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립미술관 학술심포지엄 개최...시민참여 확대, 국제 연대 등 과제 산적

1년 앞으로 다가온 제주4.3 70주년을 맞아, 제주 미술계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각계 전문가들은 ▲4.3미술작품 상설 전시 공간 건립 ▲동아시아 국제 연대 결성 ▲시민 참여 확대 ▲재일교포 작가 조명 ▲다른 사회문제 논의 확대 ▲국내외 국가폭력과 연계 등 다양한 요구를 쏟아냈다.

제주도립미술관은 7일 오후 2시부터 미술관 강당에서 ‘4.3미술 아카이브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미술관이 4.3 69주년을 기념해 준비한 <4.3 미술 아카이브: 기억투쟁 30년>전과 연계한 자리다. 

김종길 경기문화재단 정책수석, 서승 리츠메이칸대학 교수, 임광현 문화평론가, 이승미 전 인천아트플랫폼 관장이 주제 발표를 맡았고, 양은희 건국대 글로컬전략연구소 연구교수, 박경훈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장, 안혜경 아트스페이스씨 대표, 이경은 제주도립미술관 학예연구팀장이 토론을 진행했다.

심포지엄은 4.3의 미술사적 위치와 의미를 조명하고 70주년을 준비하는 내용으로 진행됐다.

# 방치되는 4.3미술작품...상설 전시공간 필요해

이날 심포지엄의 가장 큰 화두는 4.3미술·예술작품 전용공간, 일명 4.3문화예술센터다. 1987년 결성한 그림패 바람코지를 시작으로 탐라미술인협회로 이어오면서 탄생한 수 백점의 4.3미술작품을 상시 전시하며 미래세대에게 교육하는 공간이 바로 4.3문화예술센터다. 애초 4.3평화공원 3단계 조성사업으로 지을 예정이었지만,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공원 사업 자체가 차질을 빚었고, 현재는 전시나 예술 기능이 삭제된 4.3평화교육센터가 들어선 상태다.

때문에 도내외 미술인과 관계자들은 예술로서 4.3을 전승하는 상설 문화예술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유사한 사례로는 태평양 전쟁 당시 오키나와 전쟁의 실상을 그린 <오키나와전쟁도> 등이 전시된 사키마(佐喜眞) 미술관이 있다.

안혜경 대표는 토론에서 “4.3미술을 담아낼 전용 공간이 필요하다. 지금은 4.3미술작품을 보관하는 여건이 턱없이 열악하다. 예술 체험이라는 목적에서도 중요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이번 4.3아카이브전을 준비한 이경은 도립미술관 학예연구팀장은 “준비 과정에서 정말 시급하게 느낀 것이 바로 전용 공간이다. 1987년 바람코지 결성 이후 30년이 흐르면서 대다수 4.3 작품은 작가 개인이 보관하는데, 조사해보니 망가진 작품도 있어 안타까웠다”고 밝혔다.

이 팀장은 “4.3 미술작품은 아직 진실 규명이 부족한 역사처럼 어떤 가치를 지녔고, 어떻게 쓰일 지 명확하게 가치 판단이 이뤄지지 않았다. 작품 조사·수집 뿐만 아니라 디지털화도 필요한데, 이 모든 과정은 4.3문화예술센터 같은 전담 공간에서 이뤄지는게 바람직하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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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립미술관은 7일 미술관 강당에서 ‘4.3미술 아카이브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바람코지 창립 회원이기도 한 박경훈 이사장은 “4.3문화예술센터는 평화공원 기본 계획 구상에 포함돼 있었다. 문제는 평화공원 3단계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문화예술센터는 평화교육센터로 왜곡돼 결국 사라졌다”며 4.3 관련 ‘상설 전시 예술 공간’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김종길 정책수석은 “미래 세대, 청소년, 많은 시민과 4.3의 접촉면을 넓히는 예술 공간이 필요하다. 이건 4.3평화기념관과 올바른 전승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성격은 다르다”고 힘을 보탰다.

# 70주년 앞둔 4.3...미술 역할 ‘산적’

심포지엄 참가자들은 저마다 생각하는 4.3미술의 과제와 역할을 쏟아냈다.

김종길 수석은 “기획자이자 비평가 입장에서 보면 4.3미술 작업들이 지나치게 과거 형식에 집중된 느낌이다. 새로운 형식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 다른 지역 작가와는 어떻게 연대할 지 오키나와, 대만을 비롯해 최근 네팔까지 국가폭력에 저항한 다른 국가와 함께하는 새로운 전망을 4.3미술은 이야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승 교수는 “4.3은 먼저 이뤄져야 할 사건의 정의나 규명이 부족했다. 4.3특별법에 있어서도 사건의 성격 규정이 돼 있지 않고, 제주사회나 운동권 안에서도 입장이 대립돼 있으니 평가가 확정된 사건이라고 할 수 없다. 4.3미술운동의 사명은 그 어려움을 담지하고 아직도 완성하지 못한 4.3운동의 전위로서 구실을 다하는 것이라야 한다”고 규정했다. 더불어 4.3을 피해 일본으로 건너간 재일교포들의 미술 세계도 조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엄광현 평론가는 “4.3미술제는 전시 중심에서 시민참여 행사로 확장돼야 한다. 주제(담론) 역시 평화·인권을 포함해 환경, 빈곤, 개발 같은 다양한 사회문제로 넓혀야 한다”며 “4.3을 체험하지 않은 세대에게 그 의미를 어떻게 전달할지가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설명했다. 이런 면에서 뉴미디어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경훈 이사장은 “아직 4.3은 예술적으로 발굴해야 할 가치가 많이 남아있다. 미술제를 비엔날레 규모로 확장하고, 4.3과 같은 아픔을 겪은 동아시아 국가들과 실질적으로 연대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당장 내년부터 국제심포지엄을 열어 논의하는 장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행사 참가자 가운데는“포스트(Post) 4.3미술은 1947년 3월 1일 제주 관덕정서 열린 3.1절 기념대회 당시 모인 도민 3만여명이 꿈꿨던 세상이다. 그들이 원했던 세상이 무엇이었는지 알리는 것이 4.3미술의 미래”라는 의견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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