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 갇힌 유년과 학창시절
감옥에 갇힌 유년과 학창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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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입시의 도구로 전락한 10대들의 글쓰기. 결국 그들의 가슴을 울릴 수도, 가슴에 와 닿을 수도 없는 글쓰기다. ‘글은 곧 자기 자신’이다. 자기 생각과 감정 표현에 더 솔직하고, 일상적이고 소박한 삶의 결이 드러나는 10대들의 진짜 글쓰기에는 세상을 향해 던지는 선명하고 묵직한 메시지가 있다. 10대들이 자신의 언어로 세상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라. 최근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를 펴낸 오승주 작가가 지난해 제주도내 중학교에서 글쓰기 수업을 통해 아이들과 교감했던 사례들을 접목시킨 귀 기울일만한 10대들의 목소리를 재구성해 싣는다. <세상을 바꾸는 10대들의 글쓰기> 연재다. 매주 1회, 총 30회 집필을 예정하고 있는 이 코너에 독자 여러분의 관심을 기대한다. [편집자]

[세상을 바꾸는 10대들의 글쓰기] (11)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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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오웰의 소설집 '동물농장'과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사진=오승주. ⓒ제주의소리

학교 교무실에서 있었던 일

중학생 수업을 하면서 ‘교무실 체험’을 얼마 간 한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들에게는 교무실이 편안한 공간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두 가지 추억은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한 학생과 선생님의 다툼이 생각납니다. 어느 날 학생이 화가 났는지 선생님께 짜증을 내고 대들었습니다. 선생님은 학생을 교무실로 데려오려고 했고, 학생은 자기가 왜 교무실에 가야 하느냐고 따졌습니다. 선생님이 학생을 그렇게도 교무실로 데려오려고 했던 의도가 잠시 후에 드러났습니다. 옆에 앉은 선생님들이 합세하여 한 학생을 엄하게 꾸짖자 학생은 순한 양처럼 목소리가 누그러졌습니다. 학생을 데리고 온 선생님은 학생에게 해서는 안 되는 행동에 대해서 오랫동안 훈육을 했고, 학생의 부모님과도 통화를 했습니다. 

저는 학생이 왜 화가 났고,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했지만 알 수 있는 길은 없었습니다. 학생을 붙잡아 놓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럴 상황도 아니었고요. 아이들은 잘못된 행동을 했고 어른은 이를 바로잡아줘야 하고, 필요하다면 힘을 모아 억눌러야 한다는 ‘전제’가 불편했습니다. 학생이 무슨 이유로 화가 났는지를 알 수 있어야 정확한 해결 방법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 날 학생이 얻은 교훈은 역시 “선생님께는 이유를 불문하고 대들지 말아야 해”가 아니었을까요.

저는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폭력의 경험’을 꺼내볼 것을 요청합니다. 하지만 슬픈 게 뭔지 아세요? 학생들은 자신이 어떤 폭력을 당하고 있는지 잘 몰랐습니다. 폭력을 하는 사람도, 폭력을 당하는 사람도 그것이 폭력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폭력이 공기처럼 가득 찼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학생들과 인권에 대해서 토론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물었죠. 우리나라에 인종차별이 왜 크게 문제되지 않는 걸까? 학생들은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인종차별이 심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미국에서는 인종차별이 일어나면 곧바로 문제제기를 하고 공론화가 되지만, 우리나라는 그렇게 연결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학생들은 공감을 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을 공포에 떨게 하고, 또 상처 받은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미투 운동’에도 ‘폭력’에 대한 불감증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미투 운동이 일어나는 이유는 일터나 학교, 열린 공간에서 성폭력이나 성희롱 같은 폭력을 돌아보고 개선하자는 차원인데 오히려 ‘펜스 룰’(Pence Rule·여성과 함께하는 자리를 만들지 않는 것) 같은 ‘성차별’로 이어집니다. 잘못이 다른 잘못으로 바뀌고, 폭력이 다른 폭력으로 바뀌는 거죠.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겪는 폭력이나 일상에서 겪는 근본적인 문제를 누가 건드릴 수 있을까요? 어른이 아무리 상상력을 동원한다고 하더라도 아이들의 ‘현재’는 아이들밖에 할 수 없습니다. 

내가 만약 작가라면 가족과 관련된 주제로 소설을 써서 나와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싶다. 왜냐하면 나와 비슷한 또래인 친구들은 사춘기를 겪는 친구들이 많을 텐데, 그럼 부모님에게 반항이 심해질 수 있고, 어색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민한 부분이지만, 책을 통해 조금 더 배울 수 있고, 가까이할 수 있으면 하는 마음에서 책을 쓰고 싶고, 책을 통해 공감하고, 마음이 편해졌으면 좋겠다. 좋은 친구와 관련된 책도 좋을 것 같다. 그 부분에서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 같기 때문이다. - 어느 중학교 2학년 학생의 글

노동 감옥 프랑스, 빈민 감옥 영국의 현실을 고발한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요리사의 근무 시간은 아침 여덟 시부터 자정까지였고, 나는 아침 일곱 시부터 날을 넘겨 열두 시 반까지―휴식 시간도 거의 없이 열일곱 시간 반이나― 일을 해야 했다. 오후 다섯 시까지는 궁둥이 붙일 여유도 없었고 쓰레기통 꼭대기 말고는 앉을 자리도 없었다. 집이 가까워서 지하철 막차를 타지 않아도 되는 보리스는 아침 여덟 시부터 다음 날 새벽 두 시까지―하루 열여덟 시간―일주일에 7일 내내 일했다. 그런 근무 시간이 통상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파리에서는 두드러지게 별난 것도 아니었다. - 조지 오웰의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중 파리 레스토랑 생활 묘사 장면.

할 일만 있다면 한 달이든 1년이든 한곳에 머무를 수 있다. 그들의 끝없는 순회는 너무나도 인위적인 처사이다. 현재 떠돌이에게 드는 비용은 지방세에서 충당하고 있다. 그 때문에 각 구빈원의 목적은 그들을 딴 곳으로 밀어내는 데 있다. 이 때문에 하룻밤만 머물게 하는 법이 생긴 것이다. 만약 한 달 이내에 다시 들르면 벌로 일주일 동안 갇혀 있어야 한다. 이는 감옥에 갇히는 것과 똑같아서 당연히 자꾸만 옮겨 다니게 된다. 떠돌이가 구빈원에 노동을 제공하고 구빈원이 풍족한 음식을 준다면 사정은 달라질 테고 구빈원은 부분적으로나마 자활 기관으로 발전할 것이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여기저기에 정착함으로써 떠돌이 신세를 벗어날 것이다. - 조지 오웰의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중 영국 떠돌이 생활 묘사 장면.

1903년 인도 벵골에서 식민지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난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 필명 조지 오웰)는 열네 살이 되던 1917년부터 5년 동안 왕실 장학금을 받으며 명문 이튼 스쿨에 다녔습니다. 1922년에는 버마(오늘날의 미얀마)로 건너가 경찰관이 됐습니다.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아 왔지만 그의 영혼과는 전혀 맞지 않는 옷이었고, 특히 영국의 식민 정책에 대한 대단한 환멸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경찰 생활 자체가 그에게는 영혼의 감옥이었던 셈이죠. 

결국 그는 1927년 경찰관직을 그만 두었습니다. 영혼의 감옥에서 몸의 감옥으로 옮겨간 것이죠. 파리로 거처를 옮기고 나서 지극히 궁핍한 ‘따라지 생활’을 하였던 경험이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생활》의 주된 내용입니다. 《동물농장》, 《1984》 등 조지 오웰의 작품을 좋아하는 분들은 작가의 초창기 작품 세계를 음미할 수 있습니다. 그냥 인생 역전도 아니고 연이은 인생 역전의 역전을 경험했기에 사유의 폭은 그만큼 넓을 수밖에 없습니다. 

조지 오웰은 단지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이 가난한 생활 속에서 어떻게 인간의 자존심을 지키고 살아가는지 관찰했습니다. 그리고 가난이 인간 정신을 어떻게 왜곡시키는지도 자세히 관찰했습니다. 저는 현실의 폭력과 가난 문제는 문명과 시간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지금의 생활수준이 다른 것은 시간의 차이 때문이지만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는 조지 오웰이 경험했던 극한의 빈곤보다 극심한 곳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문화와 문명, 그리고 의식 수준은 시간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만약 청소년 작가가 우리나라 어느 학교에 다니면서 자신이 본 일들을 기록하고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저는 간절한 마음으로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청소년을 작가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른보다 책을 많이 읽고 감수성이 뛰어난 청소년들은 어쩌면 기성 작가보다 더 위대한 작품을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조지 오웰처럼 자신이 보고 경험한 것을 담담하게 르포르타주로 표현할 수만 있어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이야말로 청소년들이 글쓰기 연습을 하고 실제 글을 써야 하는 최고의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오래된 비판에 이은 갑질 논란, 금수저와 흙수저, 그리고 미투 운동까지. 이것은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 커다란 흐름입니다. 물에 비유하자면 낮은 곳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미투 운동은 더 낮은 곳으로 흘러갈 것입니다. 거기가 어디일까요? 바로 청소년과 어린이가 겪는 현실의 문제입니다. 제가 어린이와 청소년의 현실에 각별한 관심을 갖는 까닭은 유년 시절과 청소년 시절의 현실과 지금의 현실이 너무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청소년의 인권은 30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30년 후에는 어떨까요? 저는 뜻 있는 어른들과 청소년들이 힘을 모아 잘못된 현실을 하나하나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면 청소년들이 어떤 현실에 억눌려 있고, 어떤 폭력을 느끼고 있는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조지 오웰이 가난한 이웃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이야기했듯, 우리 친구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이야기할 때입니다.

#  필자 오승주는?

1978년 제주 성산포에서 나고 자랐다. 제주대에서 국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2003년부터 10여 년간 서울 강남에서 입시컨설팅, 논구술 특강 등의 일을 하다가 대한민국 입시구조와 사교육 시스템에 환멸감을 느꼈다. 

이후 언론운동과 시민정치운동, 출판문화운동, 도서관 운동 등에 참여했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가장 큰 변화의 힘은 가정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족의 끈이 이어지게 하는 일에 인생을 걸었다. 소홀했던 가정이 무너지기 직전, 아이의 간절한 외침 소리를 들었기 때문. 

2013년 《책 놀이 책》을 써 아이와 부모를 놀이로 이어 주었고, 3년간의 공부방 운영 경험과 두 아들과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를 썼다. 아빠 육아, 인문고전으로 아이 깊이 읽기로 가족 소통을 꾀했다. 

현재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공자의 논어》,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사마천의 사기》를 집필 중이며 아주머니와 청소년을 작가로 만드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글쓰기·책쓰기 강사로서 지역 도서관과 활발히 사업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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