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예술공간 이아 입주 작가 11명 선정...“지역사회와 예술 이어주는 공간 목적 중요”

문화예술 거점 공간으로 탈바꿈할 옛 제주대 병원이 새로운 이름(예술공간 이아)을 달고 올해 4월부터 본격적으로 운영된다. 이곳에 처음으로 입주할 예술 작가 11명은 3개월(해외)에서 1년(국내) 동안 제주의 문화, 역사, 자연을 각자 개성에 따라 작품으로 남길 예정이다. 옛 제주대 병원이 제주시 원도심의 중추적인 장소이었던 점을 고려해, 레지던시를 비롯한 예술공간 이아의 운영 방향은 주민·공동체와 소통하는데 맞춰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 1970년~80년대생 젊은 작가들, 제주를 보다

국내 8명, 국외 3명으로 구성된 예술공간 이아 레지던시 입주 작가는 대부분 1970~80년대 태어난 청년 세대다. 고승욱(49) 작가가 가장 나이가 많고 김태균(42), 임흥순(43), 박종호(39) 작가 순으로 뒤를 잇는다. 박선영(30) 작가가 가장 어린 나이에 속한다. 

입주 작가들이 종사해온 예술 분야는 회화, 음악처럼 대중적으로 친숙한 순수 미술이라기보다 영상, 사진, 설치 미술이거나 이것들을 융합한 모습이다.

다만 예술가로서 깊이와 시야를 점차 확장해가는 30~40대 작가들이 주축을 이룬 만큼, 새로우면서 가볍지 않은 시야로 제주를 조명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품게 한다. 


# 다양하게 표현될 제주, 어떤 모습?

작가 11명이 입주 기간 동안 ‘어떻게 활동하겠다’고 밝힌 계획서를 보면 대다수가 제주를 핵심 주제로 두고 있다. 재단도 총평에서 “제주의 자원과 작품세계를 연결시킨 기획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설명한다.

최고참 격인 고승욱 작가는 지난 2년 동안 작업 해온 <△의 풍경>을 올해 고향 제주에서 마무리할 예정이다. 이 작업은 제주4.3부터 DMZ에 이르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조명하는 내용으로 염색천, 돌초 등의 소재를 사용해 사진 촬영하는 방식이다. 앞서 지난해 아트스페이스C를 통해 제주도민들에게 소개되며 좋은 반응을 가진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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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고승욱, 박선영, 김태균, 이재욱, 박종호, 임흥순 작가. 제공=제주문화예술재단. ⓒ제주의소리

영상, 설치, 페인팅 작업을 해온 박선영 작가는 제주의 구전설화, 신화를 다양한 전문가들과 함께 영상 설치 작품으로 보여줄 예정이다. 

2014년 제주 녹차밭에서 제주도 모양의 금속 설치 작품을 선보인 김태균 작가는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발생했던 역사적 순간을 예술 소재로 삼겠다는 포부다. 4.3과 같은 제주 근현대사의 아픈 역사도 다룰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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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승욱의 작품 <△의 풍경-다랑쉬와 아끈다랑쉬 오름>.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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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선영 작가의 작품 <LIFE OF PAINTING>. 제공=제주문화예술재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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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균 작가의 작품 <Sign6: 각성의 시간>. 제공=제주문화예술재단. ⓒ제주의소리

급변하는 제주의 현재에 주목한 이도 있다.

김훈예 작가는 급속도로 늘어나는 제주 인구와 경제 규모를 실태 조사해, 그 수치를 바탕으로 ‘게임형 공간 설치’ 작품을 만들겠다는 독특한 구상이다. 이재욱 작가는 제주의 일부분이 된 ‘이주민’에 주목해 여러 이주민을 사진으로 담는다.

김범준 작가는 바람이란 소재를 가지고 참여형 기획을 진행할 계획이다. 뒷마당의 바람을 안방에서 불게하고 해변의 바람을 마을회관에서 느낄 수 있는 ‘바람 전달 장치’를 제작하고, 돌멩이 그리기 대회나 나뭇가지 워크숍 같은 행사를 연다. 

박종호 작가는 제주도의 풍경을 1년간 영상으로 촬영해 변화를 살펴보는 작업과 함께 제주도 곳곳을 들여다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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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훈예 작가의 작품 <시지푸스의 미로>. 제공=제주문화예술재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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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욱 작가의 작품. 제공=제주문화예술재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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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호 작가의 작품 <그리기>. 제공=제주문화예술재단. ⓒ제주의소리

국내 최초로 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을 수상하며 한국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임흥순 감독은 제주 출신 프로듀서 김민경과 함께 '반달'이란 이름으로 <2017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시리즈>와 <교환일기>를 작업한다. <2017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시리즈>는 2017년 12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진행될 임흥순의 개인전으로, 제주도와 제주의 역사도 함께 다룬다. 2015년 일본 작가 모모세 아야와 협업으로 시작된 <교환일기>는 제주, 대만, 오키나와를 연결하는 영상작품이다.

3개월간 제주에 머물며 작업할 해외 작가들 역시 제주의 자연, 옛 건물, 동자석, 거욱대 등을 작품 속에 녹여낼 계획이다.

# 예술공간 이아, 동떨어진 섬 되지 않으려면?

예술공간 이아는 최대 1년간 예술 작업을 하는 입주 작가뿐만 아니라 교육, 전시 등 예술과 관련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운영 주체인 제주문화예술재단은 이번 레지던지가 제주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아 레지던시 업무를 담당하는 재단 공간사업팀 배예임 씨는 “입주 작가 대다수가 다른 지역 출신들로 꾸려졌는데 제주의 자연, 역사, 문화를 더욱 신선한 시각으로 담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특히 레지던시에는 작가들이 타 분야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 협업할 수 있는 공간(Art-Lab)이 마련된다. 입주 작가마다 제주의 특정 분야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기대가 된다”고 밝혔다.

예술계에서는 이아 레지던시가 새로운 예술을 제주에 소개하는 것을 넘어서, 예술과 삼도2동, 나아가 제주시 원도심 공동체를 적극적으로 연결 짓는 거점이 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옛 제주대 병원은 인근 주민들에게 추억이자 애증의 장소로 인식돼 있다. 때문에 예술공간 이아라는 낯선 이름으로 불리게 될 이곳은 예술가들과 재단 직원만 오고가며 흡사 지역과 동 떨어진 섬이 아닌, 예전처럼 주민들이 거리낌 없이 찾아가는 공간이 돼야 한다. 눈높이를 맞춘 주민친화적 활동이 결국 예술공간 이아가 자리잡고 성공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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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제주대학교 병원 모습. 4월부터는 '예술공간 이아'라는 명칭으로 운영된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도내 창작 공간에서 활동하는 예술 기획자 김모 씨는 “예술공간 이아의 가장 큰 목적이 무엇인지 재단은 명심해야 한다. 원도심 공동체와의 관계가 이아에게 가장 중요하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해외 예술 공간들은 지역 커뮤니티와의 프로그램이 잘 마련돼 있다”며 “레지던시에 작가들이 모여있으면 알아서 되겠지 하고 생각하면 안된다. 재단이 양질의 기획과 프로그램을 만들 때 입주 작가와 지역 공동체간의 관계가 형성된다”고 밝혔다.

더불어 “도내 소규모 민간 예술공간은 많은 작가들, 특히 해외 작가들과 인연을 맺기가 어려운데, 이아를 통해 입주 작가와 민간 예술공간이 이어지면 좋겠다. 나아가 다른 지역 작가와 제주 작가가 연결되는 네트워크까지 이아가 만들 수 있다”며 “도민들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장점과 함께, 입주 작가들을 통해 제주가 다른 지역에 알려질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면도 고려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재단도 역시 주민과의 소통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배 씨는 “원하는 입주 작가들과 지역을 연계하는 방안도 추진할 예정이다. 이아에는 레지던시 뿐만 아니라 전시, 교육 공간도 구비된 만큼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방안을 계속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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