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오월민중항쟁 연작 판화’ 들고 제주 온 홍성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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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담 작가. ⓒ제주의소리

홍성담(66)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는 극과 극으로 나뉜다.

“국제 엠네스티 선정 세계 3대 양심수”, “세계를 뒤흔든 사상가”, “5.18미술의 첫 걸음” 등등. 이와 달리 한편에서는 온갖 거친 저주와 비방을 서슴지 않는다. 

1980년 5월 광주, 그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미술학도이면서 동시에 총을 잡았던 ‘시민군’이었다. 세게 치면 분해돼 버릴 정도의 고물 칼빈 소총과 탄알 4발은 끝내 사용하지 않고 반납했지만, ‘시민군 문화선전대’로서 붓과 펜이란 본인만의 무기를 들고 전쟁터 같던 광주 시내 구석구석을 대자보와 플랜카드로 채웠다. 그리고 계엄군에 의해 숨진 동료, 선배들의 최후를 지켜봤다.

홍성담은 군인이 자국민을 학살한 현장을, 무자비한 탄압에 맞선 빛나는 시민정신을 두 눈으로 마주했다. 그리고 광풍이 휩쓸고 간 이듬해인 1981년부터 1989년까지 기억 속의 현장을 판화로 남긴다. 훗날 ‘오월민중항쟁 연작’으로 기록되는 작업이다.

오월민중항쟁 연작 전 작품이 7월 4일부터 17일까지 제주에 온다. 제주 갤러리 아트스페이스씨(대표 안혜경)가 2년 전부터 준비해온 전시 <새벽>이다.

전시장에는 1980년 5월 16일 전남도청 광장에 모인 민주화대성회 참가자들의 횃불행진부터 휴교령, 확대 계엄령, 시민군 결집, 마지막 도청 전투와 함께 오월 광주에서 깨닫는 이념과 사상, 분단과 통일의 가치까지 역사의 기승전결을 50편의 작품으로 정리한다. 동시에 5.18기념재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와 각종 문헌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5.18민주화운동을 한 눈에 이해할 수 있는 전시도 함께 마련했다. 

제공=아트스페이스씨. ⓒ제주의소리
판화 작품을 전시한 3층 전경. 제공=아트스페이스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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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에는 홍성담 작가의 판화 작품이 전시됐다. 제공=아트스페이스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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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1층에는 5.18의 과정을 요약한 자료들을 전시한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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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1층 전시실은 5.18기념재단으로부터 제공받은 자료와 문헌 자료, 판화 등을 종합해 구성했다. ⓒ제주의소리

홍성담이 제작한 판화는 광주뿐만 아니라 전국 대학가, 집회, 전시, 공연 현장에 내걸렸다. 동시에 군사정권은 그를 체포하기 위해 혈안이 됐다. 1989년 안기부(현 국정원)에 체포될 때까지 숨어 지내면서 고무판으로 찍은 수백, 수천 장의 판화는 오늘 날 광주5.18 예술의 상징처럼 자리매김했다. 한국과 서구권에 머무르지 않고 민주주의 과제를 안고 있는 스리랑카, 동티모르, 타이완, 필리핀, 일본 등 아시아 국가까지 소개됐다.

전시를 하루 앞둔 3일 <제주의소리>와 만난 홍성담은 “(오월민중항쟁 연작 판화는) 내 예술 인생에 멍에다. 내 스스로 뿐만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잊혀야 새로운 작품도 창작할 텐데, 예술가로서 참 계륵 같은 존재”라고 엷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야스쿠니, 후쿠시마, 세월호, 최순실 국정농단, 탈핵 등등…. 오월 광주로 눈을 뜬 그의 예술 철학은 계속해서 정치-사회 문제를 주목한다. 그를 향하는 특정 세력의 날선 비난이 계속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홍성담은 과감한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함이 없다. 예술에 대한 신념, 오늘날 예술의 위치, 예술가로서의 태도, 역사에 대한 인식까지. 대화를 이어갈수록 메시지는 선명해지고, 고문 후유증으로 병든 두 눈동자도 또렷해졌다.

홍성담은 청년 시절 제주에 잠시 머물며 지역 예술가들과 인연을 맺었고, ‘4.3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제주도 畵家들’이란 주제로 국제 평화 심포지엄에서 발표도 가진 바 있으며, 제주 신화를 소재로 한 미발표 작품도 있을 만큼 제주에 대한 애정이 크다. 그는 제주해군기지와 제2공항 문제는 단순한 개별 사안이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과 결부돼 있는 사안이라고 봤다. 

홍성담은 “오월 광주를 둘러싼 문제가 매번 새롭게 등장하고 이미 70여년 가까이 지난 제주4.3의 형상이 역사 속에서 비명을 질러대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한국이 남과 북으로 나눠져 있기 때문이다. 좌파든 우파든 분단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한국 사회 전체에 드리운 집단적 정신병은 사라지지 않는다”며 분단 극복에 힘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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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담 작가. ⓒ제주의소리

다음은 인터뷰 질의응답 전문. (2일 기자간담회와 3일 개별 인터뷰를 정리·요약함.)

Q. 50점에 달하는 판화를 제작하게 된 계기나 과정이 궁금하다.
A. 5월 항쟁이 끝나고 난 뒤, 독일, 일본, 미국 등 진보적인 해외 단체에서 5.18에 상당한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해외로 나가는데 사진이나 마땅한 자료도 없을 시기라서 그림을 그려 가져갔다. A4 용지에 4B 연필로 스케치 한 뒤 공항 출국대에서 걸리지 않도록 물을 묻혀 이쑤시개 굵기만큼 얇게 말았다. 도착하면 다리미질해서 펴고 행사장에 붙이곤 했는데, 나갈 때 마다 그림을 그려달라는 의뢰가 많았다. 그러다 체포령이 떨어져 한동안 아는 선배의 국민학교 4학년 자녀방에 숨어 살았는데 책장에 표준 전과가 있었다. 미술 부분을 보니 ‘판화’ 섹션이 있었다. 그때 생각했다. 판화로 그림을 제작하면 필요할 때마다 즉시 제공할 수 있겠구나. 대학교 미술 수업 시간에 판화 수업을 받았지만, 그제야 판화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상황이 필요를 만들고, 필요가 역사를 만든 셈이다. 그렇게 해서 오월 판화가 시작됐다. 하지만 나는 오월 판화를 예술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미디어의 하나라고 본다. 필요로 했던 당시 상황에 나는 쫓아갈 뿐이었다. 1980년대 오월 광주를 주제로 만든 판화가 75점 정도 되는데 50점을 추려서 연작으로 묶었다.

Q, 5.18로 탄생한 <임을 위한 행진곡>은 전 세계, 특히 아시아권 시위 현장에서 번안돼 불린다. 오월 판화 역시 세계 곳곳에 전시됐다.
A. 동아시아에 집중해서 본다면 질곡의 현대사를 거치면서 민주주의를 확장할 수 있는 근대적 시민 의식이 생겨난다고 느낀다. 전시를 요청하고 그림의 중요한 형상들을 로고로 사용하고 자기들 나름대로 분석하고 해석하는 과정은 하나의 좋은 징조라고 생각한다. 동아시아는 역사가 얽혀있기 때문에 한꺼번에 변화가 되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다. 간단히 예를 들어 중국과 타이완의 양안 문제, 남한과 북한의 분단 문제, 오키나와의 미군 문제 모두 미국의 태평양 군사 전략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렇기에 한 가지 사안으로 해결하기 보다는 동시에 이뤄내야 한다. 큰 꽃, 작은 꽃, 잘난 꽃, 못난 꽃, 푸른 꽃, 붉은 꽃이 한꺼번에 피우는 화엄 세상을 이뤄내야 한다는 의미다. 

Q. 5.18민주화운동을 두고 당시 광주에 누가 군대를 투입시켰는지, 헬기 발포는 사실인지 같은 공방이 계속 이어지고 역사 왜곡 역시 여전하다. 최근 경기도는 5.18 40주년을 맞아 남양주 모란공원에 오월 판화 <횃불행진>을 비석으로 새기고 오월걸상을 설치했다. 5.18도 오월 판화도 여전히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A. (오월민중항쟁 연작 판화는) 내 예술 인생에 멍에다. 내 스스로 뿐만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잊혀야 새로운 작품도 창작할 텐데, 20대 때 별로 노력도 하지 않고 만들어 대표작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 내게는 예술가로서 참 계륵 같은 존재다. 오월 광주를 둘러싼 문제가 매번 새롭게 등장하고 이미 70여년이 지난 제주4.3의 형상이 역사 속에서 비명을 질러대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한국이 남과 북으로 나눠져 있기 때문이다. 분단 체제 아래서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집단적 정신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좌파, 우파든 가리지 않는다. 광화문에서 나부끼는 성조기, 일장기, 태극기의 이면에는 집단적 정신병, 즉 계엄령 트라우마가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을 좋아해서 들고 있는 게 아니고 ‘이것을 들고 있으면 아무도 나를 해칠 수 없다’는 부적처럼 여기는 것이다. 계엄령에 대한 깊은 트라우마인 셈이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상처다.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직시해야 치유가 가능하다. 제주4.3도 마찬가지다. 그 학살을 자꾸 슬퍼하거나 비통하거나 진혼하는 데만 몰두해서는 안된다. 왜 그들이 죽어갔는지, 누가! 죽였는지, 어떤 시스템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직면하고 대면하고 괴로운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도민들의 뼈에 새겨진 계엄령 트라우마를 지워낼 수 있다. 제주4.3과 광주5.18은 국가 폭력의 계통에서 똑같은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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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1층 전시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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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따라 한없이 이어졌다
세상의 모든 길이 불을 밝혔다
어두운 밤을 물리칠 씨앗

우리는 그 날
땅 속 깊이 심었다
불꽃.
(홍성담 작가가 판화 작품마다 직접 쓴 시)

'횃불행진', 430×253mm, 1983.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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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도청을 자유라고 불렀다

도청을 민주라고 불렀다

나는
도청을 본부라고 불렀다

'가자, 도청으로', 545×408mm, 1988.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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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어둠입니다
나는 온통 캄캄한 밤입니다, 어머니. 
제가 맨 날 누워만 있어요 여기에
어제는 외롭고
오늘은 춥습니다

나를 덮은 흙을 피해
사람들의 발자국소리
두런거리는 소리
나의 묘비가 어머니, 무명열사라구요?

어머니, 제가 여기 분명히 누워있는데
내가 여기 이렇게 눈을 부릅뜨고 있는데
이런 내가 이름이 없는 무명이라니요, 어머니. 
어머니의 아들이 무명이라니요

이곳은 별도 없고 달도 없는 밤입니다
나의 이름조차도 잃어버린 밤입니다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밤입니다
어머니.

'나의 이름은', 212x248mm, 1981. ⓒ제주의소리

제공=아트스페이스씨. ⓒ제주의소리
허무가 무너지고 있다
나를 매만지는 손길이 간혹 떨리고
세상의 탄생이 기약 없이 흔들렸다

연약한 몸짓 그는 망설이지 않고
내 몸 깊은 곳에 반역의 씨앗을 박았다

나는 홀로 황홀하게 몸을 떨었다

'사시사철-봄', 430×570mm, 1985. 제공=아트스페이스씨. ⓒ제주의소리

Q. 1980년 5월에 시민군 문화선전대로 현장에 있었다. 그 이후 활동이나 구속된 이력 등을 모아볼 때 화가 이전에 활동가로서 인상이 짙다.
A. 맞다. 지금은 내가 운이 좋았는지 대형 화랑에서 작품을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지만, 화이트 큐브에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활동가로서 예술 인생을 만들어가려 한다. 특히 올해는 포스트(post) 민중미술을 추구하려 한다. 1980년대 개념적인 민중미술보다 확장된 새로운 개념이다. 지난해 가을부터 시작해 이미 각 지역의 미술 행동을 만들어내려는 목표를 세웠다. 우선 탈핵 미술 운동이다. 영광, 경주, 부산 등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지역에서 미술 운동을 진행했고 또 계획하고 있다. 미세플라스틱 문제, 새만금 갯벌 살리기, 4대강 문제, DMZ 평화 미술 행동도 앞두고 있다. 모든 행동은 행정에 도움을 받지 않고 화가들이 십시일반 돈을 내서 참여한다. 요즘은 개인전, 그룹전까지 공공기관에서 받는 프로젝트로 치르는 것을 당연하고 또 자랑삼아 여기는 못난 풍토가 있다. 행위의 물적 토대가 지닌 성격은 행위의 성격까지도 변화시킨다. 자기 생명성을 지닌 돈에 대해 예술가들은 냉정해야 한다. 돈에 얽매이면 자기 검열하는 순간이 다가온다. 예술에서 가장 비열한 순간이 자기검열이다. 오늘 날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각종 문제 앞에서 예술은 시늉만 해서는 안된다. 서구의 변질된 모더니즘 미학은 시늉의 미학에 불과하다. 앤디워홀 이후 예술은 얼마나 세련되게 시늉을 하는지 여부로 변질됐다. 인간의 존엄과 문명에 날카롭게 눈을 뜨게 하는 예술의 변별력을 병들게 했다. 오늘 날에 시늉 이상의 예술을 하지 않으면 예술가의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 대중들 앞에서 재주나 넘는 원숭이 짓거리와 무엇이 다른가. 간혹 선문선답이나 하는 것이 예술인가. 예술가들은 자문자답해야 한다. 

Q. 본인도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견제하고 있나.
A. 예술은 혁명성이 존재한다. 예술 개념을 중요시하는 사람은 형식, 즉 캔버스 안에서 혁명을 추구한다. 남이 시도하지 않은 형식도 어쨌듯 혁명성이다. 그러나 리얼리즘적인 예술가들은 캔버스 대상과 풍경, 나아가 사회 현상에 대한 혁명을 꿈꾼다. 내가 생각하는 예술은 예술 안과 밖 모두에서 혁명성을 지녀야 한다. 예술이 혁명하는 에너지는 자기 성찰이다. 1970년대 재야 선배들로부터 이런 점을 교육 받았고, 최소한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Q. 지금 10대, 20대 젊은 세대들에게는 다소 거리가 멀게 느껴지지 않을까.
A. 분명 꼰대라고 하겠지만, 내가 어린 시절에 그림 그릴 때 역시 정말 힘들었다. 사회적 불평등이 매우 심했던 시대였다. 그때는 문화 재단의 프로젝트나, 그림 그리는 알바 자리도 전무했다. 라면으로 매 끼니를 해결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중요한 것은 그래도 재미있었다. 내가 불행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생각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들이 스스로 움직이고 싶은 열망을 가지게 만드는 것이 기성세대로서 역할이 아닐까 싶다.

Q. 홍성담이 생각하는 광주5.18은 무엇인가?
A. 코뮌(커뮤니티)이다. 1980년 오월 광주는 절대 공동체를 이뤘다. 총이 5000점 넘게 시민들 손에 쥐어졌지만 단 한 건의 오발 사고, 절도, 강간, 강도 사고도 없었다. 시민들은 스스로 총을 들고 공공기관을 지키고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나눴다. 밥을 나눠 먹고 피를 나눈 절대 공동체였다. 그래서 광주는 승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군부의 폭력으로 적지 않은 광주 사람들은 자기 검열에 사로잡혀 소리를 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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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담의 작품 '대동세상', 535×409mm, 1984. 제공=아트스페이스씨. ⓒ제주의소리
사람을 부른다
사람이 사람을 부른다

세상의 순결한 이름들이
서로 눈길로 답하고

용기 있는 사람들이 서로
살을 부빈다

오늘
사람이 사람을 부르는 세상이다

'대동세상', 535×409mm, 1984. 제공=아트스페이스씨. ⓒ제주의소리

Q. 먼저 세상을 떠난 동지들을 떠올리면 무슨 생각이 드나. (시민군본부는 ‘1980년 5월 26일 오후 7시까지 시민선전대, 여성들은 총을 반납하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당일 오후 4시 전파했다. 자정에 벌어질 계엄군 공격에 앞선 조치였다. 당시 시민선전대에는 홍성담도 속해 있었다.)
A. 어쨌든 살아있다는 건 개똥밭에 굴러도 좋은 것이다. 맛있는 것도 먹고, 사랑도 하고, 고통이 훨씬 길지만 희망도, 기쁨도 느끼고. 그래서 …… 동료들에게 항상 미안했다. 고문도 받고 감옥살이 한 사람도 있지만 죽은 자 만큼 하겠나. 끝까지 살아남아서 우리가 겪은 일을 트라우마를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노래하자고 결심했다. 그래야 반복되지 않기에 이것만큼은 반드시 안고 살자는 생각이 1980년 오월 광주를 겪은 세대에게는 의무로 남아있다. 내 개인사에 대한 의무이기도 하고 광주 공동체와 전 인류가 이뤄내야 할 의무이기도 하다.

Q. 예술 행동에 대해 강조했지만, 제주에서도 4.3뿐만아니라 제2공항을 중심으로 한 예술 행동이 벌어지고 있다.
A. 익히 알고 있는 강정 제주해군기지를 포함해 제2공항은 제주만의 문제가 아니다. 단순히 길을 넓히고 공항을 짓는다기 보다는 미군의 거대한 군사 전략 속에서 봐야 한다. 음모론 같지만 실제 역사를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미국 내 동북아 전문가들이 2000년 작성한 ‘아미티지 나이 보고서’는 상당수 내용이 현실화되거나 절차를 밟고 있다. 일본 재무장, 평화헌법 개정을 통한 전쟁 가능한 자위대, 동북아 미군 재배치와 미국의 요청에 따른 지소미아(GSOMIA, 군사정보보호협정)과 한일 위안부 합의 모두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일환이라는 게 이제는 기정사실화되고 있지 않나. 제주해군기지도 항공 전력이 필요하기에 제2공항은 사실상 공군기지나 다름없다. 미국은 자신들의 이익을 실현시키기 위해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일면 절망적이지만 이런 거대한 구조 속에서 우리 개개인은 각자의 위치에서 저항하고 싸워야 한다. 진정한 국익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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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작품을 배경으로 선 홍성담 작가. ⓒ제주의소리

#홍성담

조선대학교 미술과를 졸업하고 국내외에서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여했다. 광주비엔날레 제1회, 제3회의 한국작가로 선정, 출품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광주오월민중항쟁 연작판화 <새벽>, 환경생태 연작그림 <나무물고기>, 동아시아의 국가주의에 관한 연작그림 <야스쿠니의 미망>, 제주도의 신화 연작그림 <신들의 섬>, 예수 수난그림 14처 <오월의 예수> 연작, 신문사진 분석법에 관한 연작그림 <사진과 사의>, 국가폭력에 관한 연작그림 <유신의 초상>, 세월호 연작그림 <들숨 날숨> 등이 있다. 국제 엠네스티가 1990년 ‘세계의 3대 양심수’로 선정, 뉴욕의 국제정치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가 ‘2014년 세계를 뒤흔든 100인의 사상가 thinker’에 선정했다.

저서로는 《오월에서 통일로》(청년사/1990년),《해방의 칼꽃》(풀빛출판사/1991년),《사람이 사람을 부른다》(夜光社/일본 도쿄/2012년), 그림소설 《바리》(도서출판 삶창/2013년),《동아시아의 야스쿠니즘》(唯學書房/일본 도쿄/2016년), 소설 《난장》(에세이스트/2017년), 에세이 화집 《불편한 진실에 맞서 길 위에 서다》(나비의 활주로/2017년), 오월광주 그림동화 《운동화 비행기》(평화를품은책/2017년), 세월오월 그림사건 자료백서《세월오월》(광주시립미술관 편/2017년) 등이 있다.

(《오월 : 5.18광주민중항쟁 연작 판화》에 실린 소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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