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재심, 역사의 기록] (7) 제주지법, 고태삼-이재훈 할아버지 재심 사건 '무죄'..."오늘부터 편안히 주무시라"

제주지방법원이 4.3 당시 소요와 내란실행 방조 등의 혐의로 옥살이를 한 생존수형인 고태삼(93), 이재훈(92) 할아버지의 재심 청구사건에서 대해서도 3월16일 무죄를 선고했다. 

1948년 제주4.3 사건이 발발하기 1년 전인 1947년 소요와 내란실행 방조 혐의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지 74년만이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11시40분 제주법원 201호 법정에서 생존수형인인 고태삼, 이재훈 할아버지 재심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제주4.3이 일어나기 1년전 1947년 일반재판으로 징역형을 받은 고태삼-이재훈 할아버지가 74년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제주4.3이 일어나기 1년전 1947년 일반재판으로 징역형을 받은 고태삼-이재훈 할아버지가 74년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날 재심 재판을 받는 333명이 1948년 4.3 이후 불법 군사재판으로 육지 형무소로 끌려갔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행방불명된 사례지만 고태삼, 이재훈 할아버지는 4.3 전 일반재판을 받은 사례다.

고태삼 할아버지는 1947년 6월6일 구좌읍 송당리 마을 청년모임에 나갔다가 세화지서 경찰관이 급습하는 과정에서 경찰관을 폭행했다는 이유로 법원에서 장기 2년, 단기 1년형을 선고받고 인천형무소에서 1년 동안 복역했다.

당시 일반재판 기록과 달리 고태삼 할아버지는 사건 당일인 1947년 6월6일 집을 떠나 있다가 10일만에 돌아왔고, 세화지서로 끌려가 경찰관에서 폭행을 당했다. 

고 할아버지는 "경찰에 끌려가 어떤 조사를 받은 적도 없었다"며 "재판에서도 이름만 불렀을 뿐 판결도 기억할 수 없다"고 당시 재판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제주4.3이 일어나기 1년전 1947년 일반재판으로 징역형을 받은 고태삼-이재훈 할아버지가 74년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제주4.3이 일어나기 1년전 1947년 일반재판으로 징역형을 받은 고태삼-이재훈 할아버지가 74년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재훈 할아버지 역시 1947년 8월13일 고향 북촌마을에서 제주시로 가려고 버스정거장에 있다가 경찰에 체포돼 모진 구타끝에 '삐라를 뿌렸다'는 혐의로 징역 단기 1년, 장기 2년을 선고받은 후 인천형무소에서 1년6개월 복역하다 풀려났다.

고태삼, 이재훈 할아버지는 경찰의 살인적 취조와 고문을 받은 후 이름만 호명하는 형식적인 재판을 거쳐 형무소에 수감됐다. 재심청구 과정에서 두 할아버지 재판기록은 판결문과 형사사건부 등이 존재하지만 판결문 어디에도 범죄사실이 적시되지 않았다. 

검사는 "피고인들에게 제출한 증거가 없음으로 무죄를 선고해 달라"며 무죄를 구형했고, 변호인 임재성 변호사 역시 '무죄' 선고를 요구했다. 

장찬수 부장판사는 "범죄 사실에 증거가 없기 때문에 피고인 두 분 모두 무죄를 선고한다"며 "해방 직후 국가로서의 완전한 정체성을 찾지 못한 채 이념적으로 벌어진 4.3사건 소용돌이에서 스무살도 안된 청소년이 반정부 활동 명목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그동안 하소연 한번 못한 채 오늘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장 부장판사는 "오늘 판결이 피고인들에게 그동안 굴레에서 벗어나길 바란다"며 "오늘부터 정말 편안하게 주무셨으면 한다"고 덕담을 건넸다.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를 타고 재판에 나온 고태삼 할아버지는 "74년만에 진실이 밝혀져서 너무 고맙다"며 "남은 인생 편안히 살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재훈 할아버지는 "지나가다 벽에 붙어 있는 삐라는 읽어본 적이 있지만 단 한번도 나쁜 행동을 한 적이 없다"며 "당시 저 뿐만 아니라 북촌리 인근 주민과 청년들은 사형 및 징역형을 선고받았다"고 토로했다.

이 할아버지는 "형무소에서 풀려한 뒤 부산 할아버지 집에 있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군대에 지원했고, 전쟁이 끝난 후 고향에 오니 4.3으로 어머니는 총살당했고, 아버지는 군사재판으로 사형을 선고받아 육지형무소에서 행방불명 됐다"고 안타까운 사연을 설명했다.

양동윤 4.3도민연대 대표는 "1947년 미군정 당시 제주의 청년에게 가한 국가공권력은 명백히 위법이며, 국가범죄"라며 "이를 바로 잡아 사법정의를 구현한 제주지방법원 재판부에 찬사와 감사를 드린다"며 "구순이 넘은 나이가 돼서야 전과자라는 평생 한을 풀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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