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백배-2일째]김수열 시인 '평화의 시'로 해군기지반대 표명
"정치적 시한부 김지사, 해군기지 결정 안돼!"...19일 강요배 화백

해군기지철회를 위한 평화행동으로 열리고 있는 ‘평화백배’ 실천 둘째 날인 17일 오후6시, 김수열 시인(민예총 제주지회장)과 제주참여환경연대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회원 30여명이 신제주로터리에 자리했다.

평화백배 실천 첫날, 평화를 위한 제주종교인협의회와 함께 참석했던 낯익은(?) 얼굴 몇 사람이 다시 보였다. 전날 가슴에 담아간 작지만 큰 감동이 발걸음을 다시 이끌었다고 고백한다.

평화백배에 앞서 고안나 참여환경연대 공동대표의 평화선언문 낭독으로 평화와 생명이 깃든 상생의 삶이 될 수 있기를 함께 기원했다. 여전히 평화는 평화에 의해 지켜진다는 진리 같은 믿음을 공유했다.

'평화백배' 참여자들 '생명평화의 삶' 기원…김수열 시인 "이 자리에 서는데 고민 불필요"

이어 평화백대 둘째 날 대표 실천자인 김수열 시인이 사람들 앞에 섰다. 평소 나설 자리와 가려야 할 자리를 잘 아는 김 시인에게 평화백배실천의 자리에 선뜻 나선 이유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 김수열 시인
고해성사하듯 김 시인 스스로 그 이유를 밝혔다. 김 시인은 “이 자리에 서는데 별로 큰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말로 자신이 서야할 자리임을 분명하게 밝혔다.

이어 그는 “과연 정치적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김태환 도정이 제주의 백년대계이자 제주의 미래인 해군기지 건설문제를 그들이 원하는 대로 1500명에게 묻고 결정할 수 있나”라고 묻고 “그 점을 먼저 물어야 하고 정말 일말의 양심이 있으면 정치적 생명을 몇 개월 남겨놓지 않은 김태환 지사는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제주도의 미래를 자기가 결정하면 안된다”라고 지적했다.

김 시인은 “오래전서부터 군사기지에 대해서만큼은 철회해 달라는 요구가 오래전서부터 있어왔는데 하도 말을 안 들으니까 답답한 마음에 한라산에게, 바다에게, 하늘에게 호소해봤다”며 직접 육필(肉筆)로 메모해온 시 한편을 소개했다.

한라산이여, 바다여, 하늘이여

어머니, 죄송합니다
일전에 그 약속, 지키지 못할 것 같습니다
촐람생이 같이 맨 앞에도 서지 말고 몰명지게 맨 뒤에 서지도 말고
그저 어중간하게 서 있으라는 가르침 이제는 지키지 못할 것 같습니다

죽임의 난장판을 만드는 쇠붙이만이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저들의 천박한 거짓논리 앞에 그저 망연자실 서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어머니와 어머니 같은 어머니의 바당 밭과 마음 밭을 깔아뭉개려는
간악한 흉계를 가만 지켜볼 수만은 없었습니다

전복과 구쟁기의 등껍질에 계급장을 달고
톳이며 듬북, 메역들을 일렬종대로 세워 제식훈련 시키려는
저 죽임의 문화에 ‘이건 아니다’라고 소리치기 위해 여기 섰습니다

어머니.
평화로움만이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오래전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렵니다
어머니같은 어머니의 한과 설움과 한숨을 조금이나마 씻어 내리기 위해
내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아이들에게 더는 죽임의 문화를 물려줄 수 없어
어머니의 아들로서 아이들의 아비로서 미친 바람과 맞서렵니다

어머니보다 더 큰 어머니 한라산이여
어머니보다 더 넓은 바다여 하늘이여
힘없는 그리하여 눈물밖에 남지 않은 이 섬 것들의 여린 마음을 받아주소서

너를 죽이고 결국은 나와 나의 피붙이들을 죽일 온갖 쇠붙이들을
용광로에 넣어 보습을 만들고 비창을 만들어
바당 밭과 마음 밭을 일구려는 순박한 마음을 들어 주소서
한라산이여, 바다여, 하늘이여

2007.4.18  김 수 열

김 시인의 평화의 시가 세상의 비뚤어진 ‘거짓 논리’를 향해 매섭게 경책(警策)하는 장군죽비처럼 내려치는 사이 어느새 사람들은 몸을 낮추어 일배를 올리고 있었다.

   
 
 
일배, 이배, 삼배, 사배…, 백배.
질긴 생명력으로 호흡하는 제주 산야의 억새풀처럼 평화실천가들은 엎드렸다 일어서기를 30여분 동안 이어갔다. 김 시인의 바람처럼 평화의 씨앗을 마음밭에 가득 심은 듯 저마다 넉넉해진 얼굴이다.

욕설 비난 대신 참회와 속죄로 몸 낮춰 '해군기지 반대' 메시지 전달…18일 강요배 화백 참여

‘평화백배’라는 실천행동의 항의방식.
욕설과 비난 대신 참회하고 속죄하며 스스로를 땅바닥에 낮추는 ‘하심(下心)’의 위력을 이들은 보여주고 있다.

세상 그 어떤 투쟁방식보다도 훨씬 더한 울림을 가진 ‘평화백배’. 몸을 낮출수록 말을 아낄수록, 주장하는 바가 극도로 선명해지는….

놀라운 역설이었다. 18일에는 ‘동백꽃 지다’의 강요배 화백(민미협 회장)이 다시 그 역설을 이어갈 것이다. 같은 자리 같은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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