번호로 부르자.
1026번!
지 애비가 뒈진 날이다
...
- <그 더러운 이름 뒤의 계급장을 떼어라!> 중에서

한편, 촛불집회가 다섯 차례 이어오면서 재치 넘치는 집회 도구들도 점차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날 조은진 씨가 제작해 선보인 대형 촛불과 ‘파분’ 도장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충분했다.

조 씨는 “제주 사람들은 예전부터 화투, 장기 같은 놀이를 할 때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잘못할 경우 ‘파분!’이라고 말했다. 일종의 제주어 감탄사”라며 “기왕 집회에 나오는데 유머있게 하자는 마음에 도장을 만들었다. 제주에는 다른 지역 출신분들도 많이 사는데 파분이란 말을 많이 모르지 않겠냐.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의미를 알아듣는 중년 이상들은 많이 웃었다. 박근혜 정권에게 ‘파분’이라고 외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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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 조은진 씨가 제작한 '파분' 도장이 찍힌 촛불 종이컵.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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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은진 씨가 제작한 대형 촛불. 바람에도 꺼지지 않는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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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제주문화예술공동체 간드락이 내건 현수막.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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