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을 튼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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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의 영어어휘 톡톡 talk-talk] (61) journalism 저널리즘

jour·nal·ism [dʒə́ːrnəlìzəm] n. 저널리즘
‘저널리즘’을 튼내며
(‘저널리즘’을 떠올리며)

journalism은 journal ‘일보(日報)’와 –ism ‘--의 특성(特性)’의 결합이다. 이 journal의 어근(語根)인 jour의 뜻은 ‘날(=day)’이며, 여기서 나온 낱말로는 bonjour ‘좋은 날(=good day)’, journey ‘여행(旅行)’, journalist ‘기자(=reporter)’ 등이 있다. journalism의 어원적 의미는, journey가 ‘하루 일(=a day’s work)로서의 여행‘을 뜻하듯이, ’하루하루(=day to day) 일어난 일을 모아서 보도하는 활동‘ 정도로 볼 수 있다. jour에 저널리즘의 본질(essence)과 한계(limitations)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저널리즘은 본질적으로(essentially) 인간의 ‘알고 싶어 하는 욕구(need to know)’를 채워주기 위해 존재한다. 사람들은 매일매일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알고 싶어 하며, 저널리즘은 신문(newspaper)·방송(broadcast)·잡지(magazine) 등을 통해 그에 대한 상세한(detailed) 보도를 제공함으로써 사람들의 알고 싶어 하는 욕구를 채워주고 있는 것이다. 마치, 여러 종류의 식당들(restaurants)이 존재하면서 사람들의 하루 세끼(three meals a day) ‘식욕(need to eat)’을 채워주고 있듯이. 

저널리즘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알고 싶어 하는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존재한다. 이러한 저널리즘에는 항상 시공간적 제약이 따르는데 이 때문에 몇 가지 필연적 한계점을 갖게 된다. 지금 우리에게는 저널리즘과의 건강한 관계가 필요하다. 그런 건강한 관계를 형성해가기 위해서는 습관적 인터넷 검색에서 벗어나야 하며, 독서나 사색 등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힘을 키워나가야만 한다.

이러한 저널리즘에는 항상 시공간적 제약(spatio-temporal constraints)이 따른다, 실례로 신문이나 잡지에는 일정한 지면이라는 공간적 제약이, 방송에는 주어진 방송시간이라는 시간적 제약이 따르는데, 그런 제약들로 인해 몇 가지 필연적(inevitable) 한계점(limitations)을 갖게 된다(R. Rosenblatt, 1984). 먼저, 저널리즘은 사건의 제 단계(all stages)에서 독자들에게 가장 충격적인(shocking) 단계만을 다루게 된다. 저널리즘은 사건의 전말(whole story)을 기술하는 두꺼운(thick) 역사책이 아니기 때문에, 특정 사건에서 가장 독자의 시선을 끄는 이례적인(exceptional) 부분만을 중점적으로(emphatically) 보도하게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저널리즘은 특정한 사건을 불연속적으로(discontinuously) 다루게 된다. 독자들의 관심(interest)은 금방금방 바뀌기 때문에, 한 사건을 연속적으로(continuously) 다루기보다는 여러 사건들을 불연속적으로 다루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널리즘은 (특히 방송의 경우) 공이 가는 곳(where the ball is)만을 따라다니게 된다. 스포츠 TV 생중계(live coverage)에서 보듯이 화면(screen)은 항상 공이 가는 곳을 비추게 되기 때문에 운동장 전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소상히 보여주지 못하게 된다.  

우리는 지금 저널리즘의 영향력(influence)에서 벗어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건 대기오염(air pollution)을 피하고자 숨을 쉬지 않는 것만큼이나 실현불가능한(unrealizable) 일이다. 하지만 상술했던(above-mentioned) 저널리즘의 본질과 한계를 염두에 둔다면, 저널리즘에 너무 많은 기대(expectation)를 해서도 안 되고 너무 많이 기대서도 안 된다. 저널리즘은 저널리즘일 뿐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자각(awakening)해야 하며, 우리가 새로운 사실이나 정보(information)를 얻기 위해 저널리즘에 의존하게 될수록 언론(言論)은 점점 권력이 되어간다는 사실을 직시(face up to)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는 저널리즘과의 건강한 관계(healthy relationship)가 필요하다. 그런 건강한 관계를 형성해가기 위해서는 습관적(habitual) 인터넷 검색(searching)에서 벗어나야 하며, 독서나 사색(speculation) 등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힘을 키워나가야만 한다. 최근 들어 많은 가짜뉴스(fake news)가 만들어져 유포(spreading)되는 것도, 편협한(narrow-minded) 시각으로 뉴스를 보다가 쉽게 흥분하거나 분노하게 되는 것도 어쩌면 그만큼 저널리즘에 대한 의존도(level of reliance)가 높아서 그런 것은 아닌지 한번쯤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 ‘김재원의 영어어휘 톡톡 talk-talk’ 코너는 제주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영과에 재직 중인 김재원 교수가 시사성 있는 키워드 ‘영어어휘’를 통해 그 안에 담긴 어원적 의미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링 해설 코너입니다. 제주 태생인 그가 ‘한줄 제주어’로 키워드 영어어휘를 소개하는 것도 이 코너를 즐기는 백미입니다.

# 김재원

제주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영과 교수(現)
언론중재위원회 위원(前)
미래영어영문학회 회장(前)
제주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장(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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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순 추천순 이 기사에 달린 댓글 1
1129 2021-03-26 17:08:41
소문을 퍼나르면
제주 사투리로
소도리쟁이라고 한다.
소문의 진실 혹은 거짓
팩트체크는 없고
그저 세상에 떠도는
카더라식의 풍문을 전달하면
그건 저널리즘이 아니다.
소도리즘 쯤 되겠지.
소문을 퍼나를 때도
중간에 자신들의 이익이 개입돼선 안된다.
요즘 제주소리의 일부 기사를 보노라면
소문을 퍼나르돼
그 소문에 자신들의 이익 혹은 이권을
섞어서 세상에 퍼나르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210.***.***.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