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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제주 청년 극단팀 ‘그리다’의 창작뮤지컬 <드림캐쳐 인 클래스>

지난해 8월 뮤지컬 <김종욱 찾기>를 제주에서 선보인 ‘그리다(Grida)’가 지난 10일~12일 두 번째 뮤지컬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그리다는 제주청년예술단체 ‘몬딱스’ 인원들이 일부 모여서 만든 팀이다. 몬딱스는 2013년부터 연극, 단편영화를 제작했지만, 그리다의 경우 첫 번째 작품을 <김종욱 찾기>로 시작해 두 번째도 뮤지컬을 만들었으니 특정 장르에 특화된 일종의 '작은 극단'이다.

그리다의 시작을 알린 <김종욱 찾기>는 장점보다는 단점이 두드러진 작품이었다. 출연진들은 연기와 노래 모두 충분히 소화하지 못했고 장비 준비도 미흡해 현장에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10~20대 연기자들이 핏대를 세워가며 힘차게 노래하고 연기하는 열정은 보는 이에게 그리다의 다음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6개월 만에 두 번째 작품으로 돌아온 그리다는 ‘창작’ 뮤지컬을 들고 나왔다. 앞선 <김종욱 찾기>는 2006년 초연하면서 영화로도 제작된 친숙한 작품이다. 검증된 작품을 다시 선택해 완성도를 높일 만도 할 텐데, 두 마리 토끼(연기·노래)를 모두 잡아야 하는 뮤지컬을 고수하면서 더욱이 창작 작품을 선택했다.

<드림캐쳐 인 클래스>는 제주에 예술고등학교가 있다는 가정 아래 학생들의 입학부터 졸업까지 과정을 그린 ‘하이스쿨(highschool) 뮤지컬’이다. 자신의 꿈을 키우기 위해 좌절하면서 친구들과 함께 일어나고 사랑을 키워가는 이야기다. 첫 날인 10일 공연장인 세이레아트센터를 찾았다.

중심인물 2명이 극의 진행을 이끌었던 <김종욱 찾기>와 달리 <드림캐쳐 인 클래스>는 10명이 넘는 중심 인물이 비교적 고른 비중을 가지고 있다. 특히 배우들은 상황, 역할에 맞는 여러 노래를 소화한다. 가요, 팝, 뮤지컬에 김광석부터 브루노 마스(Bruno Mars)까지 노래는 장르와 시기가 다양하다.

음악과 춤이 중요한 뮤지컬 특성을 두고 보면 분명 <드림캐쳐 인 클래스>는 <김종욱 찾기>보다 진일보했다. 출연진 대다수가 무리 없이 노래를 소화했고, 합창도 크게 어색하거나 거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엉뚱한 선물을 하는 장면에서 남녀 배우들이 옥신각신하며 동작과 노래의 합을 맞출 때는 기대 이상의 놀라움을 선사할 정도였다. 무선마이크를 사용해 어려움을 겪었던 지난 <김종욱 찾기>와 달리 고정 마이크 3개를 설치한 건 좋은 선택이다. 지난번과 달리 대폭 보강된 출연진은 여러모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었다. 중간 10분 쉬는 시간을 포함해 3시간 가량의 분량에도 지루하다는 느낌이 크게 들지 않을 만큼 다양한 이야기와 구성을 갖췄다. 배우와 연출진의 노력을 느낄 수 있는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물론 아쉬운 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예술고라는 작품 배경에도 내용상 비중이나 구성에 있어서 노래에 지나친 비중이 쏠려있다. 특히 한 막이 끝날 때 마다 무조건 노래로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은 변화를 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크다. 예를 들어 ‘썸’타는 연극 커플이 <햄릿> 같은 무거운 고전을 우선 배우느냐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말랑한’ 작품도 하느냐를 두고 크게 다투는 장면에서, 후회하는 여학생이 굳이 노래가 아닌 작품 속에서도 언급되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일부 장면을 연기한다면 어떨까 하는 식이다.

그리고 작품 전체적으로 너무 많은 이야기를 보여주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3시간 가량 불어났는데, 비슷하거나 곁다리스러운 막을 정리하는 식으로 줄여도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노래 역시 부르는 분량에 차이를 두면서 감정 전달에 강약을 주면 더욱 진행이 유연해지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다. 조명 기술은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해 보였다.

그럼에도 이런 아쉬움들이 무겁게 다가오지 않은 이유는, 노래·연기가 좋아서 무대가 좋아서 시간을 쪼개가며 땀 흘린 그리다 팀원들의 노력이 빛나기 때문이다. 극(劇) 분야를 폭넓게 배우고, 접하는 여건이 너무나 부족한 제주에서, 최고참이 20대 초반에 불과한 청년·청소년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손수 준비하며 무대에 작품을 올리는 과정은 결과물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높게 평가받기 충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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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다의 창작뮤지컬 <드림캐쳐 인 클래스>의 한 장면. 제공=그리다. ⓒ제주의소리

그리다의 본체인 몬딱스 자체가 ‘우리가 만들고 싶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모인 10대들의 모임이었다. 어느새 시간이 지나 몬딱스 창립 멤버들은 대학생이 되고, 육지로 나가고, 군입대하는 20대가 됐다. 그리고 다른 청소년들은 이곳에 들어와 같은 꿈을 키우고 있다. 몬딱스와 그리다는 앞으로 계속 변화를 겪을 것이다. 

예술을 향한 열정이 선후배간의 정으로 이어지는 것은 바람직하나, 그 열정이 정으로만 이어지도록 내버려두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몬딱스, 그리다, 그리고 수많은 제주 청소년과 청년들이 예술의 꿈을 계속 키울 수 있게 하는 건 ‘권한’이란 의자에 앉아있는 기성세대들의 손에 많은 부분 달려있다. 제주에서 예술의 꿈을 키워나가는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뮤지컬 만의 내용으로 끝나지 않도록 지역 사회와 어른들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그 책임을 제일 쉽게 실천하는 방법은 공연·전시를 '보러 가는 것'이다. 제일 쉬우면서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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