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진 놈이 팡을 촞나
짐 진 놈이 팡을 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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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의 借古述今] (227) 짐 진 사람이 쉴 곳을 찾는다

* 팡 : 쉴 곳, 쉼터, 쉼팡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고 배고픈 사람이 밥을 찾게 마련이다. 부모님이 보고 싶으니 고향 집을 찾는 것이고 고기를 잡으려 바닷물 속에 드는 것이고 지식을 탐구하고자 책을 읽는다.

다만 그 찾고 얻고자 함이 절실해야 한다. 찾으면 열릴 것이요 두드리면 얻으리라고 했다. 강한 의지가 있으면 하고자 한 일이 반드시 이루어지는 법이다.

그렇다고 세상사가 모두 순리대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 모든 게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제가 해야 할 일인데도 남이 해주기를 은근히 바라는 경우도 없지 않다. 가족 간은 물론 남남 사이에도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당연히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남이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의타심(依他心)이라 한다. 

의타심은 대체로 염치(廉恥)가 없는 것이라, 좋지 않은 것으로 서로의 관계를 어긋나게 하거나 어렵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아무런 조건 없이 누가 남의 일을 하려 하겠는가. 병상에 누웠거나 다쳐서 거동이 안되면 몰라도.

‘짐 진 놈이 팡을 촞나’, 일의 주체성을 강조하면서, 어딘가 상대를 걱정하고 염려하는 마음 한 자락이 감겨 있어 곱씹을수록 새 맛이 돋아난다. 사진은 1980년대 촬영한 제주도 쉼터 모습. 출처=서재철, 제주학아카이브.

그래도 이웃 사람들은 걱정한다.

“어떵허연 밭의 검질 안 매염신고? 무신 일이 있는 건 아닌가.(어째서 밭의 김은 안 매는고?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가?)”

가을 볕에 널어 말리느라 길가에 길게 세워 놓은 참깨 더미를 보며, “비가 왐직이 하늘이 거멍해 오는디 정 내부렁 될 건가이?(비가 올 것처럼 하늘이 까매 오는데 저렇게 내버려도 될 것인가?)”
  
하는 소리를 옆에서 듣던 이가 말한다. “아이고, 걱정도 팔저여, 짐 진 놈이 팡을 촞는 법이여.(아이고, 걱정도 팔자네, 짐 진 사람이 쉴 곳을 찾는 법이지.)”

과연, 밭에 김을 깔끔히 매었고. 길가 깻더미엔 비를 안 맞게 비닐을 씌워 놓았다.

남이 하는 일에 지나치게 끼어들어 팡을 찾네 안 찾네 할 것은 못 된다. 하지만 그걸 꼭 남의 일에 대한 간섭이나 짓꿎은 비아냥이라고만 할 것은 아니다. 걱정하는 이웃 간의 살가운 정리이거나 미더운 마음의 반어적(反語的) 표현일 수도 있다.

예로부터 우리 제주 사람들은 섬이라는 외롭고 열악한 환경에서 서로 도우며 살아 상부상조의 아름다운 풍속을 이어 왔다. 거기다 하늘이 내려준 빼어난 산수 풍광의 영향으로 고운 심성을 지녔다. 남을 걱정하거나 믿고 우애로웠지 나무라거나 안되기를 결코 바라지 않는다.

‘짐 진 놈이 팡을 촞나’

일의 주체성을 강조하면서, 어딘가 상대를 걱정하고 염려하는 마음 한 자락이 감겨 있어 곱씹을수록 새 맛이 돋아난다.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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