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치 높이의 벽에 불과했다면
한 치 높이의 벽에 불과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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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詩 한 편> (20) 능소 / 박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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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소화. ⓒ 김연미

피고 지는 꽃으로 넝쿨은 북새통인데
밧줄에서 내리거나 밧줄을 올라타려고
꽃들은 꽁무니마다 서로 물고 늘어지는데

발톱 다 빠지도록 한여름을 기어올라
마침내 방호벽 너머 턱을 내건 꽃 한 채
첫울음 길어 올리듯 뙤약볕도 자지러진다

- 박명숙 [능소] 전문

스스로 일어설 수 없는 것들의 비애를 생각해 본다. 세상이 다 가진 등뼈 하나 내려 받지 못하고 돌담이든, 벽이든, 나무든 그 무엇이든, 서 있는 것들의 발 뒤꿈치를 타고 올라야만 굽은 허리 겨우 세울 수 있다고 할 때, 그렇게 되기까지의 서러움이 오죽할까 싶은 것이다. 가슴에 품은 것이 돌담이면 저도 돌이 되어야 하고, 나무 기둥이면 나무의 생리에 제 밤과 낮을 맞추어야 한다. 딱딱한 벽에 기대기 위해서는 제 촉수의 모든 고집을 다 풀고 나서야 발 한 짝 붙이고 설 수 있는 것이니.

서러움이 깊으면 악착스러워질 수 밖에. 고고한 기품이 느껴지는 기와담장 위에서 대갓집 규수처럼 피어있는 능소화를 생각한다. 넉넉한 품새가 고생이라곤 전혀 모를 것 같은 모습이지만 시선을 조금만 뒤로 하면 얽히고 설킨 모습이 세상사 저리 가라다. 줄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조금 더 좋은 곳, 조금 더 높은 곳을 향하여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북새통’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꽁무니마다 서로 물고 늘어지’고, ‘발톱 다 빠지도록 한여름을 기어올라’, ‘마침내 방호벽 너머 턱을 내’걸면 드디어 원하는 바가 이루어진 것인가. 이들이 물었던 꽁무니는 바로 자신들의 엉덩이였음을, ‘발톱 다 빠지도록’ 올라선 자리는 다름 아닌 한 치 높이의 벽에 불과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표정을 지어야 하는 것일까. 아무리 치열하게 살아도 스스로 설 수 없다는 사실은 결코 변하지 않는 절대절망이 되어 몸을 떨어뜨리고 마는데 말이다.

‘마침내 방호벽 너머 턱을 내건 꽃 한 채’에게 ‘첫울음 길어 올리듯’ 기쁨의 환호성을 들려주지 못하는 것은 하늘을 배경으로 남아 있는 방호벽 위 공간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다. 등뼈 없는 것들은 결코 도달하지 못하는 공간. 질문도 호기심도 다 버리고 주어진 자리에서 복닥거리며 살기에 우리들의 가슴은 너무 뜨거운 것이다. / 김연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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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미 시인은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출신이다. 『연인』으로 등단했고 시집 『바다 쪽으로 피는 꽃』을 펴냈다. 2010년 제2회 역동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표선면 가마리에서 감귤 농사를 짓고 있다. <제주의소리>에서 ‘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 연재를 통해 초보 농부의 일상을 감각적으로 풀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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