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니모루'저수지터 4.3유해발굴 '첫삽'...18일 개토제
20여명 희생자 추정...1단계 발굴사업 마무리단계


▲ 18일 오전 9시 화북동 '고우니모루' 저수지터에서 4.3희생자 유해발굴에 앞선 개토제가 치러졌다.

유세차 정해년 양력 사월 열 여드렛날,
저희들은 본격적인 4·3유해발굴에 앞서 조촐하지만
정성스레 제물을 진설하고 삼가 토지지신께 고하나이다.

돌이켜 보면 4·3이라는 참혹한 시절 만나 억울한 영혼들이 구천을 헤맨 지
쉰아홉해가 되옵니다.

그 세월동안 미욱한 저희들은 비명에 가신 이들을 제대로 감장하지도 못했나이다.

어디 그뿐이겠나이까.
누가, 어디에, 얼마나 묻혔는지조차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다만, 오늘 우리가 이 정성을 모으는 까닭은
역사적 진실을 밝히고 넋이나마 편안히 모셔드리자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 토지지신이여!
이 일을 추진하는 동안 부디 놀랄 일, 넋 날 일 없게 하여 주사옵고

궂은 액이 있거들랑 물 아래로 보내어
모든 일이 순탄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시옵기를 앙망하나이다.
상향

고우니모루 4.3유해발굴 현장입구에 내걸린 현수막

질척한 고우니모루 저수지터의 펄이 시커먼 바닥을 드러냈다.

검은 바닥 저 아래로 반세기 넘도록 제대로 숨 한번 토해내지 못하고 있는 4·3의 영혼들이 거친 호흡을 가다듬고 유족들이 마련한 제물과 정성에 잠시나마 원망의 눈물을 멈췄다.

60여년 가까이 방치돼왔던 4·3 당시 집단학살 암매장지에 대한 유해발굴이 지난해말 부터 계속되는 가운데 1단계 발굴 작업의 마지막 사업인 화북동 고우니모루 저수지터 발굴 개토제가 18일 오전 9시 현지에서 열렸다.

고우니모루 저수지 유해발굴은 1949년 1월8일(음 48년 12월10일)에 학살된 것으로 추정되는 화북마을 주민 20여명에 대한 유해 및 유류품을 발굴하고 수습하는 작업이다.

학살 당시 상황은 49년 1월8일 화북초교에 도피자 가족 등 주민들을 붙잡아 왔고 이들 중 일부는 학교운동장에서 총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주민들은 쓰리쿼터에 태워져 여자들은 속칭 ‘누러이’(제주교대 남서쪽) 인근에서 총살하고, 남자들은 속칭 ‘고우니모루’ 물통(저수지, 現 문화주택 동쪽)에서 총살된 것으로 보고 있다.

▲ 장윤식 연구원
제주4·3연구소(소장 이은주)의 장윤식 연구원은 이번 발굴과 관련, “이번 발굴은 습지(펄)를 발굴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면서 “깊이가 약 2m에 달할 것으로 보여 어려운 발굴작업이 될 것 같다”고 예상했다.

장 연구원은 “이번 발굴을 위한 사전 조사에서 목격자 및 직접적인 현장 수습자를 찾지 못해 매우 안타깝다”며 “현재로선 저수지에 대략 몇 구의 유해가 있는지는 미지수다. 당시 희생된 20여명의 마을주민들의 유족들이 시신을 수습해갔을 가능성이 크지만 유해가 남아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발굴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 연구원은 “또한 주민학살 당시 저수지에 주민들을 몰아넣고 총살했는지, 주변에서 총살 후 저수지에 사체를 유기했는지, 또 몇 차례 학살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인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유배발굴조사팀은 잠정적으로 저수지 둔덕에 세워놓고 총살해서 저수지로 떨어지게 했거나, 저수지에 담아놓고 총살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것은 당시 군인들이 사체를 옮길 가능성이 많지 않고 저수지가 핏물로 가득했다는 증언에 따른 것이라고 조사팀은 밝혔다.

 20여명의 화북동 주민이 학살당한 곳으로 증언되고 있는 고우니모루 저수지터

이번 고우니모루 4·3유해발굴은 이날 개토제를 시작으로 오는 30일까지 계속된다. 지난 13일 부터 시작된 기초작업을 포함해 총 18일간 이어지게 된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제주대학교와 4·3연구소에 의뢰한 4·3유해 발굴사업은 오는 2010년까지 3단계에 걸쳐 진행된다.

1단계는 고우니모루를 마지막으로 하는 제주시 화북동 지역 5개소에 대한 조사에 이어, 2단계는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약 1000여명의 희생자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정뜨르비행장(현 제주국제공항)을 대상으로 실시되며, 3단계는 2009년부터 2010년까지 제주도 전역을 대상으로 유해발굴을 벌이게 된다.

조사팀은 제주도의회와 제주도에 접수된 신고사항에 근거할 경우 저수지에서의 학살은 1회에 한정됐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이는 추가확인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16일 제주특별자치도 4.3사업소는 4.3유해발굴사업에 대한 자문 및 협의체 기구를 맡게 될 '4.3 유해발굴추진위원회(수석 위원장 임문철 신부)를 구성하고 위촉식을 가졌다.

▲ 유해발굴현장에는 하얀 무꽃이 만발해 그날의 슬픔을 달래듯 구천을 헤매고 있는 4.3영혼의 넋을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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