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183. 장폴 뒤부아,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 이세진 역, 창비, 2020

장폴 뒤부아,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 이세진 역, 창비, 2020. 출처=알라딘.
장폴 뒤부아,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 이세진 역, 창비, 2020. 출처=알라딘.

1.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의 청년들에게

수학능력시험이 끝났다. 모든 대학의 입학 사정이 끝날 때까지 많은 학생들이 대학 진학을 위해 분주한 시간을 보낼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유보한 채 오로지 정답을 맞히기 위해 암기에 매달렸던 학생들은 자기소개서에 대학이 원하는 인재상에 맞게 자신의 모습을 가공해서 서술했을 것이다. 그런데 정답이 아니면 오답이라는 이분법적인 틀 속에서 자기 자신을 정답의 프레임에 우겨 넣으면서 성장한 학생들은 모든 것을 유보한 채 달려온 경쟁의 끝에서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대학 진학에 성공한 학생들은 자신의 성취에 잠시 기뻐하다가 자신이 왜 그 자리에 있는지 되돌아보게 되면서, 어쩌면 그 성취는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욕망을 실현한 것일 수 있고, 자신은 정작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조차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대학 신입생 사이에 우울증이 널리 퍼지는 것은 괜한 일이 아니다.

경쟁만을 강조하는 학교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가정 형편이 여의치 않아 정상적으로(?) 학교를 졸업하지 않고 사회에 발을 내디딘 젊은이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아마도 다른 방식으로 사회가 요구하는 정답에 스스로를 적응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거나, 대학에 진학할 수 없었던 젊은이들은 학벌을 강조하는 사회가 내리는 ‘오답’ 판정에 맞서느라 벌써 지쳐있을 것이다.

겨울의 찬바람이 시작되고 2학기가 끝나갈 무렵이 되면, 뜬금없이 국민학교 6학년 2학기의 마지막 시간이 생각난다. 조개탄 난로로 추위를 견디던 6학년 교실의 마지막 시간이 끝나고 집에 가기 위해 복도에 걸어 놓은 신발주머니를 집어 들었는데, 신발주머니가 가벼웠다. 여러 번 빨면 탈색이 되어 회색이 되어버리는 검정 운동화의 한 쪽이 어디로 갔는지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나 말고도 한 녀석의 신발주머니 역시 똑같은 상황이었다. 우리는 사라진 신발을 찾기 위해 애를 썼지만 끝내 찾지 못했고, 마음이 착한 그 친구는 신발 한 쪽을 내게 양보한 채 다 뚫어진 실내화를 신고 집에 가야 했다. 문제는 그 녀석이 가정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몇 명의 학생 중 하나였다는 것이다. 졸업 후 그 녀석이 어떻게 되었는지 소식을 들을 수는 없었다. 찬바람이 불고 발이 시린 계절이 시작되면 내 신발을 그에게 주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그 녀석이 우연한 기회에 돈을 잘 벌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서 지금은 따듯한 집에서 좋은 신발을 신고 다니길, 간혹 국민학교를 마칠 무렵 어떤 찌질한 녀석에게 자신의 운동화를 양보한 사건을 흐뭇하게 회상하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그런 바람은 헛된 것일까? 남들처럼 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삶은 오답의 길에 들어선 삶일까? 경쟁에서 뒤쳐지게 되면 그 삶은 ‘실패한’ 삶이 되는 것일까? 우리의 삶을 정답과 오답으로 나누는 어떤 경계가 있는 것일까?

2.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가기

2019년 공쿠르 상 수상작인 장폴 뒤부아의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이세진 역, 창비, 2020)는 여러 우여곡절을 겪는 한 남자의 일생을 지루하지 않은 문장으로 풀어나간다. 탁월한 번역도 한 몫 했겠지만 그의 문장은 아멜리 노통브 만큼이나 재기발랄하다. 독자는 이 소설을 읽게 되면 저절로 삶에 정답이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소설은 주인공 폴 한센이 갇혀 있는 교도소에 관한 묘사로 시작해서 주인공이 감옥에 갇히게 되기까지 주인공의 삶의 여정을 시간 순서대로 풀어간다. 작가는 파란만장한 그의 삶의 이야기를 좁은 감옥에서의 삶과 교차 서술하면서 마지막까지 독자로 하여금 그의 삶의 여정에 관한 궁금증을 놓지 않게 한다.

폴 한센은 덴마크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자라다가 아버지를 따라 캐나다로 이주해서 시민권을 얻은 인물이다. 이 소설은 주인공의 삶의 여정을 서술하지만 주인공 자신의 성장과정이나 성격에 주목하기보다는 주인공을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의 삶의 방식을 묘사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그 주변 인물들은 모두 독특한 성격을 지녔으며 자신들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삶을 살았다. 

덴마크 북부의 스카겐이라는 마을 출신인 아버지는 목사로서 성실한 삶의 표본이다. 그는 전통과 관습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목사로서의 직분에 맞게 도덕적인 삶을 살고자 노력한다. 그에 반해 주인공 폴의 어머니인 아나 마르주리는 프랑스의 툴루즈 출신으로 자유분방한 혁명가였다. 극장의 소유주이기도 한 아나 마르주리는 68혁명이 일어나자 운동가들에게 자신의 극장을 토론장으로 내어주기도 하는 등, 극장을 ‘혁명 전위파의 예술적 용광로 중 하나’로 변모시킨다. 극장에 붙은 ‘예배당의 그늘에서 자유롭게 사유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54쪽)라는 벽보를 발견한 아버지 요하네스 한센은 ‘신과 주인’으로부터 삶의 주도권을 찾아와야 한다는 어머니와 심각한 다툼을 벌이기도 한다.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진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외설시비로 3년이나 금지된 미국 영화 ‘목구멍 깊숙이’를 어머니의 극장에서 상영하게 되면서 완전히 끝나게 된다. 아버지가 교단에서 정직 처분을 받게 됨으로써 아버지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삶의 방식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아버지는 이후 캐나다의 석면 광산 도시인 셋퍼드 마인스에 목회 자리를 얻어서 이민을 하게 되고, 거기서 그럭저럭 자신의 삶을 꾸리는 듯 했으나 경마와 도박에 빠져 교회 재정을 파탄나게 한 죄로 징계를 당하고 마지막 설교 자리에서 숨을 거둔다. 

어머니와 아버지 외에도 주인공의 주변에는 다양한 방식의 삶을 사는 등장인물들이 있다. 아내인 위노나는 캐나다 원주민과 아일랜드계 이민자의 혼혈로서 경비행기 조종사이다. 위노나는 노동의 피로에 지친 주인공을 캐나다의 대 자연 속으로 데리고 가 넓은 세상을 경험하게 하고 삶의 아름다움을 일깨우는 인물이다. 떠돌이개였던 반려견 누크는 누구보다 깊은 감정을 나눌 수 있는 가족이다. 감옥에서 같은 방을 쓰고 있는 오토바이 갱단인 패트릭은 거대한 몸집과 무서운 외모와는 달리 쥐를 무서워하고, 머리카락을 자르는 데서 극심한 고통을 느끼는 섬세하고 특이한 감정의 소유자이다. 그는 폴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가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친절한 친구이다. 

돈을 떠나 이웃의 주민들을 위해 성심성의껏 봉사하는 성실한 삶을 살아 온 주인공이 어떻게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가를 여기서 밝힐 수는 없다. 그 부분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책을 읽는 것이 이 책을 읽는 재미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은 거의 자살하거나 병에 걸려 죽거나 사고로 죽는다. 주인공은 늘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의 영혼이 자신의 주변에 있음을 느낀다. 그들의 삶은 그다지 영웅적이지도 않고, 대단히 아름답지도 않지만 매우 ‘인간적’이다. 우연적인 사건들에 의해 예상치 못한 길로 벗어나거나 예기치 못한 종말을 맞기도 했지만, 그들은 자신이 벗어날 수 없는 어떤 운명적인 힘 속에서 자신의 고유한 삶을 꾸려나가려 애썼다. 

누군가는 모두가 선망하는 대학에 합격을 할 것이고, 누군가는 입시에 실패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런 실패의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했을 것이다. 매체들은 끊임없이 성공과 실패에 대해, 행복과 불행에 대해 떠들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는다.’ 각자의 다른 삶에는 성공, 실패, 행복, 불행 따위를 가를 기준은 없으며 그저 각자의 삶이 있을 뿐이다.

▷ 이유선 교수

현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고려대학교 철학과 및 동대학원 졸, 철학박사
전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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