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공동체 다움 ‘베짱이의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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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짱이의 모험 출연진들. ⓒ제주의소리

제주 살이 3년차를 맞이한 극단 ‘연극공동체 다움’은 올해 첫 활동으로 가족음악극 ‘베짱이의 모험’을 선택했다. 

이 작품은 호주 극단 렘(REM)이 지난 1997년 내한해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국내 초연을 가졌다. 다움은 2019년 9월 봉성리하우스씨어터에서 이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2019년 당시를 기억해보면 가정집 앞마당에 차려놓은 목재 무대와 계단 위 2층까지 집 구석구석을 오간 배우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가을 저녁 하늘 아래에서 동네 아이들과 함께 앉아, 즐거운 작품 내용에 박수 치던 기억은 기분 좋게 남아있다. 1년 하고 7개월 만에 다시 찾아온 ‘베짱이의 모험’은 봉성리하우스씨어터가 아닌 제주시내 소극장 세이레아트센터에서 5월 7일부터 9일까지 열렸다.

실내 극장과는 규모·시설 등에서 큰 차이가 나기 마련이지만, 봉성리하우스씨어터 공연에서도 ‘베짱이의 모험’이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흥미로웠다. 

‘심심해’라는 입에 말을 달고 살다가 마법사 스펠싱어에 의해 ‘무언가’로 변신하는 꼬마 에릭. 날개가 있고 더듬이가 나있고 긴 다리에 풀을 먹고 펄쩍 뛰는 녹색과 갈색의 어떤 것. 에릭은 여러 동물을 만나면서 자신이 무엇인지 하나둘 성질을 알게 되고 비로소 ‘베짱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그리고 에릭은 더 이상 심심하다 말하지 않는다. 

그림책에서 흔히 등장하듯 표현을 누적해서 나열하는 연극 속 언어유희는 어린아이들에게 알맞은 웃음 코드다. 꽃을 마주하면 재채기가 나오는 벌, 끈적끈적한 매력의 거미, 힙합 감성을 장착한 개구리 등 에릭과 만나는 동물들의 역동적이고 때로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공연 내내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사로잡는다. 계속 이어지는 노래와 춤도 마찬가지.

신기하게도 ‘베짱이의 모험’은 어른들에게 묘한 여운을 준다. “하지만 난 내가 누군지 몰라”, “어디로 가는지도 몰라.” 에릭의 입을 통해 던져지는 존재감·삶의 방향에 대한 질문은, 몸은 다 큰 성인이어도 마음 한 구석은 아직 여린 관객에게 작은 위로와 공감이 된다. 

무엇보다 2021년 판 ‘베짱이의 모험’은 정식 소극장으로 무대를 옮기면서 이런 메시지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일단 이전보다 넓어진 무대와 그 안을 채우는 세트는 좌우상하 활기찬 움직임이 가능해졌다. 그 위에서 그림자극, 키다리 등장, 라이브 연주와 효과음 같은 볼거리와 들을 거리를 더한다. 가짜 손과 화려한 의상으로 유쾌한 카리스마를 뽐내는 거미, 조명을 머리에 단 힙합 개구리 등 색다른 아이디어들 역시 더욱 몰입할 수 있는 여건에서 연령 구분 없이 큰 호응을 이끌어 냈다. 이전에 없던 밴드 구성은 음악과 효과음까지 즉석에서 만들어내며 생동감 있는 무대에 일조했다. 그래서 이번 '베짱이의 모험'은 마치 ‘그때는 어쩔 수 없었지만 판이 깔리면 우리가 이 정도는 보여준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2019년 당시 1인 밴드였던 서민우는 주인공 격인 에릭을 맡았다. 황은미는 이전처럼 마법사를 연기했고 제작진에서 배우로 새로 투입된 조승희와 김갑연은 각각 쥐와 벌을 맡았다. 밴드는 신시사이저와 각종 효과음 도구를 갖춘 2인조(최원형, 박유진)로 확대 개편했고, 안무는 이미광과 서선영이 소화했다. 각자 맡은 바 역할을 다한 가운데, 거미나 개구리 같은 주로 역동적인 연기를 도맡은 황은미가 굵직한 인상을 남겼다. 2019년에 출연했던 남석민, 홍한별은 각각 조명 담당과 관객으로 힘을 더했다.

사족이지만 노래 연기들이 더 매끄러워지고, 마이크와 음향 문제가 나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기자가 본 공연이 첫 날이었고 오랜만에 가진 자체 공연 때문이지 않나 짧게 짐작해본다.

세이레아트센터는 다움에게 특별한 장소다. 2019년 1일 16일 제주 첫 공연 ‘송이섬의 바람’을 이곳에서 가졌다. 놀라운 실력으로 관객을 깜짝 놀라게 했지만 공연하는 순간이나 공연이 끝나고 관객과 만나는 자리에서도 역력했던 다움의 긴장감은 이제 한결 가벼운 모습으로 바뀌었다.

다움은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해 자체 공연을 가지지 못했고, 해를 지나면서 거처를 옮기는 큰일도 치렀다. 그럼에도 전태일 열사 50주기 작품 ‘연극 전태일-네 이름은 무엇이냐’ 출연, 신나는예술여행 사업 등으로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올해는 여러 지원 사업으로 보다 많은 활동을 예고한 상태다. 거처도 옮긴 만큼 ‘베짱이의 모험’처럼 보다 많은 관객과, 보다 가깝게 만날 가능성도 높아졌다. 

‘제주가 좋아서, 연극이 좋아서, 연극 밖에 할 수 없어서’ 섬을 찾았다는 연극공동체 다움. 그들의 제주 생존기가 비극이 아닌 희극으로 써내려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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