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조각 박힌 벌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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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적 인간] 44. 벌새(House of Hummingbird), 김보라, 2019
영화 '벌새' 포스터. 출처=네이버 영화.

그럴 때 있다. 그것과 이것으로 나뉘어 분류되는 경우. 인간은 둘로 나눌 수 있다. 영화 ‘벌새’를 본 사람과 보지 않은 사람. 나의 인생은 둘로 나뉘었다. 영화 ‘벌새’를 보기 전과 본 이후로. 하지만 그 분류가 무색하게 우리는 영화 ‘벌새’의 시대를 지나왔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2014년 세월호 참사 등. 그 사이를 촘촘하게 이어져온 수많은 사고들. 누군가의 죽음은 살아남은 사람의 삶을 그 죽음의 이전과 이후로 나눠버린다.

1970년 12월 15일에 발생한 남영호 침몰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벌써 50년 전 사건이다. 전날 오후에 서귀항에서 출항한 남영호는 다음 날 새벽 1시 15분 경 전남 여수 남동쪽 해상 35Km 지점에서 침몰했다. 탑승인원 338명, 사망 326명, 구조 12명. 정원 초과에 적재량의 4배를 더 실었다. 위기 상황에 구조 요청을 긴급하게 타전했으나 해경은 이를 무시했다. 군사 정권 시절에 변변한 보상도 없었다. 사고 이후 서귀항에 조난자 위령탑이 세워졌다가 항만 공사를 이유로 중산간 공동묘지로 옮겨졌다. 유족과 언론의 문제 제기로 다시 자리를 잡은 곳이 서귀포 소정방폭포 부근이다. 

1982년 2월 5일에는 육군특수전사령부 소속 C-123 수송기가 한라산 개미등계곡에서 추락했다. 탑승자 53명 전원 사망. 숨을 거둔 군인들은 당시 제주공항 활주로 준공식에 참석 예정이었던 전두환 대통령을 경호하기 위한 병력이었다. 강설로 인한 악천후로 이륙이 불가하다는 보고를 올렸으나 상부는 강행을 지시했다. 사고가 발생하자 대간첩작전 훈련 중 발생한 사고라 하며 진실을 은폐했다. 항공기 잔해와 시신들을 모아 폭파했다.

국가에 의한 사고는 계속 이어져왔고, 선거도 계속 치러진다. 매 선거 때마다 후보자들은 머리를 숙인다.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간절하게 애원한다. 그 모습은 사고의 징후이다. 유권자들은 거듭 속는다. 속이고 속는다. 여러 번 속아주니 계속 속인다. 거짓말이 정치의 특성으로 여기게 되었다. 세월호 참사와 대통령의 탄핵 이후 추락한 어느 정당의 지지도는 몇 년 만에 다시 원상복귀를 했다. 그렇게 당하고도 너그럽게 용서를 해주는 우리 국민이 불쌍하다.

영화 ‘벌새’에서는 갑작스런 사고로 누군가를 잃고, 다시 일상을 살아야 하는 어린 은희(박지후 분)에게 인생은 도무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수 없는 세상이다. 모범이 되어줄 만한 어른도 없는 세상에서 은희는 노래방에서 당대의 히트곡 원준희의 노래 ‘사랑은 유리 같은 것’을 부른다. 우리는 정말 깨지기 쉬운 유리처럼 살아왔다. 그 투명한 유리가 깨지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라는 벌새처럼 작지만 큰 날갯짓을 하는 일이다. / 현택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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