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녀 양씨' 9일부터 상영…한국현대사와 제주4.3사 질곡 고스란히

▲ 가깝고도 먼 땅 이북. 제주해녀 양씨는 세 아들을 남겨 둔채 떠나와야 했다.
영화 해녀양씨는 과거 일제 식민지 시대에 일본으로 건너가 현재 오사카에서 혼자 살고 있는 제주해녀 출신 양의헌 할머니(1916년 生)의 생활을 3년에 걸쳐 기록한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 영화는 해녀로서 일본 각지의 바다를 돌면서 물질을 하던 모습과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귀국하는 세 아들의 모습 등을 조선 통신사 연구가인 고(故) 신기남씨가 38년 전에 촬영을 하면서 시작됐다.

38년전의 필름과 현재의 영상을 교차시키면서 한 여성이 차별과 극심한 빈곤 속에서도 아내로서 남편을 뒤바라지하고 어머니로서 자식을 성장시킨 한 가족의 역사를 재일 한국인의 카메라와 일본인의 카메라 그리고 가족들의 카메라가 함께 찍어낸 영상의 결과물로서 결국 미완의 영화가 끝내 빛을 보게된 것이다.

한국현대사와 제주4.3사의 질곡을 그대로 보여준 '해녀 양씨'가 9일 제주해녀박물관 개관기념 상영에 이어 13일까지 각 어촌계를 돌며 해녀와 도민들과 다시 만난다.

지난해 9월 제주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선을 보인 '해녀 양씨'는 지난 7월 제주여민회가 마련한 제주여성영화제에서도 다시 선보여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이번 상영은 첫 선을 보인지 1년만에 다시 추석절을 맞아 관객들을 찾아가는 셈이다.

현재 일본 조선대학교 교수로 있는 양 할머니의 5남 김세정씨가 제주 상영에 앞서 '나의 어머니'란 글을 해녀박물관측에 보내왔다. 한 아들이 바라다 본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고난했던 제주 여성의 단면을 느껴보는 기회를 갖는다.

▲ 상영일정=항일기념관(10월10일), 모슬포수협(10월11일), 한림읍체육관(10월12일), 서귀포수협(10월13일).

▲ 53년만에 찾은 고향 제주에서의 하룻밤(좌)과 북한의 아들을 방문했을 때 모습(우).

 

나의 어머니

-김세정 일본 조선대학교 교수/양의헌씨 5남-

우리 어머니는 일본 식민지 시대 많은 한국인이 그랬던 것과 같이 열심히 일만 하느라 학교에 갈 수 없어 한글은 물론 일본어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무학의 재일 한국인 1세다.

어머니는 아침 일찍 어시장 쓰레기 운반차에서 떨어진 야채나 생선 머리를 주워와 생활하는 상황에서도 '땟거리도 없는 판에 아들 대학은 뭐하러 보내노?'라는 말을 들으면서 아이들 교육과 생활을 위해 해산을 하고도 바로 다음날 부터 일을 하러 나가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할 정도로 뼈가 부서져라 아침부터 밤까지 매년 중노동을 해온 분이다.

▲ 25살때부터 물질을 시작한 양씨 할머니.

"쓰레기 운반차에서 떨어진 야채와 생선머리로 생활해 온 우리 어머니..."

어머니의 손은 애처로울 정도로 언제나 쩍쩍 갈라져 있었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오사카에서 어머니를 기대리게 된 나는 어느 가을 날 힘든 물질을 마치고 바다에서 돌아온 어머니가 잠자리에 들자 그 이불 속으로 파고 들어가 어머니의 온기를 느끼면서 꺼칠꺼칠한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았던 일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어머니는 일만하는 분이 아니었다. 인정도 많고 사람들을 배려도 하는 분으로 집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곤 했다. 지금도 친구가 많은 어머니는 오사카를 떠나려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지금 어머니는 몸도 마음도 예전같지 않아 보인다. 고향인 제주도를 하염없이 그리워하는 어머니는 북한의 평양에 살고 있는 형(민일.4남)의 사망소식도, 한국의 전라도 익산에 살고 있는 누나(숙자)가 아프다는 소식도 일본에서 들었다.

이런 소식을 들을 때 마다 조국이 분단되고, 국교가 없어 남북한의 자유롭게 왕래할 수 없기 때문에 고령의 어머니는 그냥 일본에서 어찌 할 수 없이 지내고 있을 뿐이다.

▲ 조총련의 북송 프로젝트로 북한에 보낸 세 아들. 지금도 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4남은 이미 사망했다.

"배불리 먹이지도 못하고...내가 나쁜 애미다..."

나이가 많으신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면서 자식들에게 '배불리 먹이지도 못하고 너희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한 내가 나쁜 애미다"라고 한다.

그러나 누가 이런 어머니를 책망할 수 있겠는가?

냉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시대에 농락당하면서도 가족의 끈을 놓지 않았던 어머니. 몸의 고달픔도 마음의 슬픔도 모두 이겨낸 어머니. 무학자로 어디든 있을 법한 그런 평범한 할머니지만 나는 이런 어머니가 둘도 없는 어머니, 위대한 어머니라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 북한에 있는 아들 때문에 절대 포기할 수 없던'조선' 국적. 이 때문에 남한에 있는 딸도 마음대로 만나지 못했다.
▲ 고아 아닌 고아로 살게 했던 둘째딸의 눈물 앞에 어머니는 고개를 떨궜다
▲ 마사키 하라무라 감독의 다큐멘터리 '해녀 양씨'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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