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재심, 역사의 기록] (5) 73년 전 4.3당시 조선민족청년단 가입 휘말려...고인 아들 “늦었지만 아버지 한 풀었다”

[제주의소리]가 2020년 6월15일 보도한 [10대 청년에 덧씌운 살인예비죄 66년만에 재심 청구]의 당사자인 故 장동석(1929년생) 할아버지가 73년 만에 한 맺힌 억울함을 풀었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장찬수 부장판사)는 전신법 위반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 받은 故 장동석(1929~2004) 할아버지의 재심청구 사건에서 25일 즉일선고를 통해 무죄를 선고했다.

제주시 애월읍 곽지리 출신인 고인은 일본 동경 유학시절 독립자금 운반책으로 오인받아 국내로 강제송환 됐다. 징집을 피해 숨어 지내다 1945년 제주제일중학교(현 오현중)에 진학했다.

미군정은 1948년 7월28일 고인이 조선민족청년단(족청)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전신법 위반과 포고령 위반, 살인예비 혐의로 정식 재판에 넘겼다. 당시 고인의 나이는 만 18세였다.

공소장에는 피고인이 1948년 1월25일 제주읍 산지 일대에 남북통일지지 관련 삐라 50장, 2월28일 북제주군 내 초등학교에 3.1기념일 인식 관련 삐라 50장 살포를 지시했다고 적혀있다.

1948년 5월8일에는 제헌 국회의원선거인 5.10총선거를 방해하기 위해 제주읍 산지 공화당 투표 장소를 파괴하고 인명 살상을 모의했다는 살인예비죄까지 더해졌다.

공소 직후 고인이 군에 입대하면서 재판은 전역 후인 1954년 12월에야 열렸다. 당시 법원은 1948년 8월15일 대통령 사면령에 따라 포고령 위반과 살인예비죄는 면소 판결했다.

면소는 죄를 묻지 않고 소송절차를 중단시키는 것을 뜻한다. 다만 전선을 절단할 때 적용하는 전신법에 대해서는 유죄로 판단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고인은 연좌제를 의식해 이 같은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고 지냈다. 그러다 1993년 신동아에 ‘수난의 족청시절’이라는 제목의 수기를 작성해 4.3 당시 실상을 알렸다.

한평생 억울함을 가슴에 품었던 고인은 2004년 10월 향년 75세로 영면에 들었다. 유족들은 고인의 마지막 한을 풀기 위해 2019년 10월16일 재심 청구에 나섰다.

재판부는 1월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지만 면소 판결 혐의에 대해서는 청구를 각하했다. 당시 면소가 사면을 전제로 이뤄진 만큼 재심 청구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형사소송법 제420조에는 재심청구 사유를 유죄 확정 판결로 제한하고 있다. 최근 서울고법에서 위헌적 면소 판결에 한해 재심 개시를 받아들인 경우가 있지만 성격이 다르다고 판단했다.

오늘(25일) 오전 열린 첫 공판에서 검찰은 공소사실을 유지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구형했다. 이에 재판부는 오후에 즉일선고에 나섰다. 형사소송법상 변론 종결시 당일 선고가 가능하다.

무죄 선고 직후 아들 장경식씨는 뒤늦게나마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검찰과 재판부에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장씨는 “아버지 살아생전에는 사회적으로 재심을 청구할 분위기도 아니었다. 이제서라도 한을 풀게 돼 다행이다. 자식 된 도리로 사법부의 무죄 판결을 받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는 족청 사건으로 연행돼 다니던 학교도 졸업하지 못해 평생 서운해 하셨다. 무죄 판결문이 나오면 아버지의 모교인 오현고를 찾아 명예졸업장을 요청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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