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의 섬에서 상생의 길을 걷다] 해녀박물관에서 듣는 숨비소리
▲ 불턱에서 몸을 말리며 애기 젖을 먹이다. |
ⓒ 김강임 |
그게 언제였더라. 바람이 몹시 부는 겨울날이었다. 나는 제주의 동쪽 해안도로에서 들었던 휘파람소리를 잊을 수 없다.
"누가 바닷가에서 휘파람을 불어댈까?"
'휘호이-, 휘호이-, 휴후우-, 휴후우-'. 휘파람 소리는 제주의 동쪽 바다에서 들려왔다. 겨울 바다에서 듣는 휘파람소리는 마치 누군가가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았다. 다시 휘파람소리를 듣기 위해 가던 길을 멈췄지만 휘파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잠수하던 해녀가 바다 위에 떠올라 참았던 숨을 내쉬는 소리'. 그 숨소리가 '바당의 어멍'들의 고통의 소리라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 나는 휘파람소리만 들으면 가던 길을 멈춘다.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토해나는 인내의 소리, 시간 내에 바다생물을 캐기 위해 숨을 내쉬지 못하는 절박함의 소리, 그 소리는 지금도 내 심금을 울린다.
바다가 삶의 현장인 '바당의 어멍'. 사람들은 그들을 해녀, 잠녀라 불렀다. 그들의 삶의 터는 주로 제주바다였고 그들은 바다 위에서 숨을 내쉰다.
그 소리는 지금도 내 심금을 울린다
▲ 해녀박물관 전망대에서 본 제주시 하도리 풍경 |
ⓒ 김강임 |
하도리 마을에서 바다 쪽으로 들어가자, 해녀박물관을 만날 수 있었다. 해녀 박물관은 사진촬영을 할 수 없었지만 관계자의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담아 올 수 있었다.
▲ 해녀의 부엌 |
ⓒ 김강임 |
▲ 해녀 밥상 |
ⓒ 김강임 |
▲ 해녀의 방 |
ⓒ 김강임 |
한 평 정도 되어 보이는 부엌에는 검게 그을린 솥이 걸려있고, 작은 방에는 질화로와 호롱불을 켰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과거 해녀들의 가난하고 척박한 삶의 모습이었다.
전깃불도 없었던 시절을 잘 버텨낸 흔적 속에서 잠시 나는 겨울 바닷가에서 들었던 휘파람 소리에 빠져 있었다. 방 한가운데 오롯이 차려진 해녀의 밥상에도 '휘호이-, 휘호이-' 그녀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바다 속을 휘비고 돌아와 배를 채웠을 해녀의 애환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였다.
▲ 해녀의 야학당 |
ⓒ 김강임 |
▲ 멸치잡이 풍경 |
ⓒ 김강임 |
특히 척박한 땅에서 밭을 일구기도 하고, 바다 밭을 일구기도 하고, 일제식민지 수탈정책과 민족적 차별에 항거하여 항일운동을 주도한 사람도 제주해녀이다.
이렇듯 '제주 바당을 지켰던 어머니'가 바로 제주해녀였다. 해녀들의 발자취를 둘러보노라니 내가 바닷가에서 들었던 휘파람소리가 얼마나 구슬픈 삶의 노랫소리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 해녀들이 해산물을 채취할 때 사용했던 어구 |
ⓒ 김강임 |
▲ 해녀들이 사용했던 제주의 각종 어구 |
ⓒ 김강임 |
▲ 해녀와 제주바당 |
ⓒ 김강임 |
|
☞찾아가는 길 : 제주공항-제주시외버스터미널-세화-해녀박물관으로 50분 정도가 소요된다.
지난 4월 18일 다녀왔습니다. 해녀박물관은 실내 사진촬영이 금지돼 있으나,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담아 올 수 있었습니다.
지난 4월 18일 다녀왔습니다. 해녀박물관은 실내 사진촬영이 금지돼 있으나,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담아 올 수 있었습니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