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기념사업위 ‘4.3 내일을 말하다’ 토론회 개최...김명식 시인 초청 특강 

한울산 사람들
- 제자리를 찾아서

사람의 자리
그 제자리를 찾아야하지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의 뱃속, 그 자리에서부터

사람의 자리
그 자리를 잃었는가

한울산 사람들
한울이 제자리인 것을
잊어버렸는가….

- 김명식, 4.3과 평화 제27호 中 - 

국회가 지난 3월 여야 합의로 도민 염원이 담긴 제주4.3특별법 전부 개정안을 21년만에 통과시킨 이후 4.3운동의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려는 자리가 마련됐다.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는 28일 오후 1시 30분 제주시 용담이동 민주노총 제주본부 교육장에서 ‘4.3의 내일을 말하다’를 주제로 4.3운동 방향성 모색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는 총 3부로 나눠 진행됐으며, 1부는 4.3을 다룬 3권의 책 ‘제주민중항쟁’을 펴낸 김명식 시인이 ‘4.3민족, 민중항쟁(해방)을 말한다-내일의 4.3의 희망과 바람은…’이라는 주제로 초청 특강을 펼쳤다.

2부는 ‘4.3운동의 평가와 향후 과제’, 3부는 ‘청년, 4.3의 미래를 말하다’를 주제로 한 각계각층 인사들의 토론이 이어졌다. 

ⓒ제주의소리
28일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가 마련한 '4.3의 내일을 말하다' 토론회에서는 4.3을 다룬 3권의 책 ‘제주민중항쟁’을 펴낸 김명식 시인의 특강이 진행됐다. ⓒ제주의소리

김명식 시인은 특강에서 “아직까지 4.3의 이름 하나 못 지었다. 참 가슴 아픈 일이다. 우리가 사는 땅은 누가 지켜야 하겠나 이 아픔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동안 나는 무엇을 했나 싶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1948년 4월 미점령군, 경찰, 경비대 그리고 이승만 집단의 우익 테러에 항거하다 스러져간 제주도 민중의 혼은 깊은 한과 염원을 간직한 채, 현대사 40년간의 긴 어둠의 시대 속에서 침묵을 강요당해 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제주도 민중학살에 앞장섰던 자들이 지금도 이땅의 민중을 지배, 수탈, 착취하는 자들과 그 궤를 같이하고 있기 때문에 제주도 민중항쟁의 기록은 왜곡돼 있고 드러나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김 시인은 “당시 제주사람들은 재판도 없이 아닌 밤중에 쪽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몸 위에 돌이 올려진 채 빠져야만 했다”며 “바다에 빠져 죽은 우리 동지의 피와 뼈와 살을 먹을 물고기, 우리는 그것을 먹고 살지 않았나”라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4.3 당시 돌아가신 분들이 3만여 명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10만여 명이 돌아가신 것으로 본다며 호적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채로 돌아가신 분들이 부지기수로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김 시인은 당시 4.3에 대한 미군의 책임론을 강조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 시인은 “미군은 당시 누구에게 허락을 받고 조선 땅에 발을 들였나. 누구에게 말하고 무슨 자격으로 이 땅에 들어왔나. 2차대전이 끝내고 일본이 패전한 것은 놔두고 조선은 조선대로 남아있어야 했다”고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 “점령은 침략의 다른 표현이다. 침략하는 과정 중 하나가 점령일 뿐이다. 1948년 4월 당시 미군은 연합군 세력의 두목으로 한반도 이남 지역을 지배 점령하고 있었다. 4.3민중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한 장본인은 미제국주의였음을 명백히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학정에 항거했던 제주도민을 무조건 빨갱이로 전제하고서 단죄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것은 바로 전후 군사정권이 들어선 40여 년간 이 땅의 현대사를 피로 얼룩지게 한 자들의 잘못된 역사 인식이며 반공 이데올로기에 세뇌된 자들의 시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4.3의 내일을 말하기 위한 실천 과제로 △민족의 이름으로 자행된 미국의 침략성 규명 △살해 도구인 일제주구의 정체와 계보 규명 △미국이 전략·전술적으로 제주도를 택한 이유 △제주도를 빨갱이의 땅(Red Land)으로 규정한 이유 △제주도 민중의 입장에서 제주도의 특수성 조명 △1948년 4월 3일 재조명 △남로당의 역할 규명 등을 요구했다. 

ⓒ제주의소리
이날 토론회는 3부로 나뉘어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약 4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제주의소리

김 시인은 “유가족들이 지금까지 풀지 못한 아픔과 상처 그리고 가슴에 맺혀 있는 한을 풀어낼 수 있는 여러 가지 형태의 한풀이 과정이 필요하다”며 “여러가지 문제와 과제, 복원작업이 이뤄지며 4.3은 제주도 민중해방투쟁으로서의 성격과 특징이 역사 위에 뚜렷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어 “제주도 민중은 상처난 자기 몸을 일으켜 세우면서 자기를 역사의 정방향에 세우고 주체자의 몫을 다하기 위해 4.3에 물든 피를 씻어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희생당한 이웃들의 무덤을 다듬으며 맺은 원한을 풀고 양민을 학살한 모든 세력을 낱낱이 고발하고 아직은 상하좌우에 진쳐있는 예리한 칼벽을 넘어 해방의 새날을 예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강을 진행한 김명식 시인은 1945년 북제주군 애월면 하귀리에서 태어난 4.3 생존자로 4.3을 다룬 3권의 ‘제주민중항쟁’을 발간한 뒤 1990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끌려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