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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좌수반 문화재단 좌세준 이사장(왼쪽)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좌수반 장학재단, 제주 고교·대학생에 3100만원 지급...후손들도 1억4000만원 추가 출연 

공익 재단법인 좌수반 문화재단(이사장 좌세준)은 26일 제주출신 대학생 21명과 고교생 20명에게 총 310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재단은 또 복지단체 3곳에도 성금 100만원씩을 전달했다. 

1994년 설립된 좌수반 문화재단은 매년 2000만원 안팎의 장학금을 고교·대학생에게 지급해왔으나, 올해 지원 규모를 대폭 확대했다. 

좌세준 이사장과 그의 형제자매, 손부(孫夫)인 강석반 세무사 등 4명이 각각 3500만원씩 총 1억4000만원을 출연한데 따른 것이다. 

좌수반 문화재단은 故 김순자 여사(1917~2011년)가 1973년 작고한 남편 좌수반 선생의 유지(遺志)를 받들기 위해 1994년 6월 기금 10억원을 출연해 설립됐다. 당시 김 여사의 나이는 77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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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좌수반 문화재단 좌세준 이사장.
이후 김 여사는 재단 이사장을 맡으면서 2005년까지 총 6억원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복지단체에도 꾸준히 기부했다. 

그는 생전 “초등학교 밖에 졸업하지 못했는데도 독학으로 의사시험에 합격하고 근검절약 했던 남편이 생전에 고향 후진들을 위한 육영사업을 펼치고자 했던 뜻을 받들어 장학재단을 설립하게 됐다”고 말하곤 했다. 

그랬다. 좌수반 선생의 육영사업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이날 장학금 전달식에서 선생의 손자인 좌세준 이사장(법무법인 한맥 변호사)은 할아버지가 “돈이 없어 공부를 못하는 것은 내 대(代)에서 끊고싶다”고 말했다고 기억했다. 물론 좌 이사장은 할아버지를 직접 뵈지는 못했다. 기억은 부모의 얘기에 의존했다. 

좌 선생 부부의 장학 의지를 가늠하려면 부부의 발자취부터 더듬어야 한다. 부부는 1940년 결혼했다. 각각 제주시 애월읍 금성리, 조천읍 신흥리가 고향이다.  

소학교(초등학교)만 나온 좌 선생은 1945년 독학으로 국가의사 검정시험에 합격했다. 서울 용산구 청파동에서 십전의원(十全醫院)을 개업했으나, 6.25 발발로 병원이 포격을 받자 부산으로 피난 후 일본으로 건너갔다. 

좌 선생은 도일(渡日) 후 일본 현지 개업을 위해 이번에도 독학으로 일본국 의사시험에 합격했으나, 이른바 ‘조센징’(재일 조선인)이라는 신분과 차별 탓에 자신의 이름으로는 개업을 못하고 일본인 병원에서 의사로 근무했다. 

김 여사는 남편이 일본 도쿄에서 독학으로 공부를 할 때나 합격 후에도 열차 등에서 담배, 껌 장사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고, 이후 남편과 함께 찻집을 운영하며 한푼두푼 재산을 모았다. 자수성가의 원천이었다. 

좌 선생의 고향 사랑은 애틋했다. 

일본에 거주하는 제주인들의 모임을 위해 헌신했고, 금성리 전기 가설사업을 위한 기금을 쾌척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고학(苦學)을 해야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장학 사업을 꿈꾸던 중 급환으로 1973년 5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자고로 부부는 닮아간다고 했다. 좌 선생의 장학 의지와 애향심은 부인에게 그대로 옮아갔다.  

김 여사는 2005년 횡령사고로 기본재산 10억원이 소진돼 재단이 등록 취소 위기를 맞자 2007년 다시 10억원을 출연했다. 당시 나이 90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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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농협 제주지역본부에서 열린 좌수반 문화재단 장학금 전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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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수반 문화재단 장학금 전달식에서 재단 관계자들과 장학금 수혜 학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또 2005년 국제로타리 3660지구 제주중앙로타리클럽에 1억원을 기부하고, 이후 2000만원을 더 얹어 ‘관명 장학금’(한국로타리 장학문화재단)을 잉태했다. 현재까지 매년 1200만원의 장학금이 지급됐다. 

뿐만 아니라 남편 고향인 금성리 복지회관 건립기금, 친정인 신흥리 복지회관 건립에도 2억3000만원을 내놓고 매년 도내 노인복지시설 등에 기부금을 전달하고 있다. 

(사)김만덕 기념사업회는 김 여사의 이러한 공적을 기려 2001년 제22회 만덕봉사상을 그에게 안겼다.  

생전 김 여사는 90이 넘는 고령에도 좌수반 장학금과 관명 장학금 수여식에 참석하러 매년 고향 땅을 밟았다. 2008년에도 장학금 수여차 귀국했다가 산책 도중 입은 부상으로 치료를 받다가 3년 후 눈을 감고 말았다. 

이날 장학금은 대학생에게 각 100만원, 고교생에겐 50만원씩 돌아갔다. 올해는 김 여사가 탄생한지 100주년 되는 해여서 장학금 전달식이 더욱 뜻깊었다. 

좌세준 이사장은 “요즘 등록금이 너무 올라 100만원, 50만원은 결코 큰 액수가 아니다. 여러분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도 생각해봤다”면서 “그럼에도 장학금을 여러 명에게 나눠서 드리는 것은 제 할아버지, 할머니가 뿌린 나눔의 씨앗을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환경에 굴하지 말고 학업에 정진해 줄 것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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