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겨울을 알리는 뜨끈한 한그릇
제주의 겨울을 알리는 뜨끈한 한그릇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주댁, 정지에書] (14) 꿩메밀국수 / 김진경 베지근연구소장 제주음식연구가
밥이 보약이라 했습니다. 바람이 빚어낸 양식들로 일상의 밥상을 채워온 제주의 음식은 그야말로 보약들입니다. 제주 선인들은 화산섬 뜬 땅에서, 거친 바당에서 자연이 키워 낸 곡물과 해산물을 백록이 놀던 한라산과 설문대할망이 내린 선물로 여겼습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김진경 님은 제주 향토음식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젊은 연구자입니다. 격주로 '제주댁, 정지에書'를 통해 제주음식에 깃든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글]

제법 날이 쌀쌀해 진 11월의 마지막 주, 따끈하면서도 ‘베지근한’ 국물이 생각나는 것을 보면 제주에도 본격적인 추위가 찾아온 것 같다.

언젠가 제주 전통시장 골목을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나도 모르게 한 식당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그 식당 안에는 관광객이 아닌 제주 토박이로 보이는 중·장년층들이 빼곡히 들어앉아 모두 한 그릇씩의 국수를 마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면은 다른 국숫집의 국수하고는 많이 달라 보였다. 면뿐 아니라 육수의 색깔 또한 제주에 흔한 다른 국숫집의 국수들, 이를테면 고기국수나 멸치국수, 보말칼국수 등등과도 달라 보였다. 나는 식당을 나오는 할머니께 여쭤보았다.

“할머니, 여기 국수 맛있나요?”
“그럼, 옛날 생각이 나게 하는 맛이야. 잘도 맛있어.”

그냥 평범해 보이는 국숫집 간판, 조금 더 시선을 내려 보니 ‘꿩메밀국수’라는 단어가 한눈에 들어왔다. 제주인들의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타임머신 같은 꿩메밀국수에는 어떠한 이야기가 깃들어 있을까?

사진=김진경. ⓒ제주의소리
꿩메밀국수는 요즘 꿩메밀칼국수라고 부른다.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제주에는 꿩메밀칼국수를 파는 곳들이 제법 있었는데 점점 사라져가는 추세다. 사진=김진경. ⓒ제주의소리
ⓒ이로이로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제주지역에서 꿩메밀칼국수를 파는 곳이 제법 있었는데 점점 사라지는 추세다. 제주시 원도심 지역에는 제주여자상업고등학교 근방 국숫집과 제주동문시장 내 한 식당에서 꿩메밀국수를 판매하고 있다. 꿩고기를 푹 고은 육수에 무와 메밀국수를 넣어 끓여낸 이 메밀칼국수는 여타 다른 칼국수와는 그 맛과 느낌이 다르다. ⓒ이로이로

아마도 꿩 요리라고 하면 제주사람들은 ‘꿩사농’, 즉 꿩사냥이라는 말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 같다. 제주의 풍속에서 꿩사농을 뺀다면 섭섭하기 짝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물론 꿩사냥이 제주에만 있는 독특한 풍속은 아니다. 산과 들과 숲이 있는 곳이라면 한국의 어느 지역에서든지 꿩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제주의 꿩사농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진성기 선생에 의하면 제주의 꿩사농은 패를 짜서 한다는 특징이 있다. 보통 음력으로 9월과 10월경 꿩은 털갈이를 하는데, 털갈이 때문에 꿩이 멀리 날지 못해서 꿩을 사냥하기 가장 적합한 시기라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꿩사농을 위한 사냥패를 조직하고 패장과 망, 보군, 목의 역할을 나눈다. 패장은 그 사냥패에서 덕망이 있는 자로 사냥지역의 지리를 잘 알고 사냥경험이 풍부하며 리더십이 있는 사람으로 정한다. 망은 사냥지역의 높은 동산마다 앉아서 꿩이 앉고 나는 방향을 두루 살핀다. 보군은 개를 데리고 돌아다니며 무조건 꿩을 날리는 일을 맡는다. 목은 꿩이 잘 앉는 곳이나 또 잘 앉을만한 곳에 개를 데리고 가서 대기하고 있는 역할을 맡는다.

꿩사농의 시작은 패장이 사냥을 갈 만한 길일을 정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패장은 며칠 간의 날씨를 살펴 꿩사농에 가장 적합한 날짜를 고른다. 꿩사농 당일, 새벽 3시경 첫닭이 울면 패장은 마을의 높은 동산 위에 올라가 조직 사람들이 모두 듣도록 큰 소리로 출동 신호를 보낸다. 그러면, 꿩사농에 역할을 담당한 마을 사람들은 정예군대처럼 각자의 역할에 따라 패를 이루어 꿩사농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처럼 제주의 꿩사농은 다른 지역과 달리 마을 단위의 풍속이라는 점이 특별하다.

사진=김진경. ⓒ제주의소리
하얀 눈 위에 서있는 꿩. 실제로 제주 사람들에게 꿩은 천신으로 내려온 하늘 닭으로 여겨졌다. 즉 옥황상제로부터 죄를 받아 내려온 하늘 닭, 곧 천상계라고 불리기도 했다. 사진=김진경. ⓒ제주의소리
사진=김진경. ⓒ제주의소리
사냥이 잘되기를 비는 굿인 산신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 꿩사농은 제주 마을 단위의 아주 중요한 풍속이자 제주의 공동체 문화를 보여주는 문화다. 사진=도서 '제주에는 소원나무가 있습니다(이보경, 키위북스)' 삽화 발췌. ⓒ제주의소리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점심 도시락이다. 주로 메밀범벅을 점심으로 준비하는데, 음식을 담는 통은 약돌기라는 노끈으로 그물테처럼 엮어 만든 맹태기 비슷한 도시락통을 사용하고 절대 식기와 숟가락 따위의 쇠로 만든 도구를 가져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야 꿩을 많이 잡을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성산읍 고성리의 민속에 따르면 이렇게 꿩사농을 할 때 처음 나온 아이들을 ‘초시’라고 불렀는데, 이들을 잘 챙기고 마을의 예비 사냥꾼으로 사냥의 경험을 익히게 하는 것이 어른들의 중요한 역할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날 아무리 많은 꿩을 잡았다고 해도 초시의 몫은 거의 없었다. 꿩을 나누는 방식은 엄격히 정해져 있었는데, 가장 연장자 순으로 한 마리씩 주다가 중간 쯤 부터는 반 마리, 그 다음엔 두각, 한각 하여 나누는 분육방식을 지켰다고 한다.

사냥의 금기로 ‘첫 사농에서는 조치(암꿩)나 조 쫄래(암꿩새끼)를 잡으민 부정탄다’라고 하는 말이 있었다. 이 꿩은 주로 말렸다가 제숙으로 쓰거나 메밀국수를 해서 먹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꿩사농을 포함해 여러 사농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 산신제, 즉 사농코사를 지내기도 했는데, 특히 제주의 중산간 마을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제의였다.

마을단위에서 함께 공동으로 작업한 이 꿩사농으로 얻어진 꿩은 제주음식에 어떻게 사용이 될까?

앞서 언급했듯이 우선 제사상에 올리는 용도로도 사용이 되었다. 그다음으로 그 꿩을 푹 고아서 꿩엿과 꿩메밀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제주의 엿은 육지부의 엿과는 그 모양과 기능에서 확연히 차이가 있다. 일단 육지부의 엿이 디저트 개념의 캔디류에 가까운 한과라고 할 수 있다. 다 고아진 조청을 상온에서 여러 번 늘리고 접는 과정을 반복해서 고체화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제주의 엿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차조밥에 엿기름을 넣어 삭힌 것에 꿩 삶은 물을 넣고 어느 정도 걸쭉해질 정도로만 고아낸다, 즉 조청의 농도보다 조금 더 고아내는 정도로 그치면 숟가락으로 떠먹는 조청과 엿의 중간 그 어디쯤의 제주의 꿩엿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진=김진경. ⓒ제주의소리
꿩메밀국수 면은 메밀의 툭툭 끊어지는 특성 때문에 국수처럼 길게 뽑기보다는 짧고 굵게 뽑았다. 사진=김진경. ⓒ제주의소리
사진=김진경. ⓒ제주의소리
짧고 굵게 면을 뽑은 탓에 젓가락으로 먹기 불편해 숟가락으로 떠먹었다고 해서 꿩메밀칼국이라 부르는 어른들이 많았다. 사진=김진경. ⓒ제주의소리

제주의 어른들은 대표적인 겨울철 음식으로 꿩엿 마련을 이야기하신다. 이쯤 꿩사농을 한 후에 꿩엿을 고아 겨울철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으로 삼았다. 꿩엿을 고아 단지에 넣어 집 안에 두며 겨울철 한 숟가락씩 퍼먹던 기억을 가진 제주사람들이 많은데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 육지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물론 꿩고기만을 가지고 엿을 해 먹은 것은 아니었다. 닭고기나 돼지고기를 이용해서도 엿을 고았다. 심지어 나의 어릴 적 기억에 나의 친정어머니는 돼지고기로 엿을 고으셨는데 돼지고기뿐만 아니라 삶은 달걀도 넣으셨다. 달큰하고 진득한 엿에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고기의 식감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겨울철 맹추위도 제주의 엿 한 숟가락이면 거뜬히 넘길 수 있었다.

꿩메밀국수는 지금은 꿩메밀칼국수라고 부른다. 메밀의 툭툭 끊어지는 특성 때문에 국수처럼 길게 뽑기보다는 짧고 굵게 뽑았고 젓가락으로 먹기 불편해 숟가락으로 떠먹었다 해 꿩메밀칼국이라 부르는 어른들이 더 많았다.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제주지역에서 꿩메밀칼국수를 파는 곳이 제법 있었는데 점점 사라지는 추세이다. 제주시 원도심 지역에는 제주 여자상업고등학교 근방의 국숫집과 제주동문시장 내 한 식당에서 이 꿩메밀국수를 판매하고 있다. 꿩고기를 푹 고은 육수에 무와 메밀국수를 넣어 끓여낸 이 메밀칼국수는 여타 다른 칼국수와는 그 맛과 느낌이 다르다. 툭툭 끊어지는 모양새와 국물의 베지근함이나 시원함의 맛이 조금씩 차이가 있는 이 두 식당에서 제주의 꿩메밀국수의 맛을 음미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제주의 고기국수와는 다른 특별한 매력과 향토성이 짙게 깔려있다. 회색빛 도는 이 국수가 처음에 한술 뜨기 망설여질 수 있지만, 한술 뜨면 괜한 걱정이었다는 사실을 금세 알아차릴 제주의 맛이 분명하다.

소화가 잘되지 않는 메밀과 천연소화제로 알려져 있는 무는 제주음식에서 단짝처럼 따라다닌다. 아마도 예전 제주사람들은 꿩사농이 끝난 후에 제숙으로 쓰일 꿩고기는 손질하여 말려두고 남은 부속물과 나머지 꿩을 고았다. 그렇게 손에 넣은 꿩고기와 꿩육수에 차조밥과 골(엿기름)을 넣어 제주의 아주망들은 정지에 하루종일 앉아 솥 앞에 서서 땀을 뻘뻘 흘리며 꿩엿을 고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꿩육수에는 메밀로 만든 국수를 넣어 끓여먹으며 온 마을사람들이 함께 제주의 겨울을 맞이하지 않았을까? 

사진=김진경. ⓒ제주의소리
꿩메밀국수를 판매하는 ◯◯식당. 사진=김진경. ⓒ제주의소리
사진=김진경. ⓒ제주의소리
제주시 원도심 지역에는 제주여자상업고등학교 근방 국숫집과 제주동문시장 내 한 식당에서 이 꿩메밀국수를 판매하고 있다. 꿩고기를 푹 고은 육수에 무와 메밀국수를 넣어 끓여낸 이 메밀칼국수는 여타 다른 칼국수와는 그 맛과 느낌이 다르다. 사진=김진경. ⓒ제주의소리

겨울철 제주인의 단백질 공급원으로 쓰였을 꿩을 확보하기 위한 꿩사농은 제주 마을 단위의 아주 중요한 풍속이자 제주의 공동체 문화를 보여주는 문화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제주사람에게 꿩은 천신으로 내려온 하늘 닭으로 여겼다. 즉 옥황상제로부터 죄를 받아 내려온 하늘 닭, 곧 천상계라고 불렀다. 이러한 신성한 꿩으로 점을 치기도 했고 또 꿩에 관한 금기와 풍속도 꽤 많이 남아있다. 일례로 산 꿩은 절대 집으로 들이지 않는 풍습도 전해온다.

제주의 중장년층 중에는 다행히 어렸을 적 꿩을 잡는 놀이로서의 추억을 갖고 있는 분들도 계신다. 아직도 제주의 중산간을 다니다 보면 푸드득 날아가는 꿩도 쉽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꿩사농 문화는 이제 현대사회에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모습이며 그 맥락만 산신놀이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추운 겨울의 목전에서, 할머니 손을 잡고 지친마음과 속을 따뜻하게 달래 줄 제주사람들의 힐링 음식 꿩메밀국수를 먹으러 찾아가 보길 권한다.

김진경은?

20대에 찾아온 성인아토피 때문에 밀가루와 인스턴트 음식을 끊고 전통음식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떡과 한과에 대한 공부를 독학으로 시작했다. 결국 중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던 일도 그만두고 전통 병과점을 창업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이후 제주전통음식으로 영역을 확장해 현재 베지근연구소에서 제주음식 연구와 아카이빙, 제주로컬푸드 컨설팅, 레시피 개발과 쿠킹랩 등을 총괄기획하고 있다.

현재 제주대학교 한국학협동과정 박사과정을 밟으며 제주음식 공부에 열중이다. 두 아이를 키우고 있어 어멍의 마음으로 제주음식을 대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0 / 400
댓글 3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순 추천순 이 기사에 달린 댓글 3
제주도민 2020-12-01 16:25:48
수고하셨습니다. 저는 동문시장 안이랑 여상쪽 다녀왔지만 맛은 여상쪽이 좋았어요..
223.***.***.208

도민 2020-11-28 16:33:44
근데 꿩칼국수집은 많지만 꿩요리집은 정말 찾기 힘듬..
대유랜드 말고 다른데 먹을만한곳 추천 바람
182.***.***.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