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보는 제주영화제 본선 진출작…'낙원' '참 잘했어요'

영화는 꿈을 먹고 자란다. 영화는 보는 사람에겐 새로운 세계이자, 보여주고 싶은 사람에겐 꿈을 실현하는 도구다.

여기, 다양한 꿈의 영역이 교차하는 지점이 있다. 바로 오는 9월21일부터 24일까지 열리는 ‘제5회 제주영화제’다.

제주지역 비영리 민간영상단체 (사)제주씨네아일랜드가 주최하고 제5회 제주영화제 집행위원회가 주관하는 ‘제 5회 제주영화제’에 상영될 본선작 30편을 미리 안내한다. 당장 보지 못하면 미칠 정도로 맛깔나는 매력이 넘실거리는 상상력의 공장으로….

# 서사는 없고 슬픔만 쌓인다
- 낙원 김종관 감독 / 상영시간 14분 / 2005년 제작 / 극영화
 : 상영섹션 ‘찬란한 가족-Episode 1’ 22일 16시, 24일 13시30분 상영

비가 오는 날 여자는 버스를 탄다. 여자와 남자는 하루를 같이 보내고 여자는 다시 비 개인 길을 떠난다.

# 참을 수 없는 매력
상실의 공기가 꽉 찬 영화다.

‘사랑’을 상실하고, ‘가족’을 상실하고, 결국은 ‘삶’까지 상실하고 마는…

영화는 별다른 줄거리가 없다. 배우들은 한 마디 대사없고, 별다른 움직임도 없다. 하지만 슬픔이 밀려온다. 상실의 감정이 느껴진다. 영화 속 인물들과 그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 사이에 사이에 슬픔과 상실, 이별의 공기가 들어차있다.

대사를 없앰으로써 가능한 일이다. 움직임을 별로 하지 않아서 감정적 파고가 더욱 세다.

▲ '낙원'.
감독은 영화 속 인물들의 대사와 행동을 없앤 대신 주변 사물과 인물들의 얼굴 표정, 세세한 몸짓 하나하나에 초점을 맞췄다.

떨어지는 빗줄기, 빗소리, 스산한 바람소리, 쓸쓸한 걸음, 초췌한 얼굴빛, 흔들거리는 눈동자.

이 모든 것들이 관객들에게 다른 감정으로 해석되며 영화와 교류를 가능케 한다.

가족과 사랑, 삶을 잃은 한 절름발이 남자의 쓸쓸한 발걸음이 오랜 시간 앵글안에 머물때 어느새 나 자신도 숨죽인다.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남자의 알 듯 모를듯한 눈빛에서 영화는 조용하나 어느새 내 감정은 숨이 가빠온다. 코끝이 찡해옴을 느낀다.

결국 어느 감정도 대사나 행동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감독은 ‘툭’하니 어느 순간만을 관객들에게 던져 놓았다. 그저 알아서 하라는 듯. 다른 이들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난 충분히 가슴이 아려옴을 느꼈다.

감독이 사물을 대하는 세심함이 돋보인다. 여기에 <바라만 본다>를 통해 이미 소개했던 양익준의 감정연기도 훌륭하다.

14분의 비교적 짧은 시간이지만 다양한 감정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

# 추천, 이 장면
* 영화 속 등장하는 사물들의 움직임 놓치지 말길
* 한 남자의 쓸쓸한 뒷모습을 오랜 시간 잡은 장면
* 떠나가는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의 눈빛. 상실과 미련, 아쉬움 집착 등 모든 감정의 집합체.

# 현실적인, 극히 현실적인
- 참 잘했어요 이채윤 감독 / 상영시간 20분 / 2005년 제작 / 극영화
 : 상영섹션 ‘찬란한 가족-Episode 1’ 22일 16시, 24일 13시30분 상영

정화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다.

그런 아버지 때문에 늘 마음이 편치 않다.

남자친구인 지석과의 결혼 문제로도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러던 어느 화창한 날 세 사람은 소풍을 떠나는데….

▲ '참 잘했어요'.
# 참을 수 없는 매력
치매가 걸린 아버지가 있는 가족의 일상을 다룬 영화다.

부모에 대한 ‘효’를 강조하는 교훈적 메시지가 강한 영화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렇다고 치매가 걸린 아버지를 서로 미루는 ‘패륜아’가 모여사는 가족을 그리지도 않았다.

이 가족 구성원은 단 둘이다.

치매 걸린 아버지와 딸 정화. 그 가족이 현재 형태로 꾸려진 배경을 알 수 없다. 왜 치매걸린 아버지를 딸 정화가 맡아야 하는지, 다른 가족들은 뭐하길래 정화만 저렇게 힘들어야 하는지 등등.

어찌보면 정상적인 가족 형태도 아니다. 두 사람만 있다고 가정하면 사실상‘한부모 가정’에 가깝다.

그렇다고 아버지와 딸의 화해를 그린 영화도 아니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가 정상적인 상태로 딸과 화해하긴 만무하다. 영화 ‘인어공주’처럼 과거 아버지의 삶 속으로 들어가 아버지를 이해하느냐, 그것도 아니다.

▲ '참 잘했어요'.
정화의 삶은 지치다 못해 지겹다. 영화는 그 지겨운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영화는 감독의‘가정(if)’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 ‘만약 치매 걸린 아버지가 있다면…’을 생각해서 연출에 옮겼으리라 본다.

영화가 치매걸린 아버지가 있는 한 가정의 삶 단면을 ‘뚝’ 떼어내서(물론 감독의 가정하에 만들어진 삶이겠지만) 관객들에게 보여지는 것이라면, 이 영화의 결말은 극히 현실적이다.

현실적이어서 논란이 있든간에 일단 수긍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정화는 아버지와 화해하지도, 자신이 100% 만족하는 결과도 얻지 못했다.

현실적인 판단에서 비롯된 아픔은 아버지가 찍어준 ‘참 잘했어요’도장에 의해 어느정도 위안삼으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이 영화는 현실적인 상황에서 출발해서 현실적인 판단으로 끝난다. 삶은 진행중이다. 영화는 끝났지만 삶은 진행중이어서 정화나 ‘그런 삶을 가정했던’ 감독도 영화가 원하는 이상이 아닌 현실적인 판단을 했다.

그래서 영화가 끝난 후 가슴이 먹먹해진다.

# 추천, 이 장면
* ‘진짜 치매 연기일까?’아버지의 연기, 진짜일까 가짜일까?
* 영화 속 ‘참 잘했어요’가 주는 의미, 짚어보길
* 아버지에게 눈물로 한탄하는 정화, 그에 대한 아버지의 행동은?

※ 더 자세한 내용은 제주영화제 홈페이지(http://www.jff.or.kr)를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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