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마저 정치인 눈치를 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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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이 있는 나의 그림책'으로 그림책의 재발견에 나섰던 오승주 작가가 다시 고전을 꺼내들었습니다. 서귀포시 안덕면 산방도서관에서 진행하는 논어 읽기 시즌2에 맞춰 <제주의소리>에 인문학 함께 읽기 칼럼을 펼쳐놓습니다. 좋은 생각에 힘입어 우리의 행복이 오래 가기를 바랍니다. [편집자 주]

[논어와 동서양 고전의 향연] (11) 대통령선거라는 ‘시간’을 바라보는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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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전 1, 2, 3  l 좌구명 (지은이) | 신동준 (옮긴이) | 한길사 | 2006-03-30 | 원제 春秋左傳

정치권력을 이겨낸 『춘추좌전』

중국의 작은 나라였던 노나라. 전쟁에서 몇 번 이긴 적도 없고,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어서 정치력을 발휘한 적도 없습니다. 왕들도, 대부들도 위대한 면모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 나라의 역사서는 중국의 내로라하는 지식인들이 2000년 동안 읽고 또 읽으며 토론을 벌입니다. 이 책이 바로 좌구명(左丘明)이 지은 『춘추좌전』(이하 ‘좌전’)입니다.

중국에서 나온 모든 유명한 책들은 정치권력의 손을 타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정치권력이 어떻게 책들을 흡입하는지 아세요? 분서갱유처럼 태워버리는 것도 한 방법이고요. 경전으로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고, 주석가들이 원문을 조작하거나 배치를 바꾸는 것으로 내용 자체를 조작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특히 노자의 『도덕경』은 글자 수가 짧기 때문에 집중 공략을 당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노자 53장이 대표적인데요.

만일 나에게 조그만 지혜가 있다면
무위자연의 대도를 행해
오직 (묶인 것들을) 풀어주는 해방을 공경할 것이다
무위자연의 대도는 심히 평이한 길인데도
사람들은 소도(小道)[인의지도]만 좋아하고
조정은 민중을 심히 닦달하니 농토는 황폐하고 창고는 비었다

삼국지를 읽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조조는 후한(後漢) 말기에 도교 세력이 주축이 된 농민 반란군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두각을 나타내 천하를 차지한 사람입니다. 그는 권력을 차지한 후 노자 장자의 체제에 반하는 민중성과 문명에 반하는 저항성을 제거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합니다. 이 과정에서 당대의 천재 왕필이 정치권력의 명령을 받고 왜곡을 가합니다. 그리고 우리 조상들은 대부분 왕필의 왜곡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지금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왕필은 공자의 인의(仁義)를 소도(小道)로 비판한 ‘대도(大道)’를 구분하지 않았고, 조정이 민중을 닦달하는 것 역시 ‘청소한다’라고 오역했죠. 결정적으로 백성들을 굴레에서 풀어주는 게 소원이라는 구절 역시 비슷한 글자를 배치하는 방법으로 ‘사도(邪道)를 두려워한다’는 식으로 꼬았습니다. 마치 오월동주처럼 대립적인 노자와 유가를 하나의 도로 통합시킨 왜곡이 역사를 거듭해서 반복되었습니다. (노자 구절 해설과 관련해서는 묵점 기세춘 선생의 『노자 강의』를 참조했습니다)

『좌전』은 정치권력이 경서(經書)로 편입시키려고 엄청나게 노력했습니다. 공자가 편찬했다는 『춘추』의 주석서로서 권위를 가지고 있었지만, 정치권력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춘추공양전』, 『춘추곡량전』이 『춘추』의 기본서 자리를 놓고 1천년이 넘게 전쟁을 벌입니다.  삼국시대의 두예라는 학자는 아예 『좌전』의 구절을 하나하나 쪼개서 경전 식으로 개조하려다 실패하죠. 결국 『좌전』은 역사서라는 스스로의 특징을 학자들에게 각인시키며 지금까지 건재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의 학자들이 『좌전』을 역사서의 모습 그대로 두는 데는 2천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소중한 지면에 『좌전』의 문헌적 배경을 길게 설명한 까닭은 대통령선거와 정치권력에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쏠려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선거는 나라의 축제니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은 기웃거리지 않고 자기 일을 묵묵히 할 때나 가치 있는 것입니다.

두 번에 걸친 대통령 선거 TV 토론을 보면 ‘대권’이라는 욕망이 모든 생각들을 지배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지지율이 높은 후보들은 유권자의 눈치만 살피면서 전형적인 포퓰리즘을 견지하고, 심지어는 조변석개(朝變夕改)하듯 이랬다저랬다 하기도 합니다. 지지율이 낮은 후보들은 자극적인 발언을 통해서 인지도를 높이려고 하고.

현대사에서 쓰이는 용어에는 ‘선거공간’이 있습니다. 선거공간은 시대정신을 담는 그릇입니다. 현실적으로 선거 시기가 아니면 국민은 대한민국 정치의 방향을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할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합니다. 후보자의 의무는 선거공간을 통해서 달라진 대외 상황을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선택을 받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모두 ‘쇼’로 바뀌면 결국 ‘시간낭비’가 되어 버립니다. 후보자는 유권자의 눈치를 보고, 유권자는 후보자의 눈치를 보는 한심한 정치 행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한숨만 나옵니다.

춘추시대의 인간학을 배울 시간

『좌전』은 춘추시대 노나라를 둘러싼 나라들의 정치 이야기입니다. 춘추전국시대라는 말은 귀가 따가울 정도로 많이 들어봤죠.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떼어 놓고 보면 느낌이 다릅니다. 춘추시대는 뭔가 멀게 느껴지고, 전국시대는 가깝게 느껴지고 왠지 편안함마저 느껴집니다. 춘추시대를 담은 책은 『좌전』을 비롯해 『논어』, 『안자춘추』, 『국어』 등이 있고, 전국시대를 담은 책은 『맹자』, 『전국책』, 『손자병법』, 『한비자』 등이 있습니다. 전국시대는 통일을 위해서 극도의 효율성과 조직학 등이 발달했습니다. 그러니까 급변하는 지금 시대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전국시대를 담은 책들을 읽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반대로 춘추시대의 책에 더 애정을 느낍니다. 전국시대에는 잘 보이지 않는 ‘인간학’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노희공 21년(기원전 639년) 여름에 노나라에 큰 가뭄이 왔을 때 왕이 기우제를 전담하는 여자 무당을 화형시키려고 했습니다. 대부 장문중이 이에 반대하며 간합니다.

“이는 가뭄에 대한 대비책이 아닙니다. 수성곽(修城郭 : 내성과 외성을 수리함)과 폄식(貶食 : 음식을 줄임), 생용(省用 : 비용을 줄임), 무색(務穡 : 농사에 힘씀), 권분(勸分 : 서로 나누어 먹도록 권함)에 힘써야 합니다. 무당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늘이 그녀를 죽이고자 했다면 애초에 태어나게 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만일 그녀가 한재(旱災)를 내렸다면 그녀를 불에 태워 죽이는 것은 재해를 더욱 키우는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 『좌전』, ‘노희공’ 편

당시에는 순장(殉葬) 제도가 남아 있어서 유력한 제후가 죽으면 처첩(妻妾)이나 신하들을 함께 파묻는 관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 생명을 없애는 일이라 당대에도 대단한 논란이 되었습니다. 노문공 6년(기원전 621년)의 기록을 볼까요?

진목공 임호(任好)가 세상을 떠났다. 이때 대부 자거씨(子車氏)의 세 아들인 엄식과 중행, 감호 등이 순사(殉死)했다. 이들은 모두 진(秦)나라의 뛰어난 인물들이었다. 진나라 사람들이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그들을 위해 <시경> 「진풍․황조(黃鳥)」에 나오는 시를 읊었다. 이를 두고 군자는 이같이 평했다. / “진목공이 제후들의 맹주가 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죽어서도 백성을 버렸기 때문이다. 선왕은 위세(違世 : 세상을 떠남)하면서도 백성에게 좋은 법도를 남겼는데 하물며 선인(善人)들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단 말인가……(중략) 진목공은 후손에게 끼칠 훌륭한 법도는 남겨주지도 못한 채 죽을 때는 오히려 뛰어난 인물들을 순장시켰다. 이렇게 하고도 윗자리에 있기란 어려운 법이다.” / 군자는 이로써 진나라가 다시는 동정(東征)하지 못할 것을 알았다. - 『좌전』, ‘노문공’ 편

물론 춘추시대가 고루한 봉건적 질서인 것은 맞습니다. 신분계급의 이동 또한 좀처럼 허락되지 않았던 폐쇄적인 사회였죠. 하지만 그 시대도 ‘사람’이 살고 있었고, 시대의 엄중한 상황이 존재했습니다. 사람의 시대였죠. 『좌전』이 위대한 까닭은 ‘엄중한 시대변화를 두려워하고 고민하는 사람’에 대한 기록이라는 점입니다. 4차산업, 국방개혁, 학제개편, 공공일자리, 조세정의 다 좋습니다. 그 구상에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 온전히 숨 쉬고 있나요? 사람이라는 요소가 사라진 지는 오래 되었습니다.

정치인들은 구조적으로 ‘사람’이 숨 쉴 공간을 마련해줄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 돈을 대는 건 기업인이고, 항상 정치인 주변에는 로비스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평범하고 약한 유권자들의 손을 들어주는 제도권력은 없습니다. ‘사람’이라는 요소는 쟁취하는 것입니다. 『좌전』의 시간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권력으로부터 ‘사람’의 요소를 되찾기 위해서 싸웠던 것처럼요. 정치권력은 특정 시기, 즉 선거철에 유권자의 눈치를 봅니다.

하지만 유권자마저도 정치인의 눈치를 봐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사람다운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나라가 나라다울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것을 정치인들에게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그 대신 정치인들이 하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들 수는 있습니다. 자, 이제부터 우리 사회에서 ‘사람’이라는 요소를 일상생활 곳곳에 담는 일을 합시다. 대통령선거기간인 지금이야말로 이 문제를 생각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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